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중앙, 2013년 겨울호

복간된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잡지는 여러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좋은 작가들의 글도 제법 실리는 편이라 챙겨보고 있는데

아마 올해부터 일종의 ‘혁신호’라고 해서, 대대적인 개편을 앞두고 있는 듯하다.

편집위원으로 낙점된 시인 오은, 소설가 편혜영, 시인이자 건축가인 함성호 씨가 이를 주도하고 있다.

얼핏 듣기로는 “작품” 만을 싣게 될지도 모른다는데, 나로서는 그렇게 되지는 않았으면 하고.

 

어쨌든 이번 겨울호에는 네 편의 단편소설이 실렸다. 아래와 같다.

 

1. 황정은, 누가

황정은에 관해서는 더 이상 설명은 필요없을 것 같고, 이 작가가 일종의 전성기를 맞이했음은 얘기하고 싶다.

<야만적인 앨리스씨>가 큰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최근에 발표하고 있는 단편들의 임팩트가 더 굉장하다.

<양의 미래>나 <상류엔 맹금류> 같은 작품들이다.

여기 실린 <누가> 역시 강렬한데, 제목에 관해서는 황 모 평론가께서 ‘累家’이지 않겠느냐고 얘기한 바.

집의 주인이 바뀌고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적절하다고 생각은 되지만,

그저 누추한 집(陋家)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who’의 의미가 당연히 일차적이다.

다른 사람의 흔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타인의 취향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은 돈이고, 계급이라고 황정은이 솔직하게 얘기한다.

이 솔직함은 예컨대 이런 장면에서 통쾌하기까지 하다.

“니들은 다를 줄 알지? 다른 줄 알고 다를 것 같지? 그런데 니들하고 나하고는 다른 게 없지. 완전 같지. 서로가 서로에게 고객이면서, 시달리면서, 백 퍼센트의 고객으로는 평생 살아보지도 못하고 어? 나는 이게 다 무서워서 불쾌한데 니들은 이게 장난이고 나만 미쳤고 내가 우습지? 웃어라. 우스우니까 웃어. 우스우니까 웃고 계속 우스우니까 우스라고. 계속 웃고 더 웃고 웃어 웃어보라고.”

이건 정말이지 나한테 하는 말 같다.

그러니까 우리의 계급이라는 건 결국 같은 아파트에 사는 운명 같은 것이고, 서로의 층간소음에 시달리며 위층이면서 동시에 아래층인 처지가 아닌가.

어서 소설집을 내주기를. 할 말이 많이 쌓여 있다.

 

2. 김금희, 차이니스 위스퍼

아직은 낯선, 신인으로 보이는 작가.

모든 걸 차치하고 소설의 목소리가 좋았다.

이런 목소리라면 어떤 상황도,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아일랜드의 더블린인 듯한 이국의 도시에서 영어 강의를 녹음해 들으며 시를 쓰는 스물셋의 그녀를 떠올리면 그저 슬퍼진다.

이 정도의 상처라면, 이만한 고통이라면 ‘시’를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그러나 결국 언어가 되지 못하는 그 고통과 상처들.

어떤 이름으로도 명명할 수 없는 고양이이기도 하고, 결코 진의가 끝까지 전달되지 못하는 차이니스 위스퍼이기도 한 것이다.

 

3. 김개영, 거울 사원

이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지난해 <문예중앙>의 공모에 무려 6편의 소설을 보냈기 때문이다.

신인이라면 그 여섯 편의 편차가 작지 않았을 텐데, 결국 등단에 이른 것을 보면 보통의 내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작년에 읽었던 등단작은 상당히 좋았던 것 같다.

이미지들, 특히 이국적인 어떤 풍경 같은 것을 잘 활용했었던 기억이다.

이 소설도 대체로 그렇다. 그곳은 이슬람 사원이 있는 이태원이며, 게이 바에서 근무하는 주인공과 그를 연모했던 아자즈라는 청년이 있다.

그냥 결론은 얘기하자. 이 소수자들이 이렇게 소모되어도 괜찮은가.

게이라든가, 이슬람이라든가, 심지어 둘 다인 마이너리티들이 그로테스크나 욕망의 도구로 큰 고민없이 이용되어도 정말 괜찮은가 하는 것이다.

이미지를 위해 이야기가 동원된 것이나 마찬가지.

 

4. 김태용, 아놀드레인

이 소설은 잡지의 기획인 <다시 쓰기>라는 프로젝트에 의해 씌어진 것이다.

과거의 명작들을 지금의 소설가가 어떤 식으로든 다시 써보는 것이 목적.

김태용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키다리가 쏘아올린 녹슨 공>으로 바꾸고 싶었나보다.

그런데 역시 김태용이라, 이야기는 어김없이 옆길로 새버렸고, <아놀드레인>이라는 괴상한 작품이 되었다.

이건 SF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기존의 과학적 지식을 모두 부정해버리는 세계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재미도…없다. ‘박민규적’ 느낌인데, 유머가 빠져 있다.

“신경질적으로 비만한 삼각형”이라는 다소 뜬금없고, 태만한 문장도 등장한다.

이야기의 각각은 결코 연관성을 갖지 않는데, 뭐 익히 알아온 바 이게 작가의 ‘의도’일 것이다.

다만 어딘가에서 발견되 키다리가 3페이지 정도의 말을 계속해서 쏟아내는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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