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소설 몇 편과 문학사상, 2014년 6월호

계간지는 대체로 사 보는 편이지만, 월간지는 쉽지 않다.

계간지에 비해 망할(?) 확률이 많기 때문이다.

작품의 숫자가 많은 계간지의 경우 어쨌든 좋은 소설이 한두 개씩은 있기 마련인데, 월간지는 그렇지 못하다.

월간이라고 해봤자 사실 <현대문학>과 <문학사상>인데, 좀 올드한 것도 사실.

물론 금전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읽지 않을 이유가 없긴 하다.

아무튼, 월간지의 경우는 읽어볼 만한 작가가 신작을 발표했을 때만 챙겨보는 편이다.

그래서 좀 뒤적거려서 몇 편의 소설들을 찾아 읽었다.

<현대문학>은 일련의 스캔들 이후로,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발행되고 있다.

요즘 같은 시국에 고작 그 정도의 파문이야 별일 아닌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약간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문학사상>은 6월호로 통권 500호를 맞았다.

매달 한 권씩, 그러니까 대충 계산해도 40년을 훌쩍 넘겼다는 것이다(<현대문학> 더 오래 됐을 것이다).

다른 잡지들에 비해 영향력은 상당히 줄었으나, 그 세월의 무게와 “이상문학상”의 전통이 강력하다.

아마 다음 호부터 표지 디자인이 교체되어 나오지 않을까 싶다.

 

 

1. 김숨, 초야, <현대문학>2014년 2월호

사실 월간지를 뒤적거리게 된 건 이 소설 때문이다.

H의 강력한 추천을 받기도 했거니와 김숨이라면 좀 챙겨봐야겠다 생각했다.

지난 번에 <도루코면도기와 프로야구시즌>을 인상깊게 읽은 탓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로 특별한 인상을 받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김숨은 너무도 현실적인 관계들에서 오는 아주 비현실적인 소통 같은 것인데, 그 장점이 드러나지 않은 것 같다.

소설은 죽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마지막 날, 어머니와 합장하는 장면이다.

이 아버지로부터 갈라져나왔거나 아버지와 연결된 핏줄들이 여기에 다 모여 있다.

‘근’자 돌림의 다섯 아들과 주인공은 딸, 큰어머니, 새어머니, 며느리 등등이다.

이 핏줄들이 뻗어나가 맺고 있는, 혹은 맺었던 관계들이 ‘딸’의 눈으로 조망된다.

그 관계들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다만 김숨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20년 전에 죽은 어머니와 지금 땅에 묻히는 아버지가 저승에서 보내는 첫날밤을 온 가족이 한마디씩 거들어가며 지켜보는 이 모습이 우리 삶의 축소판 같다고.

그리고 딸인 그녀가 늙은 부모의 육욕을 확인할 때의 남우세스러움이나, 자신이 재가해 20년 간 함께 살던 남편이 옛부인의 무덤에 합장되는 것을 바라보는 논산 어머니의 마음 같은 것이 뒤섞이는 현실을 감당하는 게 살아 있는 자들의 몫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이 소설의 단점은 3인칭으로 씌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지나친 혼잣말과 자기 기억이 좀 거슬린다.

‘그녀’를 ‘나’로 바꾸면 박완서의 소설로 읽어도 무방한 느낌이다.

 

 

2. 조경란, 기도에 가까운, <현대문학>2014년 2월호

김숨을 읽으려고 하다가 조경란이라는 이름에 읽게 된 소설.

아직 조경란이라는 이름은 나로 하여금 그냥 지나치게 어렵게 만드는 작가인가보다.

별 기대는 없었는데, 상당히 좋게 읽었다.

미호라는 주인공이 최근 몇 년 동안 자신의 주변에 세 명의 노인밖에 없었던 것 같다는 진술로 시작하는 소설이다.

노년과 죽음에 대해 찬찬히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그 이야기 방식이 평범한 소설들과 좀 다르다.

미호라는 여자의 삶에 불쑥 찾아온 어떤 ‘사건’이 이야기를 흥미롭게 한다.

대화 상대를 찾는 노인과,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게 된 자신의 엄마, 그리고 지하방에 전세로 들어온 연변 할머니.

이 세 노인의 이야기가 미호를 통해 산발적으로 전개된다.

어찌나 숙련된 솜씨인지 뻔한 소재들을 버무리는 방식이 대단하다.

그리고 엄마를 마지막으로 면회 간 장면은 소설의 백미.

소설의 말미를 기록해둔다.

세 노인들 중 한 사람은 죽었고 한 사람에게는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는 중이며 다른 한 사람은 미호와 크게 관계가 없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었다. 뒤에 남겨진 기분으로 불쑥불쑥 그 노인들에 관해 떠올리게 되는. (중략) 어머니에게는 미호가 본 노인들의 한 가지 닮은 점에 관해서 말할 것이다. 그들이 혼자 가끔씩 먼 데를 바라보고 있는 걸 뒤에서 본 적이 있었다고. 미호의 눈에는 마치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 같아 보였다고. 어쩌면 미호에게는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는 지금이 그러한 순간에 가까울지도 모른다고.(127-8)

 

 

3. 배수아, 노인 울라Noin Ula에서, <현대문학>2014년 4월호

배수아의 소설이다.

번역과 해외체류, 그리고 페이스북(?)으로 상당히 바빠 보이던데 신작이 있었다.

배수아니까, 이렇게 시작한다.

기차에서 내린 단 한 명의 승객은 나였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 누구의 꿈도 아니다. (88)

멋진 문장이다.

그리고 소설은 더 멋지다.

“노인 울라”라는 지명은 실제로 있는 모양이다.

몽골의 울란바토르에서 북쪽으로 130km 정도 가면 있는 산이라고.

이 소설은 꿈과, 현실과, 동화와, 신화와, 전설 같은 것들이 뒤섞여 있다.

아마도 소설의 얼개는 이 지역에서 전해져 오는 어떤 이야기인 것 같고, 디테일들은 실제의 것에서 가져왔을 것으로 보인다.

이걸 조합해 아름다우면서도 섬뜩한 ‘눈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런 솜씨로 세계의 여러 장소를 다루어주었으면 할 정도로, 좋게 읽은 작품이었다.

 

 

4. 박성원, 평균율 4번, <현대문학>2014년 5월호

이 작가는 아직도 어떤 소설을 써낼지 궁금증을 갖게 한다.

지난 번에는 마치 홍상수 영화와 같은 찌질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써내더니, 이번에는 이상한 사건에 휘말린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흥미로운 것은 그 사건의 전말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방으로 출장 온 남자는 심드렁하게 숙소에서 여자를 산다.

그리고 그 여자가 가버리고 난 후 자신의 신상을 모두 알고 있는 의문의 전화를 받는다.

그 전화는 남자에게 방금 만난 J라는 여자에게서 가방 속 usb를 빼내 자신에게 전달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남자는 성공하는 것 같다, 라고 쓸 수밖에 없다.

특이하게도 이 소설은 그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는지에 별로 관심이 없다.

어쨌든 사건은 정리되고 소설은 단숨에 결론에 이르고 있다.

감춰진 게 많은 이 소설은 그러나 메시지가 확실하다.

‘근사한 음정을 평균해서 실용적으로 간편화한 음률’이라는 음악 용어로 보이는 ‘평균율’이 암시하듯, 인생의 지속은 곧 평균이라는 것.

무수히 많은 삶의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한다는 것이 결국 모든 인간의 평균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몸을 파는 스무살의 J가 원하는 행복은 대학가의 원룸이었고, 지금의 아내가 원하는 것은 새로 생긴 오피스텔 한 채이다.

그것만 있다면 비를 맞으면서도 행복에 겨워 웃을 수 있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게 평균이다.

“화성 신도시 센스빌 2차 105동에 사시고, 아드님은 유치원에 다니고 따님은 두 살이네요. 그리고 자동차는 14년식 SM3네요.”라고 묘사하면 대충 들어맞는 중산층의 삶.

요컨대

그러다가 문득 남자는 자신이 지구 위에 넘쳐나는 사람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73)

이런 문장.

주제를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좀 아쉽지만 흥미롭게 읽었다.

 

 

5. 김덕희, 낫이 짖을 때, <현대문학>2014년5월호

신춘문예 당선자 특집으로 실려 있는 소설 중 한 편이다.

신인 작가들의 경우 대개 등단 다음 작품들을 보면 그 미래를 알 수 있는데, 우선 스케일이 크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요즘 신인들은 흔히 메타소설이라고 부르는, 좀 나쁘게 말하면 신변잡기적이고 사소설적인 경향에 빠지는 편인데, 지금은 그 바닥에 경쟁자가 너무 많다.

어지간히 고민하고, 머리를 쥐어뜯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고수가 많아졌다.

그곳을 피하려면 진짜 이야기의 세계로 범주를 넓혀야 하는데, 그건 또 소스가 많아야 한다.

이 작가는 제법 소스가 많아 보인다.

고백하건대 등단작 <전복>은 인상적이지 않았다.

신인에게서 느껴지는 패기가 없달까, 좀 기시감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매끄럽긴 했지만 강렬함은 없었던 그 이유를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워낙에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작가였던 것이다.

하나의 소재에 집착해 파고들던 시기는 이미 지났고, 어떤 재료로도 소설을 빚어낼 수 있는 시기에 도달해버린 것 같다.

이 소설은 문자의 의미를 모른 채 필경사로 살아온 한 노비의 이야기다.

이야기 자체는 무척 흥미로운데,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글자의 뜻을 모르는 노비가 자신의 삶을 1인칭으로 내내 이야기하는 것은 좀 어색하다.

물론 자신의 삶을 구술로 받아 적게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소설 서두의 몇 단락으로 마무리하고, 한 줄을 건너 뛴 회상 부분은 3인칭으로 처리했다면 훨씬 더 세련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더 아쉬웠던 것은 조선시대의 ‘문자’와 ‘노비’라는 민감한 소재를 가지고 오면서 디테일을 생략한 점이다.

이때의 문자란 당연히 한자일 것인데, 이것을 직접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노비의 이름인 수복에 관한 장면, 글씨를 연습하는 장면, “나는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문장 같은 것들이 한문 디테일로 더욱 풍부해질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기도 하고,

‘한글’의 탄생과 연관시키면 임금을 둘러싼 저 일련의 권력 관계와도 흥미로운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다.

앞으로 나오는 작품들을 기대해볼 만한 것이, 문지에서 선정하는 이달의 소설에 <급소>라는 작품이 뽑혔다.

 

 

6. 이나미, 사이프러스 베어 내다, <문학사상>2014년 5월호

일전에 <섬, 섬옥수>라는 소설집에 관해 리뷰를 썼던 적이 있어 챙겨보게 되었다.

<섬, 섬옥수>의 연장선에 있는 느낌이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솜씨는 있는데, 두터운 가면을 쓰고 있는 느낌이랄까.

대부분의 중견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단점인데, 어떻게든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이 작가에게 있다.

그러다보니 인물의 생각이나 혼잣말이 지나치게 많고 장황하다.

또 주인공의 심리를 대변하고, 이를 이끌어내기 위한 인물(영혜 같은 친구)이 필요해진다.

이 인물의 역할을 아무것도 없다. 그저 주인공과 대화를 나눠 그가 어떤 상태인지를 자기 입으로 얘기하게 만들기만 한다.

지금-여기를 보여주기 위해 작위적으로 유행하는 현실의 양태를 가지고 오는 것, 교수, 화가 등의 인물들이 온갖 문화적 기호를 동원해 독자에게 설명하듯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등이 눈에 띈다.

 

 

 

7. 정용준, 개들, <문학사상>2014년 5월호

정용준은 늘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데, 이 소설을 읽으니 이제 어떤 경지에 오른 게 아닌가 싶다.

이 작가가 집요하게 장애, 병, 통증 같은 것을 파고든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것이지만 그 꾸준함은 몇 번이고 지적해야 한다.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세계의문학>에 경장편으로 발표한 장애아들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 작품이 제법 인상적이었는데, 이 단편 역시 그러했다.

이야기는 개를 죽여 그것을 음식으로 만드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각각의 인물들은 사실 약간 전형성을 띠고 있어서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개 사육에 관한 디테일을 통해 보여주는 폭력과 고통의 문제가 섬뜩하다.

마치 사육된 개들이 도살되기 위해 끌려 나가듯, 소설의 주인공인 ‘나’ 역시 일곱 살 때 창문이 없는 방에서 또래의 아이들과 득실거리다 ‘곰’의 손길에 끌려 나왔다.

‘나’는 그 이후 ‘곰’의 양아들이 되어 개를 잡아 죽이는 일에 동원된다.

그리고 ‘나’는 통증을 느끼지 않는 질병에 걸려 있음을 알게 된다.

이후 자신의 유일한 친구인 병구의 죽음, 자기를 죽여달라는 모란의 부탁 등을 거쳐 ‘나’가 ‘곰을’ 죽이는 마지막 장면까지 소설은 진행된다.

그 과정은 아주 흥미롭게 이어지지만, 인물들이 가진 전형성 때문에 여운이 길지 않다는 약점이 있다.

‘곰’은 폭력의 화신이고, ‘이 씨’는 방관자, ‘병구’, ‘모란’ 등은 약자이며 피해자, 그리고 ‘나’는 해결사라는 도식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의 집요함과 꾸준함에, 그리고 폭력에 관한 선뜩한 재현에 지지를 보낸다.

 

 

8. 천명관, 핑크, <문학사상>2014년 6월호

천명관은 신작을 읽을 때마다 엄청나게 기대가 되는 작가 중 한 명인데, 그것은 거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작가에게 소설이란 단연 재미와 동의어이다.

최근 본 몇 작품도 그랬지만, 이 소설 역시 재미있다는 수식 외에 따로 할 말이 별로 없다.

한 대리기사가 어떤 여자손님을 실은 채 벌어지는 일이다.

사건의 흥미도 그렇지만 군데군데 눈을 뗄 수 없는 묘사들과 마지막 문장에 가서 소설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드는 반전의 묘미까지 있다.

 

 

9. 김희선, 스테판, 진실 혹은 거짓, <문학사상>2014년 6월호

아마 아직은 책이 나오지 않았을 텐데, 몇몇 작품들이 여러 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렸었다.

그런데 원래 이런 스타일이었나, 할 정도로 독특한 소설이다.

나는 잘 모르지만 LMFAO라는 그룹에 관한 소설이고, 대부분의 디테일들이 그것으로부터 온 것 같다.

스테판이라는, 지금은 사라진 그룹의 리더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술자에 따르면 그 실종의 이유에는 세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 세 가지 버전은 곧 어쩌면 소설이 두 번째 현실일 수도 있고, 현실이 세 번째의 가설일지도 모른다는 묘한 인상을 풍긴다.

소설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이 재기발랄한 방식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장욱이 요즘 단편들에서 시도하고 있는 방식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