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2014년 봄호

문사는 봄호부터 약간의 변화를 줬다.

백색의 표지는 깔끔한데, 목차는 좀 알아보기가 어렵다.

본문 폰트도 바뀌었는데, 글쎄 아직은 좀 어색한 듯하다.

어쨌든 개편을 한 때문인지 분량이 상당히 두툼해졌고, 내용도 알찬 편.

조금 더 ‘문지’다운 것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소설은 총 다섯 편이 실렸다.

작가들의 면면이 상당한 기대감을 주지만, 역시나 그 때문인지 대체로 그저 그런 느낌.

 

1. 김원일, 비단길

 

작가의 전 생애를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에 바치고 있는 노작가의 작품.

여지없이 분단 현실을 다루고 있다.

작품은 제17차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던 2010년 즈음을 배경으로 한다.

전쟁 중 북으로 갔던 아버지가 아직 살아 있으며, 남한에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상봉을 신청했던 것.

이야기는 상봉을 준비하는 가족들의 기대감과 상봉의 순간, 그리고 상봉 이후를 찬찬히 다룬다.

그 과정은 간략히 끝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서 이 소설은 단편 세 편 정도를 합친 분량을 자랑한다.

이 작가가 보여주는 수많은 디테일과 거기에 담긴 질곡 같은 것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별다른 감흥이 일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한국전쟁의 참상을 모른다거나 분단의 현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이 작가의 태도가, 아니 이 소설이 다분히 당위적이며 의무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우선 사태의 원인을 자꾸만 어찌할 수 없었던 외부의 폭압으로 돌리고 있는 것.

물론 그게 제일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사태의 구성원이었던 인물들이 하나같이 그 힘에 휩쓸리기만 했을 뿐이며 악의는 결코 없었다는 식으로 그려지는 것은 좀 의아하다.

게다가 지금 상봉을 맞이하게 된 주인공인 아들, 그리고 그 아들의 아들까지, 너무나 반듯하고 모범적이어서 당황스럽기 그지없고, 아버지를 수십 년 만에 만나 어머니가 그 짧은 상봉 직후 서서히 앓아눕기 시작해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은 이게 지금 21세기형 반공멜로소설인가 싶을 정도였다.

이 소설의 진의를 모르는 바 결코 아니지만, 이제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가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과거의 화해와 봉합에 힘쓰기보다, 좀 더 사태의 진실과 그 이면에 다가서는 치열한 증언을 기대해본다.

 

 

2. 정영문, 개의 귀

 

이 작가의 매력은 만연체의 문장을 유머에 적극 활용한다는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라는 걸 읽어가며 계속 자각하면서도 새어나오는 헛웃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게 정영문의 매력이다.

이미 <어떤 작위의 세계>에서 이를 유감없이 보여주었기도 하지만, 좀처럼 고갈되지 않을 듯하다.

헤어진(질) 여자친구의 집에 가서 그녀의 애완견의 귀를 접었다 폈다 하다가 돌아오는 어떤 남자의 이야기에서 얻어낼 게 뭐가 있겠는가.

그러다가 술에 취해 공상과 허상을 반복하다가 수면제를 다량으로 먹고 침대에 눕는 이 남자를 지켜 봐야 할 이유가 있을까.

있다.

정영문은 소설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머릿속을 굴러다니는 그 알 수 없는 형질들을 ‘글’로 써내는 것에 관심이 있다.

그러니 일반적인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정영문은 따분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굳이 소설일 필요가 없지만, 또 굳이 소설이 아닐 이유도 없는 독특한 소설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정영문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골치 아프게 쓰는 작가는 제법 있다.

하지만 골치를 직접 쓰는 작가는 몇 없다.

정영문은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작가다.

 

 

3. 김미월, 만 보 걷기

 

김미월은 작가 본인의 인상과 성격이 고스란히 담긴 소설을 쓴다.

숨길 것도 없고, 더 드러내고 싶은 것도 없다는 듯이, 그녀는 착하고 착실하게 쓴다.

그래서일까. 그래서일 것이다.

좀 밋밋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 작품은 특히 그렇다.

춘천에서 아미라는 ‘그림 그리는 여행자’를 만나 연인이 되었던 미래는, 지금 춘천에 놀러 온 ‘머빈’을 가이드해주고 있다.

머빈은 그녀가 아미와 함께 홍콩으로 여행 갔을 때 함께 만났던 친구.

그와 춘천 곳곳을 걸으며, 아미와의 일들을 떠올리는 구성이다.

뭐, 김미월이 쓰는 춘천이야 디테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만, 플롯은 좀 엉성하다.

일단 아미와 미래가 왜 헤어지게 되었는지 정확히 나오지 않는다.

미래의 태도로 보아서는 아미가 죽은 게 아닐까 생각도 들지만 또 어떤 부분에서는 그저 관계가 정리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무튼 이 헤어짐과 미래의 만보기, 머빈과의 동행 등이 어떤 의미를 갖고 연결되는지 잘 모르겠다.

게다가 소설의 마지막 장면도 의문투성이인데, 어떻게든 끼워 맞추려 해도 어색하다.

아무튼 좀 희미하고, 아쉬운 작품.

 

 

4. 김성중, 관념 잼

 

김성중은 또 재미있는 작품을 하나 쓴 것 같다.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아니 보잘 것 없다고 해야 할 노낙경이라는 인물이 이혼과 해고 후 홀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면서 사건은 벌어진다.

이것저것 외롭지만 자유로운 생활에 만족하던 낙경 씨는 갑자기 사물들이 자리를 뒤바꾸는 것을 목격한다.

슬리퍼가 시계가 되고, 수도꼭지에서는 커피와 맥주가 나온다.

천장과 벽만 그대로인 채 온갖 사물들이 다 뒤죽박죽이 되어버리다가 드디어 사물들이 제자리를 찾더니 이제 자신이 유리병이 되어버린다.

유리병이 된 낙경 씨는 그저 ‘생각한다.’

그는 이 상태를 “관념 잼”이라 불렀다.

그 상태에서 그는 이제 망각으로 돌입한다.

모든 사물의 이름을 잊고, 오로지 자신만을 인식한다.

그리고 결국 새로운 세계로 진입해 관념 잼 밖으로 빠져나오게 된다.

이 기묘한 모험담을 능청스럽게 풀어가는 작가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결국 이야기의 결론이 좀 뻔하게 나버린 것 같은 느낌은 있지만 이런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무엇보다도 두 번, 세 번 읽고 싶게 만든다는 것이 장점이다.

한 번 읽고 여기서 세세히 말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꽤 있다.

 

 

5. 정지돈, 미래의 책

 

이 작가의 이름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작년 이맘때쯤 실린 등단작이 제법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눈먼 부엉이>라는 제목이었던 거 같은데, 제목 그대로 이란 작가 사데크 헤다야트의 그 책을 누군가가 찾아다니는 내용이다.(기억나는 건 이 정도인데 거기서도 ‘장’이라는 인물이었던 것도 같고)

아무튼 흥미롭게 읽었었고, 이번 소설도 재미있게 봤다.

이 작가가 “책”이라는 물질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음은 이제 확실한 것 같다.

소위 메타픽션이라는 이름으로 소설 자체에 대한 관심을 두는 작가는 많았다.

그런데 그 관심이 지속되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다.

혹시 이 작가가 이런 형태의 작품을 쭉 써나간다면 그것 자체로 상당히 흥미로울 것 같다.

결국 책은 꿈이기도 하고, 사랑이기도 하고, 또 미래이기도 하다는 것이 핵심인데, 이렇게 쓰니 유치하게 보인다.

김씨 유학생과 알랭, 장, 그리고 진이라는 인물의 관계를 생각하면 좀 더 유치해지기도 하는데, 뭐 나쁘지 않은 유치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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