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결, 4월의 공기(곰,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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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가 자신의 본명을 버리고 장편소설을 썼다.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 조앤 롤링과 로버트 갤브레이스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시도된 이 흥미로운 프로젝트는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애초에 필명을 쓰는 작가는 많았지만 어떤 유수의 작가가 이름을 숨긴 경우는 한국에선 거의 없었으니까.

여기에 “유명문학상 수상 작가의 가명 소설 전격 출간”이라는 수사마저 붙어버리면 궁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누구는 이런 시도가 지나치게 ‘세속적(?)’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런 사람들은 정말 세속이 뭔지 모르나보다.

아무튼 이 소설은 <본격세속 청춘소설>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자전적 소설이다.

 

나는 이 소설을 몇 페이지 읽고, 작가가 누군지 알아버렸다.

또 계속해서 읽어가면서 작가에 대한 여러 정보 혹은 증거를 확보했지만, 제일 확실한 건 이거였다.

단 몇 분만에 이 작가는 나로 하여금 웃음을 참지 못하게, 하필 카페에서 이 책을 펼친 나를 면구스럽게 만들었다.

내가 소설을 읽고 킥킥대는 경험은 이제 아주 희소한 것이어서 여기에서 벌써 극소수의 작가로 후보군은 압축되었고, 여러 정보를 조합하니 싱겁게 추출되고야 말았다.

 

이 희대의 작가 최순결의 본명은 최민석이다.

빠른 77년생이며, 남쪽 지방의 해안가 도시에서 태어났다.

2010년에 등단해, <능력자>, <쿨한 여자> 같은 작품을 썼다.

<능력자>로 2012년에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고.

최민석이 최순결이라는 건 이 책의 여러 실증적인(?) 정보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자전적이라고 했으므로), 더 확실한 것은 전작들에서 이어지는 그 찌질함과 개그감이다.

이건 최민석이 아닐 수가 없다.

아니라면, 정말이지 이보다 더한 충격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최민석이다.

 

친절하게도 그는 왜 이런 짓(?)을 하게 되었는지 소설 속에 써놓았다.

 

그러나 나는 결국 우리가 눈물을 흘리고 상처를 받고 웃음을 터뜨리는 건 모두 현실의 세계이고, 허구의 이야기는 충족시켜줄 수 없는 궁극의 벽 같은 게 있다는 걸 느꼈다. ‘허구의 이야기는 완벽하지만 심장을 어루만져주진 못한다. 반면 현실의 이야기는 초라하고 식상하고 때론 진부하기까지 하나 내장을 운동케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중략) 그래서 말인데 혹시 내가 소설을 쓴다면 에세이 같은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실의 사건이란 개연성도 부족하고, 일관성도 부족하지만 엄연히 우리를 살게 하고 멈추게 하고 나아가게 하고 죽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p.152)

 

그러니까 이런 시도가 ‘작가로서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고 싶다’라는 식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실과 소설의 경계에 있는 그 묘한 지점. 그러한 이야기를 써내려면 거추장스러운 이름은 좀 치워둘 필요가 있었다는 거다.

결국 순식간에 이 소설을 읽고 나서는 “아, 당했다”라는 생각만 들었다.

이 작가의 능수능란함에 놀아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긍정적인 의미에서다.

 

이 소설이라면 “야 요즘 소설 중에 재밌는 거 없어?”라는 무수한 질문에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소설들을 읽으면서 선뜻 추천할 만한 소설이 거의 없다는 게 나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특히 저 질문이 이 바닥과는 관계 없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때, 그것은 거의 “인간이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에 맞먹는다(“없다”라고 대답하는 게 둘 다 속편하다).

1980년대와 2000년대의 중간에 95학번으로 끼어 지난 시간들을 ‘살아내야 했던 청춘’에게 바쳐진 이 찌질한 송가는 ‘욕지기가 치미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를 잠깐이나마 멈칫하게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추천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덧1. 자신의 이름처럼 끝내 감추고 있는 것이 하나 더 있는 거 같은데, 무라카미 하루키다.

하루키스러움이 아주 둥둥 떠다닌다.

온갖 문화적 기호들 속에 하루키의 이름은 쏙 빠져 있다.

 

덧2. 결국 성은 바꾸지 못한 작가의 선택에서 정말이지 최민석스러움을 느낀다.

“왜 성은 바꾸지 않았나요”라고 물어보면 찌질한 요설이 또 시작될 거 같아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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