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욱, 천국보다 낯선(민음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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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멋진 소설을 읽었다.

아픈 눈을 끔뻑대 가며 펼친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이 소설이 좋으리라는 건 읽기 전에 이미 예측할 수 있었다.

이장욱이 최근에 써내고 있는 단편들이 너무도 훌륭했기 때문이다.

이제 <고백의 제왕> 이후, 새로운 단편집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데, 우선은 이 책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다섯 명의 친구가 있고, 그 중 하나 A가 죽는다.

그리고 그 A를 조문하기 위해 김, 정, 최 세 사람이 차를 타고 K시로 내려가고, 염이라는 사람은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 기다린다.

이들 모두는 결국 죽거나 혹은 그와 비슷한 상태가 된다는 것.

 

제목에서부터 그렇지만 이 소설은 영화 <천국보다 낯선>을 떼어 놓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이장욱의 동명 소설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고, 짐 자무쉬의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를 실망하며 봤던 터라,

마음 먹고 그 영화를 미리 찾아 보았다.

영화는 너무도 훌륭했고, 소설을 읽기 전에 영화를 보았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 소설은 영화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이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소설을 읽고 나서야 온전히 영화를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를 삼켜버린 이 소설은 군데군데 흥미롭게 영화를 변주하면서 끌어들이고 있는데 이를테면,

영화에서는 이들의 여정이 중요하게 그려지긴 하지만, 이들이 머무는 공간보다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이장욱은 슬쩍 이를 로드무비, 아니 로드픽션으로 바꾸어 놓는다.

밤의 도로를 달리는 이들의 엇갈리는 이야기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비단 내 개인적인 취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영화가 결국 세 명의 인물을 헝가리 부다페스트, 플로리다, 뉴욕으로 어긋나게 만든 것과 달리

소설은 이들을 한 군데로 모은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결말이기도 하지만 정말로 어떤 ‘공간’이기도 하다.

아무튼 영화를 보지 않고서는 이 소설의 절반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는 개인적인 확신이 있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될 것 같다.

결국 죽어버린 세 명의 친구들이 소도시의 공용 터미널에 새벽녘에 도착하고,

거기에는 사회적으로(서류상으로) 죽은 것과 다름없는 염이 그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카메라가 된 A가 이들을 맞이하는 그 장면.

 

소설 중간중간 카메라인 것 같은 무언가를 인물들이 느끼는 듯한 문장들.

각자의 기억이나 시간들이 엇갈리는 부분들 역시 너무나 매력적이다.

 

이장욱을 읽으면서 항상 느낀다.

누가 이장욱을 좀 설명해주었으면, 왜 그의 소설이 멋진지 정말로 멋지게 설명해주었으면.

그저 “낯섦”이라는 어휘로는 포착되지 않는 무언가가 그의 소설 속에 있다.

그것은 아마도 끝내 현실을 놓지 못하는 몽상가적 기질 같은 게 아닐까 싶은데,

어떤 후배가 말했듯 그건 일종의 ‘타협’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에서 그렇다.

 

소설의 좋은 문장들을 옮겨 놓는다. 아무래도 그러지 않고서는 지나치기가 힘들다.

“그게 좋았다. 이 사람의 내부에는 빈방이 참 많구나. 내면에 있는 빈방. 내가 하릴없이 좋아하게 되는 건 그런 종류의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빈방이 있다면, 그 방에 과묵하고 고독한 손님을 들이고 싶었다. 낯선 손님과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앞으로의 계획이나 과거의 행적을 묻지도 않을 것이다. 침착한 공기와 평화로운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목적의 전부인…… 그런 방이기 때문에. 갓 빨아 낸 신선한 모포의 향기가 떠도는 무채색의 방이기 때문에.”(16)

“사람에게는 영영 버리지 못하는 습성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38) “사람에게는 버리지 못하는 게 있는 법이지만,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있는 법이다”(40)

“우리는 한때 ‘패밀리’였다. 함께 수업을 듣고, 함께 밥과 술을 먹고, 함께 공부를 했다. 나는 ‘시절’이라는 단어에 호감을 갖고 있지 않다. 그 단어는 지나간 시간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채색한다. 나는 과거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유형의 인간이 아니다. 시간은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무한하게 수렴되고 반복되며 부서지는 파동일 뿐, 과거 현재 미래의 순서를 따라 흐르는 아늑한 강물이 아니다. / 하지만…… ‘시절’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시간이 있다. 비가 내리는 밤의 창밖에 시선을 두고 있으면 친구들과 보낸 그 시절의 이미지가 스냅사진처럼 유리창에 비치곤 했다.”(65)

“밤의 국도에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았다. 김이 속도를 조금씩 올렸다. 차선들이 일정하고 규칙적인 속도로 다가왔다가 순식간에 뒤로 사라졌다. 차선을 따라 차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차를 따라 차선이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또는 차가 차선을 빨아들이는 듯한 느낌. 우리와는 무관한 세계에 있던 차선들이 문득 우리에게 몰려왔다가 보이지 않는 등 뒤의 세계로 사라졌다.”(89)

“특유의 빠르고 추궁하는 어조였다. 나는 불쾌감을 느꼈다. 단지 어조 때문은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대학 시절의 최가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과거가 현재에 침입한 기분, 과거가 현재를 점령해 버린 기분. 시간이 제멋대로 뒤섞여 버린 듯한, 그런 기분. 나는 그런 기분을 좋아하지 않았다.”(100)

“늙은 여자는 웃으며 승낙했다. 병사의 어깨를 잡아 자신의 사타구니로 끌어당겼다. 병사는 여자의 성기에 코를 받았다. 말 그대로 성기에 코를. 깊고 음침한 어둠에 코를. / 그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깊은 곳에서 지나갔다. 자꾸 미끄러지고 자꾸 흩어지는 밤이었다. 자꾸 꿈틀거리고 자꾸 움직이는 밤이었다.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면 더 어두워지는 밤이었다. 어린 병사는 그곳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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