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 읽은 시

잊지 않고 견딘다는 것

(이 글을 월간 <심상> 8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라는 영화가 있다. 평화롭고 조용한 도시의 한 조그마한 의원, 원장 내외가 그곳에서 평생을 살고 있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지만 장남이 바닷가에서 한 아이를 구해내고 자신은 죽고 말았다. 그 장남의 기일에 그 가족은 매년 이 곳으로 모인다. 영화는 가족의 그 하루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미 자식들은 장성해서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있다. 딸은 먼저 도착해 어머니와 살가운 대화를 나누고 있고 사위는 늘상 그렇듯 잠을 자고 있고 엄숙한 아버지는 조용히 바깥을 산책하며 작은아들은 사별한 전 남편 사이에 아츠시라는 아들이 있는 여자와 결혼해 집으로 향하고 있다. 이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가 죽음에 의한 이별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큰아들을 잃었으며 남편을 잃었고, 아버지를 잃었다. 큰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되려 했기 때문에 가족들의 상실감은 더 컸고 게다가 다른 생명을 구하고 자신이 죽어버린 사실에 더 가슴 아파했다. 여전히 큰아들의 방은 그대로이고 큰아들의 그늘에서 작은아들이 받은 상처 역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수년 간 퇴적된 마음의 상처와 새로 만들어지는 갈등이 1년에 한 번, 가족들 사이에 충돌하는 그날 밤, 그 집의 어머니는 “블루라이트 요코하마”라는 노래를 듣는다. 이 노래를 조용히 따라 부르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인 데다가, 그 노래가 남편이 다른 여자와 함께 있었던 과거의 어떤 순간에 흘러 나왔던 노래라는 사실은 놀랍다. 어머니는 그 노래를 들으면서 그것을 ‘잊지 않고’ ‘견뎌’ 왔던 것이다. 이 노래 가사의 일부에서 따온 영화의 제목 “걸어도 걸어도”는 잊지 않고 견딘다는 의미를 동시에 품고 있다. 걸어도 걸어도 잊을 수 없는 일이 있고, 우리는 결국 걷고 또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잊으면 견딜 수 있고, 잊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능적인 속성에 가깝다면 잊지 않으면서 견디는 일은 인간의 후천적 의지에 가까울 것이다.

 

요코하마의 블루 브리지는 1미터 59센티미터

이렇게 짧은 다리

개울도 강도 없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는 다리.

 

바닥이 푸른 다리

건너는 사람마다 발바닥에

푸른 물감이 묻어나는 다리

모두들 푸른 발자국을 찍으며

건너는 다리.

 

나의 요코하마, 그곳의 블루 브리지는 1미터 59센티미터

이렇게 짧은데 폭마저 좁은 다리

기차도 자동차로 건널 수 없고

두 손을 마주 잡고 건널 수도 없지만

큰 배가 건너가는 다리.

 

가슴에

텅 빈 배

한 척을 안고

푸른 바다를 건너는 다리.

 

박상순, 「요코하마의 블루 브리지」, 《문학동네》, 2014년 여름호

 

앞서 언급한 “블루라이트 요코하마”라는 노래는 사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노래이다. 1968년 일본의 인기 여배우인 이시다 아유미가 발표한 이 앨범은 발매되자마자 1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당시 일본 노래가 금지돼 있던 우리나라에서도 “지하의 인기가요”로 불리며 1970년대에 큰 인기를 얻었었다. 이 노래 덕분에 요코하마는 푸른색이라는 상징을 획득한다. 물론 요코하마는 해안도시이기 때문에 그것이 독특한 계기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이 노래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 한 시인은 요코하마의 블루 브리지를 이야기한다. 1미터 59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은 이 다리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1미터 59센티미터의 이렇게 짧은 다리”라는 표현에서 이것이 인간에 대한 비유로 읽을 여지가 있음은 알 수 있다. 이 다리는 바닥이 푸르러서 “건너는 사람마다 발바닥에 푸른 물감이 묻어”난다고 시인은 쓰고 있다. 이 발자국 역시, 바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라고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이 블루 브리지는 마음의 다른 이름이 된다.

사실 요코하마에는 ‘베이 브리지’라는, 두 항만을 연결하는 아주 큰 다리가 있다. 그 베이 브리지의 거대함과 블루 브리지의 좁고 짧은 다리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조금 더 인간에 가까운 것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블루 브리지에는 “기차도 자동차도 건널 수 없고” 심지어 “두 손을 마주 잡고 건널 수도 없”다. 그러나 그곳에는 큰 배가 건너가는데, 그 배는 가슴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텅 비어 있다. 그 “텅 빈 배” 한 척을 안고 푸른 바다를 건너는 다리의 이미지에 다다르면 이 블루 브리지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시인은 요코하마라는 도시의 이미지를 활용해 텅 빈 마음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요코하마라는 도시와 푸른색의 이미지 덕분에 그 외로움이 황량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 외로움은 견딜 만한 것이 된다.

 

저 소나무 우듬지에

스윽,

 

배를 찔리며 가는 보름달 보아라

 

마을의 집이란 집들은 모두 달 가는 쪽으로

창을 냈구나 창을 내어

오래도록 잠 못 이루고 바라보고 있구나

 

사람을 끌고 가는 달이여

사람을 끌고 가는 달이여

 

이렇게 자꾸 사람을 데려가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냐

 

밤새 달에게 끌려갔다 돌아온

인월 사람들 얼굴은 반쪽이다

 

저 대나무숲 우듬지에

스윽

배를 찔리며 가는 반달

 

인월에 와서 살려면 누구나 다 반쪽 인생을 살다 갈 작정을 해야 한다

 

유홍준, 「引月」, 《문학사상》, 2014년 6월호

 

 

인상적인 풍경은 여기에도 있다. 이 시인은 이미 「북천」 연작 등을 통해 지역적 풍경과 그 속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내밀한 정서를 담담하게 그려낸 바 있다. 북천이라는 곳은 시인이 살고 있는 하동의 한 지명이지만 기실 그것이 시를 읽어내는 데 필수적인 정보는 아니다.

여기 “인월”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아마도 이 곳 역시 어딘가의 지명일 것이다. 그러나 굳이 그 실재를 발견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시인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그 실재를 넘어서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인월”은 말 그대로 달을 당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의미를 시인은 “인월 사람들”이 “달에게 끌려갔다 돌아온” 이미지로 바꿔 놓는다.

인월의 사람들은 모두 달을 바라보며 창을 내고 있다. 그 창으로 달을 바라보면서 오래도록 잠을 못 이루고 있다. 그러니 달이 사람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게 하염없이 밤새 달을 바라본 사람들의 얼굴은 당연히 “반쪽”이다. 그러니 “인월에 와서 살려면 누구나 다 반쪽 인생을 살다 갈 작정을 해야 한다”라는 시인의 마지막 말에는 “반달”과 “반쪽 얼굴”의 이미지만 겹쳐지는 것이 아니다. 미망에 사로잡힌 삶 혹은 생의 절반 정도를 어쩔 수 없이 “끌리는” 어떤 아름다움에 바쳐야 할 결심 같은 것이 함께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이 시는 아주 절제되어 있지만 탐미주의에 대한 갈망으로도 읽힌다.

 

네가 나를 슬몃 바라보자

나는 떨면서 고개를 수그렸다

어린 연두 물빛이 네 마음의 가녘에서

숨을 가두며 살랑거린 지도

오래된 일

봄저녁 어두컴컴해서

주소 없는 꽃엽서들은 가버리고

벗 없이 마신 술은

눈썹에 든 애먼 꽃술에 어려

네 눈이 바라보던

내 눈의 뿌연 거울은

하냥 먼 너머로 사라졌네

눈동자의 시절

모든 죽음이 살아나는 척하던

지독한 봄날의 일

그리고 오래된 일

 

허수경, 「오래된 일」, 《문학동네》, 2014년 여름호

 

이제 허수경이 그려내고 있는 어떤 “지독한 봄날”의 풍경을 살펴보자. 나와 네가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오래된 일”이 있었다. 그 눈동자에 눈물이 어리고, 마음이 흔들렸던 이 일을 평범한 이별의 상황으로 읽지는 않았으면 한다. 이 시는 모든 오래된 것들과 작별하는, 또는 “어린 연두 물빛”과 같은 “마음의 가녘”이 끝내 숨을 거두는, 성장과 동시에 찾아오는 상실의 순간을 그려내고 있다고 보는 편이 좀 더 적절할 것이다.

그런 순간을 이 시인은 어두컴컴한 “봄저녁”으로 상정한다. 어떤 두 사람이, 혹은 어떤 두 세계가 마주보는 그 시간들은 “눈동자의 시절”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시간은 “봄날”이지만 아주 외롭고 쓸쓸한 풍경들로 둘러싸여 있다. 밤이 되자 그 봄날의 화려한 꽃들도 주소를 잃어버린 듯 보이지 않고,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나면 어김없이 눈물이 차오르는 풍경. 그때 ‘내’가 마주한 ‘너’는 나로 하여금 떨면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만드는 존재이다. 어떤 위협도 가하지 않지만 그 눈동자를 마주하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장면은 “모든 죽음이 살아나는 척하던” 풍경이다. 그래서 지독하고, 오래된 일이지만 여전히 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시인은 그것을 견디고 있다. 이처럼 잊지 않고 견딘다는 것은 비단 이 시인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곳곳에서 “잊지 않겠다”라고 선언하고, 다짐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이 힘든 시간들을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40일이든, 50일이든 견뎌 보겠다고 결심한 사람 앞에서 우리는 무슨 말들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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