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르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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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엔 형제의 영화가 이런 분위기를 가질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아마도 <파고>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고, <번 애프터 리딩>과 <시리어스 맨>을 보지 않은 이유일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런 영화들과 <인사이드 르윈>은 상당히 다를 것이다.

1960년대 뉴욕의 포크 싱어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흥미롭게도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지만 그게 생활을 보장해주지 않을 때,

커다란 잘못을 하지는 않았지만 주변의 질타와 무시를 받을 때,

어느 순간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와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하나를 어렵게 포기했는데 이제 두 개, 세 개를 포기해야 한다고 요구할 때,

내 뜻대로 되는 일이 도무지 없을 때,

삶은, 그저 피곤한 것이다.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할 용기도,

뱃사람으로 한 평생을 살아갈 자신도 없는 사람에게

정말로 삶은 피로한 것이다.

포크송이 그런 것처럼 삶도 고놈이 고놈이고

고속도로에서 차에 치이는 동물들처럼 삶은 예측할 수 없다.

이 불가해한 인생에 남는 건 졸음과 피로밖에.

 

인상적인 장면 두 개.

1. 자신을 잘 보살펴주는 교수의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된 르윈이

그 고상한 사람들 앞에서 노래 한 곡을 요청받아 부르는 장면.

자연스럽게 그 노래에 코러스를 넣는 부인. 그 노래는 듀엣곡이므로.

2. 이제 거동은 물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아버지의 요양원을 찾아간 르윈이

아버지를 앞에 두고 여덟 살 때 만든 “청어 떼”라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

 

이 두 장면을 마무리하는 솜씨가 코엔형제의 것이고, 그것이 곧 인생의 단면 아닌지.

1은 왜 자신의 노래를 따라부르냐고, 급기야 나도 프로인데 왜 나에게 노래를 시키냐고

집에 초대해 교수인 당신에게 강의를 해보라고 요구하지는 않잖느냐고 르윈이 화를 내는 것으로,

2는 감동적인 아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힘겹게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고 눈가에 눈물도 고였던 아버지가

사실은 그 자리에서 똥을 쌌던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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