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문학, 2014년 봄호

<21세기문학> 봄호는 역시나 상당히 알차다.

무엇보다도 “작가특집”에 비평가 황현산 선생을 선정했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평단과 대중의 황현산에 대한 열광은 나로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측면이 있었는데,

여기에 실린 황현산의 “젊은 비평가를 위한 잡다한 조언”이라는 글은 정말로 ‘선생’의 면모였다.

고이 스캔해서 챙겨다니며 지칠 때마다 읽어야겠다.

소설은 다섯 편이 실려 있다.

역시 순서대로 읽는다.

 

1. 박민규, 볼리바르

1960년대의 볼리비아.

내전과 가난으로 얼룩진 그곳에서 한 소년이 자란다.

그의 이름은 마리오였다가 볼리바르로, 다시 마리오였다가 볼리바르로 돌아온다.

이 과정이 어떠했는지는 굳이 요약하지 않기로 하고, 박민규에 대해 이야기하자.

이 작가는 이제 한국문학을 “한국어로 쓴 문학”으로 정의하려나 보다.

1년 전쯤에 <군함도의 별>에서는 일제 말 징용 조선인들과 일본인들의 이야기더니,

지난 계절의 <소머셋 가는 길>에서는 미국 시카고의 갱단 이야기,

이제는 1967년에 태어나 2007년에 마약조직 두목이 된 볼리바르의 이야기이다.

박민규는 이제 세계의 어딘가에 툭 점을 찍어서 그곳, 그때를 중심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내는 중이다.

이 방식은 오로지 박민규만이 할 수 있고, 하고 있는 것이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최근 작품들에서는 소설에 주석이 많이 달리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국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주석만이 ‘한국적’이다.

자세히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요컨대 박민규는 세계문학이라는 이름의 공허함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찌 되었든, 재미있는 작품이다.

특히 볼리바르(마리오)의 엄마 마리아 로쟈가 끝내 호수에 뛰어드는 장면은 백미.

 

 

2. 박솔뫼, 어두운 밤을 향해 흔들흔들

이 작품은 고리 원전 사고가 발생한, ‘그 이후’를 묘사한다.

그런데 묘사라고 하기도 어려운 게 소설의 내용은 “부산타워”에 관한 내용이 전부다.

부산역에서 부산타워가 보이는지의 의문으로 시작해 자기 주위의 모든 것들이 부산타워로 변하고, 급기야 그 부산타워가 자기에게 말을 걸어오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 환상들 사이에서 불쑥 끼어드는 ‘그 이후’의 세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결국 도달하게 될 곳이 생각보다 훨씬 끔찍한 곳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박솔뫼의 경우는 최근에 ‘열심히’ 썼으니까 굳이 보태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부산역에서 부산타워가 보이려나.

 

 

3. 심아진, 따귀를 낳았고

아, 오랜만에 만난 대단한 소설.

소설의 첫 부분을 읽었을 땐 ‘이게 뭐야 도대체’ 했지만 금세 굴복했다.

이 소설의 서술자 ‘나’는 ‘따귀’이다.

그러니까 소설의 첫 문장이 이렇다.

“간호사의 뺨에 짝, 소리를 만들며 내가 등장한 순간, 어수선하던 병원이 일시에 조용해진다.”

이 얼마나 놀라운 상상력인지.

이후 묘사되는 “따귀”의 속성은 더 놀랍다.

그것은 “매번 인식하기에는 너무 사소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만큼 미미하지도 않은 적절한 무게감을 가지고” 있고,

어떨 때는 “머리라고 해야 할지 뺨이라고 해야 할지, 정확하게 지칭할 수 없는 곳을 맞았”지만,

“때리는 사람이나 맞는 사람 모두 그것이 정확히 나와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 것이다.

이것 말고도 곱씹을 문장이 아주 많다.

그러니까 따귀는 인생의 어떤 순간에 불쑥 나타나 삶을 뒤흔드는 존재다.

이 소설의 주인공 은선에게는 그런 순간이 몇 차례 있었고, 끝내 따귀의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이 온다.

따귀가 따라다닌 은선의 삶이란 그렇게, 하고 한 줄을 건너 뛰어 “살아왔다”라고 써야될 만큼 힘겨운 것이었다.

자신을 도와주던 헌병이 상사에게 따귀를 맞는 순간, 자기가 지켜주려던 친구에게 따귀를 맞는 순간,

짝사랑하던 고교 담임 선생에게 따귀를 맞고, 급기야 자신도 따귀를 때렸던 순간,

그런 순간들이 은선이라는 인물을 조금씩 무너뜨려 왔다.

 

이쯤 되면 나도 따귀를 맞았거나 때렸던 순간이 언제인지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 나는 아, 나는 따귀를 못본 체, 모른 체 하고 살아 왔구나.

그 덕분에 내가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은 삶을 살아나갈 수” 있었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이번 계절의 베스트로 충분히 꼽을 만하다.

 

 

4. 이아타, 시베리아 동물원

중년 남성 둘의 약간은 이상한 우정 같은 게 엿보이던 소설 초반부는 흥미로웠으나,

뒤로 갈수록 그저 그런 작품이 되고 말았다.

우선은 주인공인 ‘나’에게 전혀 기대감이 생기지 않는다.

아내와의 이혼으로 겪는 어떤 고독과 우울은 전혀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인다.

자신의 “여자 문제”로 헤어졌다고 써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반성이라도 했으면 모를까, 그런 자신을 시베리아 호랑이의 처지에 빗대어

“나는 허파와 심장 사이 좁은 공간으로 걸어 들어가려는 것이었다, 냄새나고 쓸쓸한 곳으로.”

와 같은 문장을 쓰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동물원에서 만나기로 한 ‘비포 와이프’는 끝내 나타나지 않고, 자신의 매장인 백화점 영업점의 장사도 시원찮은 지금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때리는 동물원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너도 느끼게 될 거야. 자신이 누구인지 점점 알 수 없어져버리지.”

라고 쓰는 것 역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다.

 

 

5. 이장욱, 우리 모두의 정귀보

갑자기 희대의 천재 화가가 된 정귀보(1972-2013)라는 인물의 평전을 쓰게 된 ‘나’의 이야기.

정귀보의 삶을 추적하는 ‘나’는 그의 삶이 하나도 특별할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연과 즉흥, 평범과 순응이 적당히 섞인 삶.

그것은 “멀리 있어야만 가까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든가,

“졸업할 때가 되어 졸업”하는 것, 혹은 “관습적인 작품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인물이 살아 있다는” 의견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정귀보의 죽음 직전에 그를 본 주점의 주인의 말 같은 것.

“여긴 혼자 오는 손님은 드문 편이라 기억이 나요. 그냥 얌전하게 소주 두 병을 비우고 나갔지. 스마트폰도 들여다보고 하면서 멍하니 마셨어요. 어디다 전화를 걸어 언성을 높이지도 않았고, 행패도 부리지 않았어. 안주는 도토리묵과 김치전이었고. 아, 도토리묵은 우리가 서비스로 준 거야. 자살할 표정이었냐고? 에에,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얼굴에 쓰여 있는 것도 아니고. 근데…… 또 그렇다고 생각해보면 확실히 그런 표정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인생이란, 뭐 꼭 그래야 했던 것은 아니지만 또 생각해보면 그러지 않을 수 없었던, 분명히 어디서 본 듯한데, 이제보니 나를 닮은 그림 같은 것이다.

 

결국 ‘내’가 ‘평전’이나 ‘연보’가 아니라 “소설”을 쓰는 이유는, 그것이 소설일 때 비로소 “우리 모두의 정귀보”가 되지 않겠느냐는 이 작가의 다짐 같은 게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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