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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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편의 훌륭한 영화를 봤다.

이 영화가 왜 아카데미에서 각본상밖에 받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다.

애초에 호아킨 피닉스만 기대했던 나로서는 감탄의 연속.

가까운 미래에 “가상인격”을 설정해놓고 ‘사랑’과 ‘관계맺음’에 대해서 집요하게 성찰하는 이 영화는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가 않다.

주인공인 저 남자, 테오도르는 컴퓨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운영체제인 사만다와 사랑을 나누는데, 그렇기 때문에 화면은 늘상 테오도르의 얼굴만 비춘다.

수많은 클로즈업을 감당하는 것은 호아킨 피닉스의 몫이기도 하지만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그녀는 목소리로만 이 영화의 여주인공이 되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다.

게다가 그 가운데 끼어드는 가까운 미래의 인간 세계의 모습들, 테오도르의 과거 회상 같은 장면들이 뛰어난 영상미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감싸는 음악들은 너무도 훌륭하고 적절해서 결코 화면과 분리될 수 없을 정도다(OST를 반드시 소장해야 한다).

 

이 영화는 컴퓨터와의 사랑,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세계의 모습 같은 것들이 세심하게 구성되어 있다.

마치 동성애를 소재로 하는 영화가 이를 편견없이 받아들이는 사회를 그려냄으로써 사랑의 경계를 지우려고 하는 것처럼,

이 영화는 사랑이라는 것이 특정한 형체가 없어도 가능한 것이고, 어떤 형태의 관계라도 그것이 사랑이라면 “공인된 미친 짓”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 내내 사려깊은 친구로 테오도르와 대화를 나누는 에이미는 정말로 멋진 대사를 많이 남긴다.

특히, “과거란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말이 몇 번을 곱씹게 한다.

그 외에도 이 둘이 나누는 대화는 인간이 ‘언어’로 서로를 위로하고 안아줄 수 있다는 위대함마저 보여준다.

결국 사랑이라는 건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

그러니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상대가 가상의 인격이든, 몸을 가진 실체이든 상관 있겠나.

흔히 “말이 통한다”고 얘기할 수 있는 상대란 새삼 얼마나 흔치 않은지.

에이미와 헤어지게 된 찰스가 이를 ‘묵언수행’으로 극복하려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은 관계의 핵심이 ‘말’에 있음을 보여준다.

 

테오도르가 다른 사람의 편지를 대필하면서 써낸 말들, 그러니까 뻔한 말들이 갖는 진심이야 말로 “삶으로부터 온 편지”가 아닐까.

이 영화의 대사 대부분은 일상적인 말들, 인사나 고마움, 미안함, 공감의 언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가상현실로 가득찬 미래 사회가 온다고 해도, 결국 인간은 ‘말’로서 서로 사랑하고 관계맺을 것이며, 그것은 여전히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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