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시

꾸준히 시를 읽어오고 있다.

매달 세 편의 시를 골라 그것에 관한 말들을 쓰고 있다.

시에 관해서라면, 사실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시인들은 언제나 다른 종의 사람들이라 여겨 왔고, 시에 관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일부라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크게 변화가 없다.

깜냥에 맞지 않는 시 리뷰를 쓰게 되면서 내가 했던 유일한 다짐은 이것이었다.

‘적어도 시를 잘라내진 말아야겠다.’

군데군데 떼어내어 시에 관해 말할 만큼, 나는 전문적이지 않다.

그래서 세 편의 시를 골라낼 때 전문을 항상 가져오며, 그것들을 “소개”한다는 느낌으로 쓴다.

사실 그 때문에 ‘내 말’의 공간이 줄어들기도 한다. 원고의 분량은 또 지켜야 하니까.

그런데 문제는 요즘 시들이 정말로 ‘길다’는 것이다.

한 면을 가득 채우는 시가 대부분이고, 몇 페이지를 써내려간 시들도 제법 있다.

그러다보니 “소개”할 수 없는 시가 생기기도 하는데, 여기 옮겨 적을 시가 바로 그것이다.

 

황유원이라는 시인의 이름을, 나는 작년 <문학동네> 신인상에서 보았다.

소설 신인상이야 눈을 반짝이며 지켜보지만, 시는 좀 심드렁하게 들추는 정도였다.

실제로 당선된 신인들의 시를 읽어갈 때 기분도, 심드렁한 게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 때 그 잡지는 내가 좀 잡아먹을 듯이 읽기도 했거니와, 이 시인을 선명히 기억한다.

이례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별다른 논의 없이 당선자로 선정이 되었던 것 같고, 당선작의 첫 구절

“화물칸에 일렉기타를 한 만 대쯤 싣고 가는 세상에서 가장 길고, 무거운 마음 / 그 속을 누가 알겠냐마는 철로만은 알지,”

에 마음을 빼앗겼었다.

잊고 있었던 그 기억과 시인의 이름과 시의 느낌이 <세계의문학> 여름호를 읽으면서 다시 살아났다.

시를 읽으면서 온 마음을 뺏겼던 게 대체 언제쯤인지. 이민하 이후에는 처음인 것 같다.

그냥 그 시 한 편을 여기에 옮겨 놓는다.

 

 

바라나시 4부작

황유원

 

연날리기

 

갠지스 강변에 가면 늘 연 날리는 아이들이 있지

하늘 끝까지 풀어 올린 연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생각할 때

마음 다 놓아 버리고선 어두워진 강변 신나게 내달리지

 

그러던 어느 날 보이지 않던 연들 강풍에 흔들리고

팽팽하던 실들 낚싯줄처럼 요동치기 시작하면

잊고 있던 실에 마음 베이는 아이 하나둘쯤, 있었는지도 몰라

 

하늘이 없었다면 떨어질 것도, 다시 띄울 것도 없었겠지만

어차피 우린 모두 하늘에 담겨 헤엄치는 아이들

한때 하늘을 점령할 듯 연 날리던 아이들

 

그동안 너무 많은 연을 띄웠으므로

팽팽히 당겨진 수만 개 연줄들로 뒤엉킨 마음은

아직도 줄 놓는 법 알지 못하지

 

누가 뭐래도 하늘엔 줄이 없어

줄 달린 연들이 어쩔래야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어차피 우린 모두 하늘에 빠져 익사하는 아이들

 

 

POSTCARD

 

안녕, 늘 오랜만인 당신. 내가 흰 소들에 대해 말해 준 적 있었던가. 골목에서 사람들의 이야기 빼곡히 담긴 신문지나 아직 밥 냄새 채 가시지 않은 종이 접시 따윌 꼭꼭 씹어 먹는 소들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누군가에게 엽서 한 장 쓰고 싶어지는 저녁이야

 

오전에는 파리 떼처럼 잉잉대며 하늘 유영하고 있는 수백 마리 연의 무리 올려다보다 그만 그동안 우리 함께 하늘로 띄웠던 몇 개의 연들을 떠올려 버렸어. 이젠 연줄 모두 끊어 버린 하늘인 척해 버려도 괜찮은 걸까, 하고 생각했을 때 방금 화장터에 도착한 20인분의 목재가 구석에서 풍기던 유난히도 쓸쓸하고 촉촉한 냄새

 

오늘도 일곱 시면 텅 빈 배를 붙잡고 태양은 죽어 가지만 어쩌겠어, 이미 열기는 식었고 네가 내 메일 읽느라 밥을 태울 일도 이제는 없을 텐데. 그러나 창을 열면 어느새 새로운 계절이 도착해 있을 저녁은 과연 지금 어디쯤 오고 있을까, 라고 쓰고 저녁 하늘에 붙어 보려 애쓰는 우표들을 한없이 바라보는 날들이 있어. 지금 네가 읽는 하늘은 어떤 표정의 구름들 배달하고 있을까, 당신의 하늘 아래 서서 몰래 올려다보고 싶어지는 저녁에

 

 

다시, 연날리기

 

온종일을 날고 달리고 뒤엉키고 부서지느라

결국 만신창이가 되고 만 연은

초저녁 조용한 강물에 수장시켜 주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골목에 남은 빛 쪼아 먹던 새들은

검붉게 번진 하늘 너머로 떼 지어 흡수되는 중이었고

 

골목 여기저기 버려진 혹성처럼 처박혀 있는 노인들

적막한 그들의 얼굴은 이미

바람 모두 쫓아낸 하늘의 심심함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방문 앞에 이르러 열쇠를 찾고 있을 때

언제부터였을까.

모르는 새 나의 발목에 감겨 여기까지 풀려온

연줄을 보았다

(그때 몇 겹의 비린 바람

도처에서 서서히 일어나고……)

 

이 밤, 외로운 누군가 나를 날리며 놀고 있는 것일까

 

당신의 발목에도 어쩌면 연줄이 감겨 있는지요

우주의 가장 어두운 아래층에서, 생의 마지막일 무엇처럼

그렇게 나를 간신히 붙들고 있는 당신

혹은 간절히 붙들고 싶던 당신

각기 다른 장소, 다른 시간 속에서 우린

사이좋게 둘이서, 고요한 하늘에 나란히 손잡고 빠져

보기좋게 익사하고 있었습니다

 

 

아르띠 뿌자*

 

떠나 버렸다고

버려 버렸다고 믿은 것들 전부

다시 다 되돌아왔다

내가 달려 나가 줍지 않아도 남이 주워다

대문 앞까지 가져다주는 날 있었다

그놈에게 한바탕 욕지거릴 하더라도

돌아온 것, 다시 내쫓을 순 없었고

 

가트**에서 푼돈 주고 사 강물에 띄워 보낸 디야***

떠나보낸 줄 알고 뒤돌아보면 이미

그 자리에 없다

사라진 게 아니라 디야 파는 아이가

떠내려갈까, 금세 다시 떠올려 좌판에 되돌려 놓은 것

누가 거기다 대고 꽃 모두 시들 때까지 온갖

추잡한 욕 퍼붓는 것 보았지만

어떤 침몰한 기억도 깊은 강바닥 물고기들이 알아보곤

그 앞에서 잠시 놀다가는 법

 

피어난 죄로 무참히 꺾여서

헐값에 팔리고

다시 실에 묶여 떠내려가지도 못하는 빛,

 

그 빛을 사고 또 샀다

모든 여정(旅程) 탕진하고

마침내 두 주머니 텅 빈

부랑자가 되어 있었을 때까지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물에 푹 젖은 연처럼 무거워진 몸으로

누가 울고 있었다

 

한 번 뒤돌아볼 때마다 깊어지는 수위를 느끼며

 

그럼 이제 안녕,

이라는 말에 스미는 뒤늦은 추위를 느끼며

 

이미 멀리

 

떠내려가 있었다

 

 

*          불로써 신께 경배드리고 은총을 받는 제식.
**       강으로 이어진 계단.
***     작은 양초와 꽃을 담은 나뭇잎 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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