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중앙역(웅진지식하우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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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던 책이었는데, 너무 늦게 읽어버렸다.

2013년에 중앙장편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상금이 1억이라서 기대한 것은 아니고, 이 작품이 창비신인장편문학상에도 최종에 오른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한 작품이 서로 다른 문학상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군으로 동시에 선택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작품이 좋다는 소문도 이미 들었고, 다른 상도 받을 뻔(?) 했던 장면을 지켜보고 나니 기대감이 매우 높아졌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실망했다기보다 예측 가능한 정도의 수준에 가까웠다.

이 작품은 거대한 도시와, 그 도시의 “중앙역”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노숙자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최근 한국문학의 트렌드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충 어떤 서사가 전개될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황정은의 <야만적인 앨리스씨>나 최진영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김선재의 <내 이름은 술래> 등이 바로 떠오른다.

한국의 젋은 여성 작가들이 하위 주체에 관해 지독히 핍진하게 파고드는 일은 이제 새삼스럽지 않은 일인데, 아쉽게도 김혜진의 작품은 거기까지만 도달해 있다.

거기까지 도달하는 것만 해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을 나쁘게 읽지는 않는다.

하지만 절망, 절망, 절망, 절망, 끝까지 절망, 이라는 식의 서사가 아닌 다른 방식은 불가능한가.

몇몇 작가들처럼 과거를 소환해 긍정과 희망의 근거를 찾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사소하나마 어떤 불씨를 발견할 수는 없을까.

그 불씨를 사랑이라고 말해버리는 것은 너무도 쉬운 방법이어서, 주인공인 사내가 어떤 여자를 좋아하게 된 순간부터 소설의 신선함은 급격히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은 ‘사랑’이 아니라 다른 데 있었다.

(이 책의 해설을 쓴 이는 결국 사랑이 희망이라는 감동적인 서사로 이 이야기를 읽었던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다.)

 

너와 여자의 관계는 이곳에 있을 때만 유효한 거다. 팀장은 그런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곳을 벗어나는 즉시 너희 두 사람은 서로에게 쓸모없는 존재가 될 거다. 그렇게 단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곳에 속하지 않은 그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이곳에 있는 내겐 이 여자가 전부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135면)

 

나도 그렇다. 이 이야기를, 저들의 사랑이라는 관계를 결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른 노숙자들에 비해 젊고 건강해서 언제든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 사내가 불행과 불안, 알콜 중독을 달고 사는 늙은 여자에게 저토록 목을 매는 이유를, 끝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저기 저 팀장처럼, 노숙자들에게 왜 그러고 사냐고, 재활센터도 좀 가보고,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끈질기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어찌 되었든 다시 역으로 돌아오고야 마는 그들을, 애써 일한 돈으로 술이나 마시고, 텅 빈 눈으로 낮의 시간을 보내는 그들을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끝내 사내가 여자를 병원에 버리고, “모르는 사람입니다”를 반복해서 말하며 뛰쳐 나오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어이없게도 ‘안도’하게 되는 것이다.

제발 좀 더럽고 거추장스러운 건 버리라고,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편하겠다고 말하는 우리 안의 악마가 슬금슬금 고개를 내미는 것이다.

그 순간까지가 이 소설이 말하는 지점이다.

그러니 이 작품에 감동이나 아름다움의 자리는 결코 서 있을 곳이 없다.

지독하고 끔찍한 소설이다.

단점을 두 개 정도만 짚어 놓는다.

우선 중언부언이 많다.

좀 덜어냈더라면 더 좋았겠다.

소설의 플롯이 관습적이다.

노숙자의 세계, 사랑에 빠진 남녀, 선의와 악의, 순수한 아이와 더럽혀진 어른들.

신선한 부분은 더 강조하고, 뻔한 이야기들은 뺐더라면 또 좋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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