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에 읽은 시

어떤 자기반성의 시간

(이 글은 월간 <심상> 9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삶의 어떤 순간에 다다르면 인간에게는 반드시 회고의 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되돌아봄의 끝에는 늘 자기반성이 기다리고 있다. 주체의 최종심급이란 언제나 “나”여서 결국 모든 일이 “내 탓”이라는 판단에 이르러 우리는 괴상하게도 어떤 안도를 느낀다. 세상을 탓하고, 타인에게 화를 내며, 울분을 토하는 쪽보다야 이쪽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서는 젓갈 냄새가 난다.

이발을 하고 세면실에서 내 머리를 감겨주면서

겨드랑이를 내 얼굴에 들이민다.

정신이 아뜩해진다.

한 달 전에도 맡은 냄새인데,

나는 후회를 한다.

미용실을 바꿔야겠다.

어쩌면 그것은 나에겐 없는 냄새.

H형은 내 시에는 송곳니는 없고

둥근 어깨가 있다고 알 듯 말 듯한 말을 했지만…….

어쩌면 나의 시에는

지금보다는 많은 젓갈 냄새가 풍겨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수에 부대끼고 부대껴

썩어서도 서러운

해저(海底)의 저녁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하는지도

정말 모른다. 말없이, 말도 없이 곰삭은 노래.

거울 속에서 그녀가 내 머리를 드라이어로 말리고 있다.

그녀는 잘 안 씻는가?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닌지 모르지만,

확실히 거울 속의 나는 둥근 어깨를 꼬부리고

중학교 문예반 학생처럼 참 다소곳이도 앉아 있다

장이지, 「암내」, 《문예중앙》, 2014년 가을호

 

 

시인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시를 쓴다는 것,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관한 끊임없는 고민이 유독 이번 계절의 시편들에서 눈에 띄었다. 굳이 김수영의 사례를 가져와 자기반성이라는 것이 어떻게 시적 동력이 되는지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 시대의 시인들이 그 다양한 모습을 여기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이 시인의 고민은 자신의 시에 “젓갈 냄새”가 별로 풍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머리를 감겨주는 미용사의 암내를 맡는 이 일상의 희극적 순간 속에서 시인은 자기를 되돌아본다. 시인은 “둥근 어깨”를 가진 사람으로 스스로를 정의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시에 관해 “송곳니”가 없다고 말한 누군가의 말 때문에 그는 자신을 다소곳한 “중학교 문예반 학생”으로 치환한다. 이 시인이 “젓갈 냄새”가 많이 풍기는 시를 쓸 수 있을까. 아니 또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시를 쓰고 싶긴 한 걸까.

5연에 이르면 이 시의 핵심이 “알 듯 말 듯” 느껴진다. 시인은 어쩌면 자신이 그런 시를 써야 할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란 “조수에 부대끼고 부대껴 썩어서도 서러운 해저(海底)의 저녁 노래”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이 시인은 명민한 줄바꿈을 통해 “정말 모른다. 말없이, 말도 없이 곰삭은 노래.”라고 쓰고 있다. 그것은 곧 시인 자신이 아직 “곰삭은 노래”에 관해서는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한 자기 고백이다. 암내가 나는 미용사가 잘 씻는지의 여부가 별로 문제 되지 않는 것처럼, 젓갈 냄새 가득한 시를 쓰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 사이에는 별다른 관련성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용기, 혹은 중학교 문예반의 치기마저 긍정할 수 있는 태도 같은 것들이 중요할 것이다.

 

 

정처 없이 떠돌다가

상월면 소나무 숲

판판한 바위 위에 눕습니다

만월이 내 정수리를 비추는 시간입니다

허위에 절은 넝마는 일찍이 벗어던졌습니다

남은 거라곤 벌거벗은 몸뚱이뿐입니다

사는 동안 내 육체에 생긴 거라곤

흑갈색 임신선과 두어 달 전 좌측 난소에 생긴

삼 센티 낭종 정도가 고작입니다

그런대로 훼손되지 않은 육체입니다

남녀노소여

행여 쓸모가 있거든 장기를 적출해 내다 파시든지

나를 토막 내 보신탕처럼 끓여 몸을 보하시든지

못 먹는 감처럼 찔러나 보시든지

아니면 따서 먹든지 마음대로 하십시오

처분을 기다리는 이 시간이야말로

더없이 평온한 순간입니다

나는 만만하고

나는 호락호락하고

나는 어수룩하고

나는 밑바닥이고

나는 구더기이고

나는 다시 고름집이고

나는 다시 똥으로 그득한 가죽 부대입니다

그리하여 죄인 중의 죄인입니다

남녀노소여

마음껏 조롱하시고 멸시하십시오

내 핏물이 밴 돌멩이를 다시 주워

가차 없이 던지십시오

그러니 신이여

잘못했으니 없애주십시오

살점 한 톨 남지 않도록

피 한 방울 남지 않도록

유황과 불을 퍼부어

부디 홀연히 사라지게 해주십시오

비로소 허공만이 남은 자리입니다

오롯한

자유입니다

김선향, 「나를 버리다」, 《실천문학》, 2014년 가을호

 

 

여기 한 시인은 이제 자기를 완전히 버리고 싶어 한다. 시인은 자기 몸에 새겨진, 생의 흔적만이 얼기설기 남은 이 육체를 모조리 산화하려 한다. 자신을 “죄인”이라 칭하며, “조롱”과 “멸시”를 “가차 없이 던지”라고 그녀는 말한다. “흑갈색 임신선과 두어 달 전 좌측 난소에 생긴 삼 센티 낭종”이 새겨진 이 몸뚱이가 사라져야만 “비로소 허공만이 남”고 “오롯한 자유”가 얻어질 것이라 말한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는 걸 시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육체의 완벽한 소멸이 불가능한 것처럼, 그에 따른 오롯한 자유도 사실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시인의 이러한 행위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달빛이 내려앉은 소나무 숲의 어느 한 바위에 맨몸으로 드러누워 “처분을 기다리는 이 시간이야말로 더없이 평온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에는 자기반성을 넘어 자기혐오의 단계로 인식이 이어지더라도 ‘견딜’ 수 있다. ‘나는-’으로 반복되는 저 언술들은 역설적으로 생의 가치를 반증 혹은 방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있다는 것, 만만하고 어수룩한 밑바닥의 구더기 삶이지만 그 육체를 지닌 채 숨 쉬고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곧 삶의 이유이자 운명인 것이다. “허위에 절은 넝마”를 벗어던지고, 세상에 내 발가벗은 육체를 드러낼 수 있는 용기만으로도, 이 불가능한 상상력은 익숙하지만 여전히 독자로 하여금 쾌감을 느끼게 한다.

 

 

나에게는 끄적거린 시들이 남아 있고 그것들은 따듯하고 축축하고 별 볼일 없을 테지만 내게는 반쯤 녹아버린 주석주전자가 남아 있고 술을 담을 수는 없지만 그걸 바라보는 내 퀭한 눈이 있고 두 눈 속에는 네가 있고 청회색 담벼락에 머리를 짓이기는 붉은 페인트 붓처럼 열정으로 희끗해진 머리카락을 헝클어놓은 네가 있고 젖은 뼈들이 있고 움직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노래가 있고 아침에 면도한 얼굴로 말끔하게 서 있는 희망이 있고 오후가 되면 거뭇거뭇 올라오는 수염 같은 절망이 있고 오 또다시 아침, 부서질 마음의 선박과 원자로들이, 잘 묶인 매듭처럼 반드시 풀리는 나의 죽음이 남아 있고

진은영, 「남아 있는 것들」, 《문학과사회》, 2014년 가을호

 

 

현실에 예민하게 감응하는 이 시인의 시를 마지막으로 살펴보자. “끄적거린 시들이 남아 있”는 “나”로부터 시작해 “네”를 거쳐 “희망”과 “절망” 가운데서 “죽음”으로까지 이어지는 이 도정은 예사롭지 않다. 너와 내가 함께 있는 어느 아침의 순간 같기도 하고, 어떤 끝없는 반복 같기도 한 이 시의 시간성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고’와 ‘-만’이라는 접미사로 반복되는 이 시의 구절들이 “나의 죽음이 남아 있고”로 끝날 때, 그 여운은 더 진해진다. 그것은 죽음 이후에는 그것을 뒤집을 수 있는 어떤 것도 남지 않는다는 서늘한 인식과도 관련되어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이 “선박과 원자로”에 관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더 보태거나 빼서 말할 필요도 없이, 현재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세월호 사건과 각종 송전탑 갈등이다. 그것이 너와 나의 관계, 특히 시인에게 있어서는 시 쓰기라는 문제와 긴밀하게 이어져 있음을, “젖은 뼈들”, “움직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노래”, “부서질 마음”과 같은 구절을 통해 이 시인은 표현해내고 있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얼마나 “잘 묶인 매듭”인가. 이 견고한 시스템 속에 갇혀 있는 우리는 그 체계의 붕괴를 피할 수가 없다. 시스템을 벗어난 삶이나 죽음, 즉 웬만해서는 풀릴 수 없도록 마음대로 매듭을 묶어 이 세계를 견뎌내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끝내 남아 있는 것은 “나의 죽음”뿐일까. 그 이후를 상상하는 것, 아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다른 매듭을 묶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몫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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