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세계, 2014년 봄호

여러 가지 일이 겹쳐 뒤늦게 계간지 봄호에 실린 소설들을 읽기 시작한다.

부지런히 읽지 않으면 곧 여름호가 나올 기세다.

여름호들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잡지가 될 것 같으니 준비를 단단히 해둬야 할 것 같다.

 

<작가세계>를 먼저 읽었다.

나는 이 잡지가 꾸준히 나오고 있는 줄 몰랐다.

변명하자면 서점을 직접 들러도 모든 문예지들을 직접 확인하기는 어렵고,

홈페이지에도 2010년 이후로 업데이트가 없어 착각을 했다.

(http://www.segyesa.co.kr/writer/writer.Asp)

그런데 25년 간을 쉼없이 달려 이번에 100호를 찍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잡지의 생명력에, 내 무지에 놀랐다.

이 잡지는 매호 한 명의 작가(시인)를 선택해 특집을 마련한다.

이문열을 시작으로 김지하, 최인훈, 이청준, 고은, 오정희, 이문구, 박완서, 김승옥 등 이제는 대가가 된 문인들부터

박민규, 김영하, 배수아, 김연수, 은희경, 한강, 김애란 등 우리 시대에 친숙한 작가들까지 그 대상이 되어 왔다.

한두 차례 중복된 문인을 제외해도 거의 100명에 가까운 작가들이 이 지면을 통해 집중 조명 되었다.

작가론, 작품론 등은 물론이고 그동안 그 작가에 대해 씌어진 평론, 논문들의 서지사항도 정리해서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적잖이 도움이 되는 ‘자료’다.

그래서일까.

또 변명을 하자면 비슷한 시기에 발행되었던 다른 잡지들과는 달리 ‘사료적’으로 접근하게 되었던 것 같고,

또 요즘 잡지들은 거의 작가특집 지면이 있기 때문에 <작가세계>를 통하지 않고서도 자연스럽게 여러 작가를 접할 수 있어 굳이 찾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잡지를 잊고 있었던 건 좀 지나친 무관심이었다.

다행히도 100호 발행기념 행사에 참석할 수 있어 무지를 많이 걷어냈다.

B선생님 덕분이며, 고은, 이어령, 오정희, 도정일, 유안진 같은 ‘어른’들을 마주한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잡설이 좀 길었다.

100호 특집이라 그런지 작품이 좀 풍성하게 실린 거 같은데, 소설은 6편이 실려 있다.

순서대로 읽는다.

 

1. 구효서, 12월 12일

제목부터 느낌이 심상치 않다 했더니 첫 문장이 이렇다.

“아내는 저쪽 방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이응은 이쪽 방에 누워 천장을 보았다.”

눈밝은 독자라면 바로 알아챘을 거고, 그렇지 않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을 것이다.

워낙 힌트가 많기 때문에.

1930년대의 이상을 2014년으로 데리고 왔다.

카메라를 들고 경성, 아니 서울을 돌아다니는 ‘이응’이 결국 통인동 “이응의 집” 앞에 도달하는 짧은 여정이다.

이상에 관해, 또 이상 문학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독자라면 군데군데 흥미를 느낄 부분이 제법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 작가는 대체 어떤 삶을 살길래 소설이 이렇게 “젊은지” 모르겠다.

<나가사키 파파>를 몇 해 전에 읽었을 때도 그랬지만 이 소설도 도저히 1957년생의 작품으로는 읽히지 않는다.

이것은 긍정도, 부정의 의미도 아니다. 아직은 다만 그렇다고밖에 말할 수 없겠다.

 

2. 김숨, 도루코면도기와 프로야구시즌

이야기는 간단하다.

뱃속의 아이가 유산되었다는 것을 알고 수술을 받는 여자의 이야기.

하지만 소설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김숨 소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게 모조리 들어 있는 느낌이다.

소설 속 여자와 남편의 대화가 특히 그렇다.

그들의 대화는 이어지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여자의 말들과 남편의 말들을 따로 모아서 읽어야 할 정도다.

혼잣말의 세계, 어김없이 등장하는 노인, 저 도루코면도기와 프로야구라는 상징.

수술을 끝낸 여자가 다른 여자의 원피스와 구두를 신고 도루코면도기를 손에 꼭 쥔 채 남편과 택시에 오르는 마지막 장면은 실로 압도적이다.

당연히,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3. 원재훈, 고양이가 지나간 자리

하,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까.

신인작가인가 했는데, 읽으면서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신춘문예에도 뽑히기 어려운 필력이다.

아마추어가 쓴 게 분명했고, 읽는 내내 후회와 번민의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오타마저 넘쳐나는 이 소설은 1988년에 시로 등단한 작가의 작품이었다.

아마도 50대 중반의 남성으로 짐작되는데 소설은 안 쓰시는 게 좋겠다.

진심이다.

 

4. 편혜영, 식물 애호

김숨과 마찬가지로 이야기는 간단하다.

교통사고가 난 부부, 아내는 죽고 남편은 살아 남았다.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고 몸도 가누기 힘든 상태로.

‘오기’라는 이름의 남자는 고아였고, 아내가 죽음으로써 그의 곁에는 장모가 남았다.

한 순간의 사고로 모든 생이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남자의 내면을 차분하게 그려냈다.

그러면서도 편혜영 그 특유의 분위기, 그러니까 비밀스러운 그로테스크함(?)이 살아 있다.

<아오이 가든>의 편혜영과 최근 <몬순>의 편혜영이 만난 느낌.

이 작가는 요즘 표면적으로 드러난 서사 말고, 그 이면에 깔린 서사를 염두에 둔 채로, 다시 그걸 숨기고 감추는 식으로 소설을 구성하는데,

그게 <몬순>처럼 흥미로운 모호함이 되기도 하지만, 이번 경우는 좀 알 수 없는 의아함이 있다.

장모가 정원에 어떤 구덩이를 파는 것은 중요한 장면이면서도 그 의중은 감추어져 있다.

그러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거의 “식물”인 오기를 거기에 심으려고 한다는 느낌은 제법 확실하게 오지 않는가.

이러면 전략적으로 좀 실패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5. 방민호,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답함

음, 소설가와는 웬만하면 친해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를 잘 알면, 평자로서의 거리 유지가 어렵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읽어보자면, 우선은 좀 잡다하다.

소설의 문단이 너무 자주 바뀌는 것이 그 증거.

하루키에게 답한다는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하루키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말그대로 두서없이 펼쳐진다.

이때 두서없다는 건 약간의 장점이 되기도 하는데, 그것이 ‘나’의 고민과 촘촘히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나’라는 개인이 “사회라는 것의 개선을 위해 살지 않겠다”고 쓴 하루키의 말과 관련 있다.

그 문장을 하루키가 어디서 썼는지, 실제로 그런 문장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하루키에게 물어 보는 것, 그리고 ‘나’ 역시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고민을 아직도 하고 있는 386이 있을까.

그것 자체는 흥미로웠으나, 소설의 결말이 “글은 나를 건져 올려줄 것이다”인 것은 별로 흥미롭지 않다.

 

6. 신주희, 인어

신인작가의 기운이 팍팍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아마도 어렵게 상상해냈을 한강 인어의 모습이 나름 인상적이었고,

채권추심원, 그러니까 빚 독촉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한의 모습도 흥미로웠다.

다만 디테일이 조금 아쉽다는 점, 그러니까 채권추심원으로서만 겪을 수 있는 어떤 일들이 필요해 보인다.

‘갑’과 ‘을’, 또 ‘슈퍼 갑’ 운운하는 것은 소설의 언어가 현실을 따라가는 형국이라 또 아쉽다.

물로 변해가는, 혹은 거품이 되어버리는 인간의 이미지는 신선했지만 그걸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한 것 같다.

내 생각에 한은 이미 한강에 몸을 던져 죽었고, 자신이 살아났다는 생각이 ‘착각’인 거 같은데,

그러니까 죽기 직전 잠깐 꿈을 꾸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이 별로 효과적으로 서술되지 못한 것 같다.

‘환상’을 세심하게 조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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