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실천문학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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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에 관해서라면, 참으로 할 말이 많다.

최근 몇 년 간 새로 접한 작가 중에 이보다 더 관심을 끄는 작가는 없었다.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읽고는 오랜만에 나온 멋진 장편이라 생각했고,

<끝나지 않는 노래>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메시지가 좋았다.

이 작가에 본격적으로 매혹된 것은 작가가 발표해나가던 단편들 때문이었고, 그것은 작년에 <팽이>라는 소설집으로 묶여 나왔다.

이 작가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도 있고, 이미지의 깊이도 확보하고 있고, 상상력도 풍부하며, 디테일이 뛰어나며, 심지어 유머도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자기 색깔을 찾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새로 나온 책을 읽으니 아, 이게 이 작가가 가려고 하는 길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의 생애를 통째로 되돌아보는 일의 어떤 엄연함, 혹은 위대한 처연함 같은 게 이 소설에 있다.

‘왜 나는 살아 있는가’가 아니라 ‘왜 나는 죽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일이 그것이다.

현재의 “원도”가 과거를 끊임없이 반추한다는 점에서 황정은의 <야만적인 앨리스씨>를 떠올리게도 하고,

몰락의 원형을 찾아가는 서사라는 점에서 최제훈의 <나비잠>도 떠오르게 한다.

원도를 죽지 않게, 지금에 이르게 한 그것은 무엇인가.

계속해서 언급되듯 그것은 “모든 것”이다.

삶의 한 순간은 결국 모든 것이라는 것.

예컨대,

“죽지 않을 수 없다. 태어나는 순간은 기억에 없다. 죽는 순간 역시 기억에 없을 것이다. 시작과 끝이 텅 빈 구멍이다. 그 구멍으로 온 생이 콸콸 쏟아져 사라질 것이다. 그것을 묶을 수 없을까. 밀봉할 수 없을까. 어머니다. 어머니가 시작했다. 어머니가 끝내야 한다. 그 구멍에, 어머니를 넣어야 한다. 어머니를 반으로 뚝 잘라 절반은 시작에 절반은 끝에 집어넣어, 내 인생이 새지 않도록 구멍을 막아야 한다.”

와 같은 것. 결국 어머니도 아니었던, 끝도 시작도 없는 던져진 존재로서의 생.

그가 죽지 않은 이유는 “모든 것”이다. 대답없는 질문들, 타인에 대한 분노와 질투, 그리고 기껏 사랑과 욕망과 행복따위의 것들, 온갖 폭력과 좌절과 실망, 그 모든 것이다.

삶의 순간들 모두가 생의, 아니 불사(不死)의 원인.

왜 “원도”일까. 생의 밑그림을 찾으려(原圖), 멀리 도망가기 때문(遠逃)이 아닐까.

결국 죽지 않은 원도. 이렇게 묻는다.

“그리고 지금 여기, 당신.

지금까지 원도의 기억을 쫓아온 당신도 한 번쯤은 이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

이런 인물이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나?”

여러 번 생각했다. 솔직히.

그러니까 우리가 쉽게 내뱉는 말들. “쟤는 도대체 왜 사는 거야?” 같은 질문.

“죽지 못해 산다”는 뻔한 대답들.

소설 속에서 아버지의 말이라고 생각했던, 혹은 원도의 내면이라고 생각했던

그 굵은 글씨의 말들이 사실은 나의 말이 아니었나.

왜 당신은 죽지 않았느냐고, 혹은 죽지 못했느냐고, 힐난하고 있는 것이 내가 아닌가.

타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또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방법에 관한

이 무서운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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