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혁,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문학과지성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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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이 또 한 편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고 왔다.

어떤 사람이 죽음에 이르렀을 때 그 사람이 원했던 무언가를 반드시 없애주는 일.

그 일을 직업으로 갖는 딜리터 구동치의 이야기다.

얼마 전에 정부에서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목 아래 사립탐정 인증 제도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는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25&aid=0002323790)

이게 정말로 실현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소설 속에서는 그렇게 그려진다.

그동안 김중혁이라는 작가가 흥미를 보여 왔던 여러 소재들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다.

 

우선은 형사 혹은 탐정물.

몇몇 단편에서 사건 해결을 위해 형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거니와 그의 소설이 대체로 어떤 수수께끼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임을 생각하면 어색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본격적인 탐정물을 쓰는 일이 김중혁에게는 약간의 모험이었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도 추리소설에 관한 이야기가 말미에 잠깐 등장하지만 “재미”가 없다면 추리소설은 의미가 없다.

사건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해야 하며, 수수께끼는 극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그래서 순수문학(이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무튼) 쪽의 작가들이 장르문학에 가까운 작품을 쓸 때 대부분은 어설프다.

‘장르적’인 것을 끌어들이는 일은 장르소설이 갖는 특정한 문법들과 관습들을 수용하면서도 비틀어야 하는,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정유정이 쓴 <7년의 밤>이나 <28>은 그런 난경을 정확히 보여준다.)

어쨌든 김중혁은 그 힘든 길을 선택했고, 실패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야기는 흡인력을 갖고 단숨에 읽히며, 사건의 해결도 흥미롭게 이루어진다.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설에서 벌어지는 ‘큰’ 사건이 구동치라는 인물의 가치관을 바꿀 만큼 강력한지 의구심이 들고,

이름 석 자를 부여받은 인물들의 역할이 모호한 경우가 있다.

특히 오윤정이나 정소윤 같은 여성 인물들이 불필요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김중혁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어느 정도는 확인할 수 있는 것인데, 그의 관심은 의외로 “오래된 것”에 있는 것 같다.

재기발랄하게 도시의 일상을 그려내는 작가로 오해되기 쉽지만 사실 김중혁은 세계의 이면을 바라보는 것에 관심이 많다.

이 소설에서 천일수라는 인물이 하루에 딱 한 문장씩 일기를 쓰는데, 마치 그것처럼 김중혁은 단 한 문장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1층과 지하 1층 사이에 / 의 공간이 있다든가(1F/B1), 건물의 유리창들이 깨져서 낙하한다는 식(유리의 도시)이다.

그런 한 줄의 상상력만으로도 이 세계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배경을 담당하는 악어빌딩에 대한 묘사를 보면 이렇다.

“냄새는 악어빌딩 어디에나 스며 있었다. 아무 데나 코를 박고 조금만 기다리면 곧 냄새가 나타났다. 냄새는 악어빌딩의 공기였고, 콘크리트 벽과 파이프와 좁은 계단 사이를 흘러 다니는 혈액이었다. 보이지 않으므로 형체를 확인할 수 없었고, 말로 설명할 수 없으므로 정체는 더욱 모호했다. 땅속인지 벽 속인지, 1층인지 4층인지, 냄새의 시작이 어디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지하의 레스토랑에도, 1층의 철물점에도, 2층의 합기도장에도, 3층의 피시방에도, 4층의 오피스텔에도, 옥상에도, 냄새는 있었지만, 모두들 모른 척, 없는 척했다. 처음 맡으면 불쾌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곧 익숙해지는 냄새였다.”

소설의 시작 부분이다.

‘냄새’로 대변되는 악어빌딩의 모습은 처음에는 불쾌하지만 곧 익숙해지는 곳이다.

바로 이 묘사가 이 책의 전체를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한 사람을 둘러싼 어떤 세계, 사물들에게는 ‘익숙함’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닳고 닳은 말이지만 ‘추억’이 된다.

새로운 사람들은 악취에 코를 막고 그것을 철거해버리려 하지만,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그 냄새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냄새 때문에, 그 익숙함 덕분에 사람들은 살아갈 수 있다.

소설 속 악어 동네는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 작가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리는 피식 웃었다. 사무실을 빼줘야 할 때가 됐는데, 이 동네로 이사 올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중략) 위에서 내려다보면 모든 풍경에 이야기가 있어 보인다. 골목과 골목 사이에 사는 사람들은 이야기에 둔감하지만 풍경을 조망하고 연결하면, 이야기가 된다.”

이리라는 구동치의 동료 탐정은 구동치의 일을 도우면서 악어빌딩에 사는 인물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들 간에 형성된 도시적 유대감은 고립된 섬처럼 살아가는 이리에게 묘한 울림은 준다.

이 지점은 아빠의 하드디스크를 찾으려는 정소윤과도 이어진다.

그녀가 그것을 찾는 이유는 단 하나, 모든 추억이 거기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구동치가 하드디스크에서 정소윤이 찾던 사진들을 돌려주는 순간이 이 소설의 핵심으로 보인다.

또 하나 추가하자면 1970년 산 속에서 수련하는 무도인으로 이루어진 “원수도장” 같은 단체도 그 맥락에서 읽을 수 있고,

깊이가 1천 3백 미터라는 노르웨이의 바다 속에 구동치가 자신의 아버지에 관한 추억을 던져버리고 오는 마지막 장면도 그렇다.

 

그러니까 문제는 결국 이것이다.

시간이 깃든 오래된 것들은 결코 딜리팅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작가의 주제의식과,

구동치라는 탐정이 천일수, 이영민 등으로 얽혀있는 어떤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서사가 ‘조응’하느냐는 것.

글쎄, 나는 좀 부정적이다.

김중혁이 차라리 신나게 탐정소설로 달려갔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고,

그게 아니라면 좀 더 실험적인 서사가 필요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소설은 김중혁만이 쓸 수 있는 것이기에 이 작가에 대한 기대를 결코 접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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