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음과모음, 2013년 겨울호

마지막으로 읽는 지난 겨울 계간지이다.

세 편의 소설들이 실려 있다.

 

1. 전경린, 맥도날드 멜랑코리아

전형적인 중견 작가의 작품이다.

쌓인 세월의 무게만큼 삶에 관한 통찰력이 담보된 인물들, 지나치기 쉬운 흔들림의 순간들, 미묘한 감정들의 출렁임.

이런 것들이 잔뜩 들어 있다.

그러나 맥도날드의 풍경에 관한 흥미로운 도입부에 비해 후반부로 갈수록 소설을 점점 실패한다.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세계의 풍경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점차 갸우뚱거리게 되며 급기야 왜 맥도날드가 필요했는지 알 수 없게 돼버린다.

맥도날드라는 것은 곧 자본과 익명의 상징 같은 것인데, 이 소설의 두 인물, 남녀의 관계는 그것과 별로 연관이 없다.

우울이라는 감정은 결국 슬픔마저 빠져나가버린, 어떤 평온한 감정의 휘발 상태라는 서술은 반짝이지만 소설의 이야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 삐걱거림의 방점을 찍는 것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겨우 마음을 열어 이 황폐한 두 남녀가 가까워지려는 순간, 여자는 조용하고 단호하게 이를 거부한다.

독거노인으로 고독사할 것이라 생각하곤 하는 이 여자에게 그토록 많았던 생의 환멸 속에서도 어딘가에서 희망이 꿈틀거린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뭐,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결국 남자를 거부하고 밤길을 홀로 걷는 이 여자가 강간을 당하고 마는 설정은 정말이지 뜨악하다.

게다가 그 고통을 뉴스로 방영되는 세계의 재해에 갖다 붙이며 소설을 끝맺다니.

몇몇 빛나는 문장들로는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수준이다.

 

2. 조경란, 오랜 이별을 생각함

작가의 원숙함이 빛나보이는 때가 이런 순간이지 않을까.

이별을 앞둔 중년 남성의 목소리를 이처럼 담담하게 들려줄 수 있는 정도의 내공은 보통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앞선 전경린의 작품과 여러 측면에서 비교해볼 만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선 제목이 마음에 든다. 오래도록 이별을 생각해왔다는 의미와 오래되어버린 이별을 생각한다는 의미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친구 어머니의 사십구재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으로 날아와 있는 이 남성이 한국으로 곧장 돌아가지 않고 며칠의 ‘여름휴가’를 가지면서 ‘이별’은 시작된다.

그는 아내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고, 아들과의 이별을 겪은 사람이다.

사려 깊고, 대체로 차분하게, 그리고 합리적으로 살아온 인생이지만 어떤 갑작스러운 순간에 돌출해버린 자신을 잊지 못한다.

이를테면 아들이 태어났을 때, 그의 손가락을 꽉 움켜쥐던 그 작은 손가락들을 순간 뿌리쳤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의 울음. 익사해버린 열한 살의 아들을 생각할 때, 기억은 그를 통째로 지배한다.

어쨌든 그 사건 이후로, 그는 아내와 부분적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이를 고백하는 주인공의 목소리는 정직하게 흔들리고, 휘청거리며 담담하다.

그의 아내는 딸과 함께 ‘크랩이 유명한’ 어떤 곳에 가 있는 것 같다.

그는 지금 일본의 온천에 있으며, 어머니의 집이 아직 남아 있는 통영으로 가려고 한다.

친구인 ‘명’은 배를 만드는 일을 한다.

그의 아들 ‘한’은 익사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뜨거운 한여름을 배경으로 하면서 바다를 넘나들며 이별을 생각하고 있다.

찌는 듯한 더위에 공원의 커다란 분수 앞에 앉아 있는 주인공의 모습은 그래서, 낯설게 슬프다.

 

3. 최민우, 붉은 숲

원자력 발전소가 있던 무진에 폭발사고가 일어나고 그곳은 폐허가 된다.

그러나 거길 떠나지 못하고, 몰래 들어가 주민들의 민원(?)을 처리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니, 카키와 수연.

어디서 흘러들어온지 알 수 없는 카키라는 듬직한 여성의 정체도 흥미롭지만, 수연의 사연이 조금 더 특별하다.

폭발 사고로 소방관이던 아버지의 살점이 녹아내리던 순간을 경험했고, 건물 하나, 골목 하나에 어떤 기억 하나쯤은 망설임없이 투영할 수 있는.

그런 그녀가 어둔 밤을 비추는, 인간이 만든 별과 같은 가로등 불빛을 바라보는 심정이야 오죽했으랴.

이 작가를 실제로 본 적이 있다.

등단 이후로 매 계절 단편 한두 편씩을 꼭 발표하고 있는 이 작가의 눈은 정말이지 반짝이고 있었다.

뭐든지 갖다주면 ‘척’하고 한 편의 소설을 써줄 것 같은 풍성한 눈빛.

다양한 소재에 대해, 어느 수준 이상을 담보할 수 있는 작가라 생각된다.

그러나 자기 색깔을 갖는 것도 필요할 것이고, 이 소설처럼 장편의 품을 단편으로 소비시켜버리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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