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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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라 조금 망설였다.

게다가 제목에서부터 풍기는 참으로 미국적인, 그리고 예측되는 서사들 때문에도 망설였다.

망설임을 불식시킨 것은 영화의 덤덤함 같은 것이랄까.

흑인 노예의 이야기라고 했을 때, 우리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지점들을 굳이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흔한 드라마가 되지 않도록 고심한 것 같다.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는 것. 특히 실화를 바탕으로 할 때, 리얼리즘의 위대함 같은 것이 생겨난다.

 

갑자기 노예가 되어 가족과 떨어진 채 12년을 보내야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에 더 보탤 것은 없을 것 같고,

다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훌륭한 기법들을 기록해두고 싶다.

한스 짐머의 음악은 영화를 쓸데없이 웅장하게 만들지도 않고 지나친 감정의 과잉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뭐랄까. 가슴에서 들려올 법한 선율을 적절하게 흘리고 있다는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다. 아카데미에서는 여우조연상만을 가져간 모양이지만, 또 마이클 패스밴더의 연기가 인상적이긴 했지만,

솔로몬 노섭 역할을 맡은 치웨텔 에지오포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름은 곧 잊어먹을 것 같다)

그의 눈망을은 어찌나 맑고 투명하던지.

이 영화의 또 하나의 특징이기도 한 클로즈업을 감당할 수 있는 얼굴이었다.

그의 얼굴과 표정과 눈빛 때문에 이 감독이 클로즈업의 활용을 결정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세계의 무심함”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흑인 노예가 갖은 고초를 겪는 장면에서 이를 지켜보는 백인들은 물론이거니와 같은 처지의 노예들조차 무심하다.

백인의 무심함은 흑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데 기인하고, 흑인들의 무심함은 어쩔 수 없는 생존의 방식이다.

그런데 이 감독, 스티브 맥퀸은 그 순간마다 풍경을 비춘다.

이런 지독한 ‘인간의 순간’에 하늘은 눈부시게 파랗고, 노을은 붉게 물들고 있으며, 산뜻한 바람에 나뭇가지는 흔들린다.

이 놀랍도록 냉정하고 무심한 세계를 신의 시선이라 보아도 좋겠다.

목화밭 농장에 닥친 병충해처럼 이 세계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있을 뿐이다.

(이 무심한 세계에서 등장한 브래드 피트와 같은 조력자는 그래서 조금 어색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재현’인 것을.)

 

이 감독의 차기작은 도대체 무엇일까.

<셰임>의 세계와 <노예 12년>의 세계는 사실 좀 멀다.

그리고 내가 <셰임>을 보고 기대했던 것은 <노예 12년>이 아니었다.

물론 실망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도 스티브 맥퀸에 관한 온전한 신뢰는 다음 영화에서 결정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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