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집단주의

블로그에 책이나 영화에 관한 글 이외에는 쓰지 않으려고 했고,

이런 일에는 무엇보다 정말로 ‘침묵’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사건은 정말로 비교불가능한 충격인 것 같아 몇 자 쓰게 되었다.

 

 

보통의 참사라면 비행기의 추락이나 건물의 붕괴 같은 것을 떠올리게 된다.

이 경우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더라도 그 전체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다.

그냥 그 순간에 거기 있었기 때문에 같은 이유로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일 뿐이다.

지켜보는 우리는 대개 절망이나 안타까움 같은 감정을 갖게 된다.

 

총기난사 같은 참사를 떠올리면 또 조금 다르다.

어떤 공동체가 소수의 광기에 의해 무참히 부서진다.

비뚤어진 인간의 본성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지켜보는 우리는 대개 참담함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는 것 같다.

 

세월호 사건은 이 두 유형의 참사를 합쳐 놓은 최악의 형태인 듯 하다.

<뉴욕타임즈>인가, 이 사건을 “전시 아닌 평시에 발생한 사고 중 최악”이라고 말한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닐까.

어떤 집단이 순식간에 외부의 힘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그러니까 ‘학살’은 전시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무기가 아닌 어떤 것에 의해, 하나의 공동체가 처참하게 부서지는 순간은 평시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이 일어나버렸다.

같은 학교에 다니던, 동급생 절반 이상이 죽었다.

살아 남은 자들의 삶, 죽음을 견뎌야 하는 자들의 삶, 무력하게 지켜보는 자들의 삶.

어쩌면 전쟁보다 더 참혹한 일이 아닐까.

 

 

많은 원인들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뉴스에서 무수히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한국의 끔찍한 ‘집단주의’에서 찾고 싶다.

단순히 ‘수학여행’을 없애자는 정도로는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한국사회는 공동체를 한 곳에 모아놓고 같은 경험을 하게 하지 않으면 유대 관계란 형성될 수 없다고 여긴다.

특히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이를 강요한다.

그러니 이들이 자라서 또 같은 방식을 적용한다.

실로 끔찍한 순환이자 반복이다.

집단적 경험의 유의미함을 학습하고 자라난 세대에게 개인적 삶은 곧바로 무의미함으로 이어진다.

남들과 다르게 사는 사람은 ‘낙오자’라는 시선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공동으로 편입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써 왔는지.

 

왜 우리는 모두를 한 곳에 모아 놓는 걸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나.

그곳에서 빠져 나와 움직이면 왜 그토록 불안한가.

나부터 돌아봐야 하는 슬픈 밤이다.

 

 

+ 30미터 아래로 가라앉은 배의 “에어포켓”에서 60여 시간 만에 구조된 사람의 동영상을 봤다.

믿음이나 바람의 차원이 아니라, 생존자들의 구조가 정말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이 절망의 끝에서 작은 기적 하나 정도는 일어나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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