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 실천문학, 2014년 여름호

<문학과사회>는 읽을 글이 많았다.

‘취향’에 관한 흥미로운 글도 그렇고, 비평 담론에 관한 글도.

또 프레드릭 제임슨과 렘 쿨하스(생소하다)의 도시 혹은 공간론에 관한 최근의 글도 번역되어 있다.

무엇보다 광주에 관한 임철우, 최정운 선생의 대담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은 딱 한 편만 실려 있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짐작하지 못하는 바 아니나, 의아하기도 하다.

<실천문학>은 역시 누구보다 빠르게 “가만있지 않는다”라는 표제를 걸면서 검은 잡지를 펴냈다.

대부분의 계간지들이 가을호에야 비로소 일련의 사태에 관해 언급하기 시작한 것에 비하면 놀랍도록 빠른 대응이었다.

아무튼 소설은 두 편이 실려 있고, 그래서 총 세 편을 같이 읽었다.

 

 

1. 최수철, 거제, 포로들의 춤

나는 최수철이라는 작가를 사실 잘 모른다.

읽어본 소설이라는 게 몇 편 되지도 않을 뿐더러 중견도 대가도 아닌 위치에 서 있는 듯 해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어 보니 약간의 변화가, 그러니까 말년의 소설가 단계로 진입하는 게 아닌가 싶다.

1952년 거제의 포로수용소를 찍은 한 장의 사진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결국 한국 작가의 최종 심급이 분단과 통일의 문제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이 작품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자전적인 것으로 보인다.

작품 속에서 고백하는 작가의 이력은 얼핏 보기에도 최수철의 그것과 유사하다.

가족사와 관련한 부분도 여기에 포함되는데, 이를 보면 이제 이 작가가 자신을 온전하게 드러내면서 끝내 밝히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관념과 유희로 일관하는 작가들에 대한 한국 문단의 무관심과 냉대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것인데, 이 작가도 그 속에 휘말려 있었을 것이다.

작가가 그런 냉대와 무관심에 지쳐 이런 변화를 감행한다고 보고 싶지는 않다.

내가 읽은 최수철은 그런 냉대와 무관심을 그대로 다시 무관심으로 되돌려 줄 작가이기 때문이다.

다만 최수철이 한국전쟁과 이데올로기의 문제와 분단을 다루기 시작했다면 그건 중대한 작가 내면의 변화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고, 독자 입장에서라면 무수한 기대감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이 소설은 작가가 자신의 가면을 벗어버리고, 날것 그대로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땅의 현실이 4,5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을 어떤 순간 깨닫게 되는 솔직한 고백으로부터 시작해, 1952년의 거제도를 추적하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런데 그게 이전의 최수철과 달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작품 자체가 주는 힘인지 분간하기 아직 어렵다.

사실 더 의아한 것은 결국 소설의 결말이 사진에 관한 한 편의 상상된 이야기로 끝났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작가가 이미 앞서 여러 차례 언급한,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었고 그래서 그저 봉합되었다는 느낌밖에는 들지 않았다.

단편이라기엔 길고, 중편이라기엔 좀 짧은 이 소설은 그 길이만큼이나 조금 애매한데, 마침 가을호 계간지 어딘가에 ‘2’라는 같은 제목을 달고 실려 있는 것 같다.(어디서 스쳐가듯 본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찾아 읽어보면 또 어떻게 달라질지 사뭇 궁금하다.

 

 

 

2. 김하율, 무서운 사람들

작년에 같은 지면에서 등단한 작가의 소설이다.

등단작을 읽긴 읽었을 텐데, 기억은 나지 않았다.

이 작품을 읽으니 일단 소설가로서의 재능(그런 것이 있다면)은 느껴졌다.

그런데, 뭐랄까 모든 게 약간씩 부족한 느낌이었다.

우선은 제목.

나라면 <김철수와 김철수>로 지었을 것 같다.

그게 아니라도 이 흥미로운 이야기에 붙일 수 있는 제목은 무궁하다.

그런데 <무서운 사람들>이라니.

물론 소설을 읽어보면 그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를 바는 아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평범한 건 부정할 수 없다.

이 소설은 재개발 철거 예정 지역에 세들어 사는 세 명의 남녀가 집주인을 납치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보증금을 받기 위해 납치한 집주인 김철수 씨가 그 김철수 씨가 아닌 게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꼬여간다.

줄거리를 더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이제는 좀 낯익은 서사의 패턴이다.

가벼운 톤을 유지하고, 심각한 상황임에도 희극적 인물들을 배치해 주제의식과 재미를 모두 놓치지 않으려는 시도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 경우 ‘훅’이 있어야 한다.

방식 자체로만 새롭게 보이기에는 너무 많은 작품이 쌓여 있다.

결말 부분에 그 가능성이 보이긴 했지만 갑작스럽게 마무리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발견되는 ‘훅’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

냉장남, 타투남, 마트녀라는 캐릭터도, 김철수로 대변되는 성공한 삶에 관한 서술도 흥미로웠지만 새롭진 않았다.

뭐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3. 조해진, 그녀의 생을 살다

아, 딱 한 마디만 쓰고 싶다.

두 여자가 만나지 않는 소설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도 이렇게만 쓰는 건 좀 성의 없으니까 간단하게 말해보자.

언론사에서 사측을 상대로 투쟁하다가 결국 사직서를 내고만 기자 석희.(아니 그러고보니 석희라니. 다행히 여자다.)

자기 작품을 인정받지 못하는 미국 이민자 출신의 화가 제인.

이 두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제시되는 그 첫 순간에 나는 이 소설에 온 몸을 맡길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뻔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의 사려 깊은 문장에서 나오는 감응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두 여자가 서로를 전혀 모르길 바랐다.

그리고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그녀의 생을 살”기 바랐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 소설은 완벽할 거라고도 생각했다.

뭐 백 번 양보해서 이 두 여자가 오래 전 헤어진 쌍둥이라고 해도 감내하려고 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파업 장면의 사진 한 장으로 제인은 세계관이 바뀌고, 석희는 뉴욕행이라니.

결국 내가 기대한 작품이 아니어서 실망이 커진 것이지만, 거리를 유지하고 다시 바라 보아도 그다지 훌륭한 플롯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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