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문학에 관한 소고

더 많은 증언들을 위하여

– ‘광주라는 이름의 서사

(이 글은 계간 <문학의오늘> 2014년 가을호에 실려 있습니다. 편의상 주석은 생략했습니다.)

 

1.

프랑코 모레티는 자신의 초기 저작에서 “문학 텍스트들은 수사학적 기준에 따라 조직된 역사적 산물”이라고 말하면서, 문학사가 위대한 작품이나 작가에 초점을 맞춘 “사건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문학에서 진정 사회적인 것은 형식”이라는 루카치의 말을 원용해가며 “장르”의 개념에 주목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당대성에 주목해 “심성사”(心性史·historie des mentalites)로서의 총체적 역사학을 꿈꾸는 아날학파의 논리에 있는 것이고, 모레티에게는 텍스트의 문화사적 재구에 그 핵심이 있는 것이지만 “장르”라는 개념을 문학사의 중심에 두고 그것을 더 이상 명작들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한 “배경”으로 격하시키지 않으려고 시도한다는 점이 더욱 주목할 만해 보인다.

문학 장르에 관해서라면 이데올로기와 씨름하던 러시아의 장르 논의로부터 노스롭 프라이의 담대한 기획에 이르기까지 두루 살피고 언급해야 할 터이지만 여기에서는 모레티의 입을 다시 한 번 잠시 빌리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거의 100년 동안 유럽 사회는 소설에게는 쾌적하고, 거의 무제한의 서식지였다. 코젤렉의 『비평과 위기』에 따르면 사적 삶의 영역은 규정상 모든 종류의 재현에 열려 있었다. 하지만 20세기로의 전환기에 가능성들의 지평이 좁혀졌다. 산업과 정치의 격동이 유럽 문화에 동시에 작용해, 개인적 기대들의 영역을 다시 그리고 ‘역사 감각’과 모더니티의 가치에 대한 태도를 새로 규정할 것을 강요했다. 온갖 다양한 이유에서 교양소설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최적의 상징적 형식이었다.

 

문학적 진화에 대해 논의하면서 모레티는 20세기에 들어와 교양소설이 “선택”되었고, 그 외의 장르들, 교육소설, 성장소설, 예술가소설, 알레고리소설, 서정소설, 서한체소설, 풍자소설 등은 “투쟁”에서 사라졌다고 설명한다. 장르 논의에 진화론적 관점을 도입하는 것은 이제 그다지 새로운 일은 아니며 모레티의 주장도 그 맥락을 상세히 따지지 않으면 안 되는, 다소 거친 면이 있지만, 문학이라는 종이 “자연선택”을 하는 원인이 “외부적 압력”에 있음은 여전히 곱씹을 만하다.

아주 단순하게, 그래서 별로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산문문학의 장르를 구분한다면 기록(사실)문학과 허구(상상)문학으로 나눌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증언문학’이라는 이름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완벽하게 세계와 분리된 허구의 픽션이나 한 치의 주관적 개입이 없는 르포 같은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모든 소설의 형식이 일종의 증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언급하는 증언문학이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집중적으로 검토하면서 그 원인과 극복을 모색하는 일련의 작품들”을 지칭하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이 증언문학은 지금 2014년의 한국에서 “선택”되고 있다. 그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외부적 압력은 당연하게도 한국의 정치사회적 현실이고, 개인을 무력하게 만드는 공고한 세계의 시스템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럴 때 증언이라는 형식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2.

증언은 기록이라기보다 기억에 가까운, 구술성을 띤 형식이다. 어떤 한 개인이 가진 기억들, 알고 있던 사람들, 목격했거나 참여했던 사건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방식이며 고백의 형식과는 또 다르다. 고백이 철저하게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것이라면 증언은 자신을 둘러싼 것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백과 증언 모두 그 형식 자체, 그러니까 진실을 담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야기 방식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지만 증언은 고백에 비해 보다 윤리적인 목적을 가진 방식이며 사적(史的)인 성격이 강하다. 증언은 그것이 다성적일수록, 다층적일수록 그 의의가 커진다. 사적(私的) 방식인 고백은 그러므로 다층적일 수 없으며, 이 경우 이미 고백이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증언은 비록 그것이 엇갈리는 복수성을 띤다고 하더라도 진실에 훨씬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고백과는 속성이 다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고백은 증언의 한 형태로 유효할 수 있다. 자신의 과오를 가감 없이 밝히는 반성과 회한의 방식이 아니라 자신을 역사에 기입하는 가정과 상상의 방식으로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미 경험한 사건에 대한 거짓 없는 진술이 아니라 ‘나’를 제외한 모든 상황을 ‘증언’한 뒤, ‘나’를 사후적으로 사유하는 방식으로서의 고백이 그것이다.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는, 역사적 위기 상황에서 인간을 레지스탕이나 학살자로 변신하게 하는 인과관계들의 작용을 깊이 연구한 저자들에 의해 종종 다뤄지곤 했다. 하지만 그런 성찰은 언제나 일반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질 뿐, 저자들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지 자문해보는 일은 없다.

 

흥미롭고 도발적인 문학적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프랑스 학자 피에르 바야르는 최근 자신의 저작에서 이미 경험한 사건이 아닌, 자신이 경험 ‘했을지도’ 모르는 역사에 자신을 데려다 놓는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의 삶에 자기를 대입하고, 여러 텍스트들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역사의 격랑에서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지 자문”한다. 이를 통해 그는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레지스탕”이 되었을 것인지, “학살자”가 되었을 것인지를 가늠해본다. 단순한 상상이지만 그리 간단히 해결될 문제는 아니어서, 바야르는 부모의 행적을 낱낱이 공개하지만 끝내 ‘나’를 고백하지는 못한다. 저런 종류의 질문에 확신을 갖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란, 아마 없을 것이다. 따라서 고백은 실패한다. 그러나 그 실패는 역설적으로 증언의 성공을 가져온다. 판단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동원된 ‘사실’들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주체의 선택을 기다리는 소설 텍스트의 속성과 잘 들어맞는다.

 

3.

하지만 이럴 때 증언문학은 역사소설 혹은 이른바 팩션들과 구분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시 경험으로서의 증언이라는 개념으로 돌아가야만 할까. 그러지 않기 위해, 우리가 장르로서의 증언문학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만 하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서술의 주체가 “목격자”의 위치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프리모 레비가 아우슈비츠의 경험에 대해 말하면서 “나는 심판관보다는 증언자의 역할이 좋다”라고 말한 것은 가치 판단이나 단죄 혹은 용서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그는 일체의 허구를 등장시키지 않고, 사후적으로 접한 수용소의 실상들에 대해서 일절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증언의 신화를 이룩하고자 했다.

 

나는 이성과 토론이 진보를 위한 최선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의를 증오 앞에 놓는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책을 쓸 때 의도적으로, 희생자의 한탄 섞인 어조나 복수심을 품은 사람의 날 선 언어가 아닌, 침착하고 절제된 증언의 언어들을 사용하고자 했다. 나는 내 언어가 객관적일수록, 지나치게 흥분하지 않을수록 신뢰를 주고 유용하게 쓰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할 때에만 정당한 증언이 제 기능을 할 것이며 바로 그때 심판의 장이 마련될 것이다. 심판관은 바로 여러분이다.

 

하지만 프리모 레비가 생각했던 “객관적” 언어는 당연하게도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날 선 언어”가 아닌 “증언의 언어들”을 사용하고자 ‘노력’했지만 그것이 곧 “심판의 장”을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전해 듣고자 하는 증언은 법정에서의 발언도 아니고 통계적 수치 같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다시 돌아온다. 증언문학은 고백을 동반해야 하는 것이다. 프리모 레비의 증언이 ‘문학’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수용소에서도 절망과 슬픔, 그리고 분노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어쩌면 아찔한 고백 때문이다. 따라서 증언은 “날 선 언어”로도, “절제된 언어”로도 이루어져야 한다. 증언이 기록이나 사실과 구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말이란 결코 객관적일 수 없고, 그래서 도리어 힘을 가진다. 증언은 다성적 고백이어야 한다.

 

4.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증언을 요구하는 시간적 사건들은 무수하다. 20세기의 사람들이 견뎌온 한국의 근현대사는 거의 모든 국면에서 증언이 필요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문학 쪽에서 보자면 해방 이후 일제 강점기에 대한, 보통은 자기반성식의 증언이 있었지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한국전쟁의 수준을 따라오지는 못한다. 1950년 이후 한국전쟁은 독재와 항거, 민주화와 세계화라는 사적 흐름 속에서도 꾸준히 증언의 대상이 되어 왔다. ‘전후문학’이라는 이름의 텍스트로부터 현재의 ‘분단문학’에 이르기까지 그 범주는 정말로 무수하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80년대가 증언의 영역으로 포섭되기 시작하는데, 신경숙의 『외딴방』(문학동네, 1995)으로 대표되는 산업화의 갈래가 하나 있다면, 임철우의 『봄날』(문학과지성사, 1998)이 잘 보여주듯 ‘광주’로 표상되는 민주화의 갈래가 또 하나 있다고 생각된다. 이 두 갈래는 2000년대를 지나면서 문화와 감성의 영역에서 긍정되기도 했고, 다양한 형태의 복수극으로 탄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 한국문학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해경의 『사슴 사냥꾼의 당겨지지 않은 방아쇠』(문학동네, 2013)와 성석제의 『투명인간』(창비, 2014), 이기호의 『차남들의 세계사』(민음사, 2014)와 같은 작품들은 1980년을 전후한 한국사회의 모습을 잘 짜여진 서사로 보여주는 수작이다. 이 작품들은 단순히 시대를 회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들로 우리가 통과해온 시간들을 증언한다.

하지만 더 주목해야 할 흐름은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의 일을 그려내는 일군의 작품들이다. 권여선의 『레가토』(창비, 2012)와 공선옥의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창비, 2013)는 공히 광주에 ‘휘말려버린’ 사람들을 다룬다. 이들이 역사의 격랑에 몸을 싣게 된 것은 ‘우연적’이라는 사실이 강조되고, 그 사태가 어떤 식으로든 끝내 해결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김경욱의 『야구란 무엇인가』(문학동네, 2013)는 광주라는 사건에 집중하기보다 복수라는 행위에 초점을 둔다. 삼십여 년 전 자신의 동생을 죽인 군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품속에 칼과 주사위, 그리고 청산가리를 넣어 다니는 그의 복수가 결코 실현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그에게 복수란 늘 상징적인 행위였고, 따라서 그것이 실제로 가능해진다면 이미 복수가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김경욱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군인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지내게 만들어 복수의 (불)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죽임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지켜보는 것”으로 귀결되는 복수의 행위는, 결국 “제대로 성공한 복수야말로 용서”라는 차원에서, 혹은 복수란 특정한 방식의 단죄가 아니라 마치 홈플레이트에서 시작해 다시 홈플레이트로 돌아오는 ‘야구’처럼, 득점하기 위한 과정 자체로 충분하다. 그러니까 그가 칼을 품은 그 순간부터 이미 복수는 성공한 것이다. 다만 그는 다시 ‘홈’으로 되돌아왔을 뿐이다.

광주를 다룬 가장 최근의 작품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창비, 2014)이다. 이 소설은 광주를 다룬 작품 가운데서 가장 유려한 ‘증언’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강이라면, 적어도 문장에 관해서는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작가이고 그래서 한강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나는 지금 유려하다든가, 즐겁다는 표현을 부러 쓰면서 이 작품의 무게를 줄여보려 애쓰고 있는데, 쉽지 않을 것 같다.

이 소설은 시시각각 진행되는 광주항쟁의 사건들을 일일이 증언하지 않는다. 이 작가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시체가 쌓여 있는 도청의 모습을 곧바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에서 누나들과 시체를 수습하던 중학교 3학년의 한 소년을 등장시킨다. 그 시공간으로 점차 다가가는 사람들, 5월의 광주를 통과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연달아 그려낸다. 여기까지라면, 한강이 천착해왔던 고통과 상처의 문제들이 광주를 통해 ‘재-현’되는 양상이라고 갈음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가는 에필로그를 통해 고백으로서의 증언 혹은 증언으로서의 고백이라고 할 만한 서사를 감행한다.

 

누군가에게 조그만 라디오를 선물받았다. 시간을 되돌리는 기능이 있다고 했다. 디지털 계기판에 연도와 날짜를 입력하면 된다고 했다. 그걸 받아들고 나는 ‘1980.5.18.’이라고 입력했다. 그 일을 쓰려면 거기 있어봐야 하니까. 그게 최선의 방법이니까.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인적 없는 광화문 네거리에 혼자 서 있었다. 그렇지, 시간만 이동하는 거니까. 여긴 서울이니까. 오월이면 봄이어야 하는데 거리는 십일월 어느날처럼 춥고 황량했다. 무섭도록 고요했다.

 

일련의 자기 고백이 증언의 지위를 획득하는 순간은 바로 이러한 때이다. 자신을 완전히 역사에 기입하는 이러한 장면은 자신이 열 살에 직접 경험한 서울, 1980년의 5월보다 ‘사실적’이다. 바꾸어 말하면 훨씬 ‘증언적’이다. 왜 문학에서의 증언이 경험이나 기억의 복원과 다른 의미를 갖는지, 한강은 증언하기 위해 증언을 찾아다니는 작가 자신을 다시 증언하는 고통스러운 형식으로 이를 보여주고 있다.

 

5.

김연수의 「파주로」(『사월의 미, 칠월의 솔』, 문학동네, 2013), 박솔뫼의 「그럼 무얼 부르지」(『그럼 무얼 부르지』, 자음과모음, 2014)와 같은 단편들도 ‘광주’를 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두 작품 모두 ‘광주’를 매개로 일종의 세대감을 피력한다는 데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겠는데, 이 방면에서 오히려 주목되는 작품은 김사과의 『천국에서』(창비, 2013)이다. 사실 이 작품에서는 ‘광주’는 지명과 현재의 배경으로만 등장할 뿐, 광주항쟁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다. 하지만 단 한 차례도 5월의 광주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도리어 그 역사에 대해 일종의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짙게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다. 김사과는 광주로 대표되는 486세대의 “영화 같은 삶”과 88만 원 세대의 “이미 망해버린 삶”을 대비시켜 ‘우리 세대가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던진다. 그것은 곧 ‘광주’가 여전히 이 시공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와 다름없다.

이쯤 되면 ‘광주’의 서사가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다시 프리모 레비의 말을 옮겨본다.

 

나는 이제까지 수용소에서의 모호한 삶에 관해 이야기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바닥에 짓눌린 상태로 살았지만 그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았다. 그런 까닭에, 이러한 특수한 인간 상황에 대한 기억들을 과연 간직할 필요가 있는지, 이렇게 하는 게 잘하는 일인지 자문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주 짧은 기간, 너무도 특수한 상황에 관해 자주 언급하는 것은 불필요한 게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혹은 그런 특수한 경험보다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훨씬 더 자주 마주하게 되는 여러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는 편이 더 생산적이지 않겠느냐고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프리모 레비는 이런 질문들에 대해 아우슈비츠가 일종의 거대한 “생물학적·사회학적 실험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 특수한 시공간을 통해 인간의 근본적 가치에 대해 사유할 수 있으므로, 증언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그는 대답한다.

한강은 광주를 통해 이렇게 묻는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이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인간이 인간을 짓밟고 무수한 폭력과 억압을 반복하는 경험이 이제 “보편적인” 것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항변할 수 있을까. ‘광주’가 더 이상 ‘실감’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역사의 진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광주를 상상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공포는 아닐까. 여전히 무수한 이 시대의 여러 ‘광주’에 대해 우리는 이제 ‘5월의 광주는 이제 일어나지 않아’라고 여기면서 외면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

‘광주’가 지금 이토록 서사화 되는 것은 지금의 한국사회가 폭압과 억압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것의 알레고리적 반영이라고 할 수도,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다. 학살을 지시했던 통수권자도, 시민의 가슴에 총알을 박아 넣었던 군인들도, 마지막 순간에 도청을 빠져나왔던 시민들도, 피투성이의 시민을 둘러업고 병원에 데려다준 공수부대원도, 사격 명령에 총구를 위로 들어 올렸던 군인들도, 그리고 끝내 이 모든 것을 방관했던 사람들도, 여전히 함께 숨을 쉬며 살아 있다. 아마도 그 ‘살아 있음’이 시계를 1980년 5월 18일로 되돌리지 못하도록 힘겹게 막고 있는 것이리라.

 

6.

지금 참사로 점철되고 있는 한국의 2014년은 그 어느 때보다 증언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프리모 레비가 말년에 쓴 저작의 제목이기도 한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라는 수사는 지금 한국에서 비유적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다음 사실도 관심을 기울일 만하다. 인간들을 뚜렷하게 구별 짓는 두 개의 범주가 존재한다는 것 말이다. 그것은 구조된 사람과 익사한 사람이라는 범주다. 상반되는 다른 범주들(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과 멍청한 사람, 비겁한 사람과 용기 있는 사람, 불행한 사람과 운 좋은 사람)은 그다지 눈에 띄게 구별되지 않고 선천적인 요소가 적어 보이며, 무엇보다 복잡하고 수많은 중간 단계들을 허용한다.

 

476명이 배에 탑승해 있었고, 294명이 익사했으며, 172명이 구조되었고, 아직 10명을 찾을 수 없는 상태다. 사건의 진상을 밝혀달라는 유가족들의 요구는 여전히 수용되지 않고 있다. 새삼스럽지만 우리는 누구나 그 배에 타고 있었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구조된 자”들이다. 이 범주의 사람들은 ‘증언’에 두려움을 느낀다. 정말로 증언해야 할 사람들은 이미 가라앉았고, “우리가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우리를 믿어주지 않을 거야”라는 절망에, 게다가 “고통스런 순간들은 시간이 가면서 흐릿해지고 윤곽을 잃어버리는 경향”까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증언은 구조된 자들을 다시 구조하기 위해 끊임없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감당할 사람들은 이 세계의 작가들일 것이다. 익사한 자들의 영혼을 불러내고, 인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고통의 밑바닥에서 그 순간들을 끝내 언어로 길어 올릴 ‘증언자’가 다시, 더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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