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중앙, 2014년 봄호

문예중앙 봄호를 읽는다.

일종의 개편(?) 이후 상당히 크게 달라질 것 같았던 이 잡지는, 그러나 대체로 기존의 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다양한 시도들, 이를테면 <발바닥소설>이라든가, <한 글자 사전> 같은 코너를 여전히 기획하고 있으며,

우려(?)와는 달리 비평의 공간도 마련해주고 있는 듯하다.

잡지의 편집이나 디자인도 꽤 훌륭한 편이어서, 보는 맛이 있다.

소설 편식자인 나로서는 시의 공간과 시인의 비중이 넓고 커 보여서 살짝 아쉬운 것도 사실이지만,

아무튼 <문예중앙>만의 색깔을 가지게 되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단편소설은 세 편이 실려 있고, 조해진이 장편 연재를 시작했으며, 신인상 발표가 있었다.

 

1. 임철우, 흔적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말년의 양식’이 이런 것이었을까.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한 노년 남성의 이야기다.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고, 아내가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키우던 개마저 안락사 시킨 그는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철저히 혼자라서, 그는 생을 통째로 되짚어 보면서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고민한다.

그의 주위를 둘러싼 몇 개의 죽음 속에서 그는 심연의 바다로 몸을 던지기로 결정한다.

소설이 바다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끝났기 때문에 그 결심이 실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가 죽은 아내의 환영을 보면서 나누는 대화, 자신에게 거의 유일하게 남은 것인 “과거의 기억”들이 훨씬 곱씹을 만하다.

그로부터 그가 얻은 결론이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다음 생에서는 잠시 피었다가 사라지는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가 되고 싶다는 그의 마지막 말처럼, 그는 모든 흔적을 지운다.

조촐하게 지내던 거처와 주변을 정리하는 그의 모습은 죽음이 아니라 실종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죽었다는 흔적조차 없게 만드는, 그럼으로써 비로소 이 세계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고 싶어 하는 그의 노력은, 불가능해서 더 애처롭다.

 

 

2. 백민석, 수림(愁霖)

확실히 백민석이 달라졌다.

거칠게 말하자면 사건에서 인물 중심으로 옮겨온 것 같다.

관계나 내면에 대한 고민이 이야기를 장악하는 힘과 만나고 있다.

우울하고 긴 장마라는 뜻의 수림이라는 단어를 가져오면서 소설은 시작한다.

‘남자’와 ‘여자’의 의문스러운 관계가 조금씩 풀려가는 방식이다.

남자의 ‘물의 터널’과 여자의 끊이지 않는 ‘눈물’이 두 달간의 지리한 장마 동안 만나는 이야기다.

남자는 아마도 바람을 피워 이혼을 한 것 같고, 여자는 결혼한 상태.

그리고 소설은 결국 이 둘에게 다시 한 번 수림을 대비할 기회를 주는 것으로 마무리.

이렇게 보면 마치 바람 핀(필) 남자의 항변을 고백록의 형태로 쓴 것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끝내 이 두 인물의 핵심을 비워둠으로써 단순하게 읽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니까 남자의 전력(前歷)이 대체 무엇이고, 여자의 우울(優鬱)의 원인이 어떤 것인지 흐릿하게 처리하고 있는 것.

이게 십 년 전의 백민석과 다른 지점이며, 이를 통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게다가 소설을 밀고 나가는 힘은 여전하다.

 

 

3. 염승숙, 시절의 폭

이 소설이 아니었다면 임철우나 백민석에게 훨씬 더 감응했을지도 모르겠다.

염승숙의 이 작품이 앞의 두 작품을 잊게 만들었다.

인생의 어떤 한 순간을 통해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것을 다시 어떤 순간에 되돌아보는 형식의 단편을 내가 좋아하는 데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적 긴장을 유지하게 해서 더욱 좋았다.

사촌은 ‘명’과 내가 보낸 한 시절의 기억들과, 그들의 삶을 통째로 바꿔놓은 한 사건이 소설의 한 축이고,

변변찮은 소설가로서 아내와의 별거에 있는 나와 작은아버지의 뼛가루를 안고 귀국하는 현재의 명이 또 다른 축이다.

이 두 축은 나의 어머니, 아내, 그리고 명의 아버지 등을 통해 점점 가까워진다.

특히 기골이 장대하지만 마음은 여린, 그래서 섬에서 평생을 물고기를 잡으면서도 숱하게 다시 그 고기들을 놓아주곤 했던 나의 작은아버지이자 명의 아버지가 핵심이다.

그 작은아버지가 우연히 길어 올린 어리고 약한 범고래 한 마리가 이들의 삶을 완전히 뒤흔들게 될 줄은 그때 아무도 알지 못했다.

작은아버지가 극진히 보살피고, 지자체와 수족관이 힘을 합쳐 ‘범이’를 회복시킨 뒤, 방송국 기자들이 잔뜩 모인 배 위에서 범이를 방류시키던 그 현장에서,

방류 되자마자 백상아리에게 범이는 먹혀버렸고, 이를 지켜본 작은아버지는 골반뼈가 부서질 정도로 넘어지면서 충격을 받았으며,

명이는 ‘나’와 늘 함께 듣던 워크맨을 바다에 떨어뜨려버렸다.

그 순간을 경험하고, 기억하고, 그로 인해 바뀌어버린 자신을 이해하고, 서로를 보듬고 감싸온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여기에 도착해 있다.

명은 아버지를 섬으로부터 탈출시켜 미국으로 모시고 갔고, 10여 년 만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온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우산도 없이 양 어깨가 젖은 채 부고를 가지고 돌아온 명과 그를 맞이하는 ‘나’의 모습은 먹먹하기 그지없다.

‘나’의 침묵을 유일하게 이해하던 명과 자신의 침묵의 이유를 글로써 겨우 보여줄 수 있는 소설가 ‘나’가 보낸 ‘한 시절’이 한꺼번에 몰아쳐오는 장면이다.

섬세한 묘사들과 훌륭한 문장들이 즐비한데, 몇 군데의 문장이나 표현이 좀 걸린다.

너무 지나친 잣대를 들이대나 싶지만 워낙 좋은 소설이어서 그런 단점이 더 커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계절의 베스트 중 하나로 충분히 꼽을 만.

 

 

+ 이승은, 소파

신인상 당선작이다.

문예중앙은 소설의 경우 두 편을 보내게 하는데, 이건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겠다.

두 편의 격차가 크다는 것은 단점이기도 하지만 또 잘 쓴 작품의 성취가 아주 뛰어나다는 것일 수도 있고,

두 편의 격차가 작다는 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한 편만 응모하는 방식이었다면 어땠을까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당선자는 두 편이 ‘고르다’는 평을 얻었고, 여기에서는 그 중 한 편, <소파>를 실어 놓았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약간의 기시감과 아쉬움도 있었다.

자세히 말하자니 지치고, 앞으로의 행보도 지켜봐야 하니 여기까지.

 

 

 

 

 

(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