문학과사회, 2013년 겨울호

문학과사회 겨울호는 출간되기 전부터 상당히 기대하고 있었다.

다섯 편의 소설이 실렸는데, 각각이 모두 주목할 만한 작가였기 때문.

하나씩 보면 이렇다.

 

1. 백민석, 혀끝의 남자

이미 단행본으로 출간이 되었고, 블로그에도 긴 글을 썼으므로 넘긴다.

예전의 백민석의 팬들은 약간의 아쉬움을, 새로운 독자들은 상당한 매력을 느낀 듯하다.

 

2. 정이현, 뚜껑

정이현은 이른바 칙릿 소설의 유행이 지나버린 지금도, 자기 세계를 유지하고 있는 작가다.

지금에 와서 이 작가의 행보를 보면 애초에 칙릿은 정이현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단어였던 것도 같다.

왜냐하면 이 작가는 내내 한국의 중산층 여자의 삶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녕 내 모든 것> 같은 작품조차 그 자장 안에 있었다.

이번 단편은 만 열여섯의 나이에 아이를 가진 봄과 승현, 그리고 이 둘의 엄마인 지원과 미영의 이야기다.

핵심은 매뉴얼에 없는 상황에 대처하는 각각의 인물들의 모습이다.

특히 2014년에 대한민국의 중산층 여자들이 이런 문제에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가가 흥미롭다.

‘뚜껑’의 이미지가 재미있었는데, 미영에게 그것은 분노를 유발하게 했던, 폭발해버린 프라이팬의 뚜껑이었고,

지원에게는 세계를 뒤덮고 있는 시퍼런 하늘이었으며, 종국에는 7개월의 미숙아가 들어 있는 인큐베이터의 뚜껑까지도 연상시킨다.

지원과 미영의 시점이 교차적으로 병렬 제시되는 방식인데, 초점은 확실히 지원에게 가 있었다.

비중을 균형 있게 뒀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3. 천명관, 동백꽃

제목에서부터 그렇지만, 김유정의 <동백꽃>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이자 유쾌한 패러디다.

이런 소설을 읽으면 아무것도 설명하고 싶지 않고, 그저 소설의 재미에 푹 빠져버린다.

동엽이라는 섬의 지주(?)의 아들을 둘러싼 경숙과 유자의 갈등이 주요 서사이고,

두 여자의 엄마인 점순(우리의 점순이가 여기에!)과 갑순의 대립도 나타난다.

게다가 이들의 목표는 동엽의 아이를 가져 결혼에 골인하는 것인데,

아주 흥미롭게도 바로 앞의 정이현의 소설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대도시의 고교생들의 임신과 섬처녀의 경쟁적인 아이 갖기가 그것이다.

이건 정이현이 불리하다. 천명관을 읽으면 정이현의 서사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이 싱싱한 생명력의 세계, 소문과 추측, 정열과 질투로 이루어진 전근대적 시공간(1980년을 전후한 것으로 보인다)은 얼마나 멋진가.

천명관은 정말이지 성석제를 뛰어넘을 만한 유일한 이야기꾼이다.

 

4. 박민규, 소머셋 가는 길

역시, 가장 좋았다.

박민규라는 이름만 있어도 이미 판단을 끝내는 나로선 어쩔 수 없었다.

드디어 들국화의 전인권에게 바치는 소설이고, 미국 시카고의 갱단 이야기다.

제인 아처라는 여자와 베니, 조셉, 마르코, 피토, 시어도어. 다섯 명의 친구들. 번창하는 사업을 통해 조직으로 성장한 그들.

그리고 아이를 낳다가 죽은 제인. 아이의 이름은 존Jon. 제비뽑기로 아빠가 된 베니. 세 살 이전까지 존을 키우다가 감옥에 간 베니.

이제 존은 조직의 오른팔이 되어 아빠를 죽여야 할 상황에 이른다. 그러나 조직의 음모는 이 둘을 모두 죽이는 데 있었고, 이를 눈치 챈 둘은 탈출을 감행한다.

거대한 허수아비가 서 있는 드넓은 옥수수밭 한가운데서, 어떤 흑인이 “오,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라고 노래를 부르고 있으며, 자신의 고향이 위스콘신의 소머셋이라고 이야기하는 베니.

그리고 이들을 처리하기 위해 옥수수밭을 헤치고 다가오는 여섯 명의 조직원들.

박민규에게 일어나는 아주 특이한 ‘현상’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일단 비밀로 두고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

어떤 소설들은 오로지 마지막 한 장면을 위해 이전의 서사가 존재하기도 하는데, 이 작품이 그렇다.

그러니까 나는 이 마지막 장면에서 처음 느끼는 감정을 경험했다. 아직도 이게 뭔지 모르겠다.

끝까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총구를 겨누어 왔으며, 오랜 시간을 아빠와 아들로 지낸 이 둘이 마지막에 나누는 대화에서

혈연도, 사랑도, 우정도, 아름다움도, 쓸쓸함도, 안타까움도, 허무함도 아닌 무언가를 느꼈다.

이건 아마도 정말로 그저 두 명의 인간이 어떤 순간에, 그러니까 정말로 ‘순간’에 나눌 수 있는 정서적 공유 같은 게 아닐까.

박민규의 휴머니즘은 이렇게 또 계속된다.

 

5. 손보미, 별자리점

그러고보니, 손보미를 정이현의 계보에 위치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가도 중산층들을 대상으로 삶의 불안과 몰락을 그려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

<그들에게 린디합을>이라는 소설집이 불안의 전조를 주목하고 있다면,

이제 불안 ‘이후’로 나가보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성공적일까? 아직은 의문.

이 소설에서는 처절하게 몰락하는 남, 녀를 보여준다.

삶의 한 순간, 치명적인 실수 같은 것이 그들을 몰락하게 한다.

그런데 그 몰락이 선명하지도 않고, 상징적이지도 않아서 뭐랄까.

작품이 대체로 평이해지는 느낌이랄까.

요컨대 손보미답지 않다는 것.

“피크드 라펠로 된 스트라파타 스리버튼 재킷”, “오간자 실크”와 같은 묘사.

정전의 상황, “대관람차”, 이런 것들이 손보미답다.

 

1 Response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