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2014년 여름호

계간지 리뷰에 너무 게을렀다.

나는 은근히 멀티태스킹에 약한 것 같다.

해야 할 일들이 있으면 그것 외에는 손대기가 어렵다, 점점.

아무튼 바쁜 일들을 이제야 좀 끝내고 다 지나간 여름의 소설들을 읽는다.

문학동네는 벌써 작가의 면면이 기대감을 엄청나게 갖게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모두, 실망으로 격하되는 일은 없었다.

 

 

1. 김훈, 저만치 혼자서

 

또 김훈이다.

작심한 듯 매 계절 소설을 발표하는데, 역시 김훈이다 싶다.

지금껏 읽은 세 편의 소설이 전부 다른 이야기다.

쉬운 이야기들이 아닌데 어렵지 않게 써내니 대가랄 수밖에.

이번 소설은 말년의 수녀들을 보살피고, 그들의 죽음을 주재하는 “도라지수녀원”의 이야기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으로, 말 그대로 최대한의 선함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김훈은 인간의 삶이 숭고하거나 위대한 것이 아니라 ‘수고로운’ 것임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야기의 시공간을 근원에서부터 시작해 서서히 장악해가는 능력이 감탄스럽다.

분명히 단편인데, 장편을 읽은 듯한 느낌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장편의 일부를 떼어내 읽은 느낌.

 

 

 

2. 정이현, 영영, 여름

 

그 나라의 “돼지”라는 단어로 놀림받던,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의 사이에서 태어난 와타나베 리에의 한 계절.

21세기형 디아스포라들이 경험할 법한 디테일들이 살아 있다.

미묘하고도 오묘한 ‘언어’와 ‘민족’의 세계를 조금은 흔한 방식으로 결론짓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제3국에서 마주친 ‘한국어’의 두 소녀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공깃돌처럼 흐르는 세월과 “싫어요”라고 모국어로 말할 때의 쾌감 같은 것들이 기억에 남는다.

 

 

 

3. 이장욱, 크리스마스 캐럴

 

처음에는 이장욱 소설 같지 않았다.

천명관이나 박민규 같기도 했고, 패기만만한 젊은 작가의 소설 같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자기 부인의 전 남친이라고 주장하는 젊은 친구의 전화를 받은 성공한 중년의 남자.

단 하나의 허점도 없이 득의만만하게 젊은 친구를 제압할 것 같던 이 남자가 흔들이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조금씩 현실이 뒤틀리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 혹은 미래로 보이는 이 소설은 당연히 찰스 디킨스의 동명 작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러니까 결국 이 남자가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은 결국 자신의 모습이라는.

흥미로운 패러디이며, 흡인력이 대단한 작품이었지만, 왜 지금 이 소설인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4. 윤이형, 러브 레플리카

 

어떻게 보면 앞의 이장욱 작품과도 제법 유사하다.

허언증에 걸린, 혹은 계속해서 생이 뒤바뀌는 ‘경’이라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말이 되게 쓰는 소설이 윤이형의 방식이라면 이 작품을 대표로 내세우면 될 듯 하다.

결국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회의의 극단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서사의 순서를 영리하게 배치해 ‘경’의 모습을 엮어내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끝내 소설을 다 읽은 나로서도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으니, 작가의 방식은 성공한 셈.

여기 실린 소설들 중 베스트.

 

 

5. 이영훈, 페달

 

<체인지킹의 후예> 에필로그를 보는 느낌.

남자 청소년들의 ‘게임’에 관한 기억은 머리가 아니고 몸의 차원.

십수 년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 그리고 불길한 예감, 미묘한 만남을 그려내는 솜씨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도 마지막 장면.

‘나’가 ‘진우’를 남겨두고 도망쳤더라도 충분했을 텐데, 오히려 내가 돌아 왔을 때 진우가 사라져버린 그곳에서 게임기의 페달을 밞으며 피투성이의 캐릭터를 바라보는 모습은 읽는 내내 주저하던 마음을 결국에는 덜컥 맡겨버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6. 박솔뫼, 정창희에게

 

박솔뫼는 자전소설도 참 박솔뫼스럽게 쓴다.

정창희는 도대체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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