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읽은 시

세밑의 허물벗기

(이 글은 월간 <심상> 12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시간적 감각을 의식하지 않고 글을 쓰기가 무척 어려운, 한 해의 마지막이다. 2014년에는 그 어느 해보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대개는 참혹하고 침울하며 답답한 것들이어서 ‘문학’의 영역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4월 16일의 사건은 우리 각자의 삶이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가기 불가능하다는 진단이 타당하다고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 모두의 머릿속에 깊숙이 각인되어버렸다. 나는 그 사건이 발생한 직후 개인적으로 한국이라는 사회의 끔찍한 집단주의를 고민한 적 있는데, 모두들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관점에서, 각각의 문제들을 발견한 듯하다. 그 문제들은 정말이지 너무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도대체 출구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이 현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몇 되지 않는데 그 중 하나가 “그래도 살아가야지”이고, 해가 바뀌는 이 시기에 적절한 다짐의 말이기도 하다. 동시에 문학의 영역에서 2014년의 일들을 수용하고자 할 때, 아직은 그러한 다짐 정도가 감당할 수 있는 폭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꿈이 현실이 되려면 상상은 얼마나 아파야 하는가.

상상이 현실이 되려면 절망은 얼마나 깊어야 하는가.

참으로 이기지 못할 것은 생활이라는 생각이다.

그럭저럭 살아지고 그럭저럭 살아가면서

우리는 도피 중이고, 유배 중이고, 망명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뭘 해야 한다면

이런 질문,

한날한시에 한 친구가 결혼을 하고

다른 친구의 혈육이 돌아갔다면,

나는 슬픔의 손을 먼저 잡고 나중

사과의 말로 축하를 전하는 입이 될 것이다.

회복실의 얇은 잠 사이로 들이치는 통증처럼

그렇게 잠깐 현실이 보이고

거기서 기도까지 가려면 또

얼마나 깊이 절망해야 하는가.

고독이 수면유도제밖에 안되는 이 삶에서

정말 필요한 건 잠이겠지만

술도 안 마셨는데 해장국이 필요한 아침처럼 다들

그래서 버스에서 전철에서 방에서 의자에서 자고 있지만

참으로 모자란 것은 생활이다.

이현승, 「기도에 대하여」, 《창작과비평》, 2014년 겨울호

이 시인의 단언처럼 “참으로 이기지 못할 것은 생활”이다. 꿈과 현실과 상상과 절망과 그리고 기도까지도 “그럭저럭” 살아가는 일에 비할 것이 못된다. 상상의 아픔이나 절망의 깊이는 기도의 조건이 된다. 인간이 기도라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겪어야 할 절망들은 깊다. 그런데 그 절망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결국 “생활”임을, 아니 그 절망조차 정말 필요한 “잠” 앞에서는 이길 수가 없는 것이라고 이 시인은 말하고 있다.

생활이라는 삶은 늘 도피, 유배, 망명이라고 또한 시인은 쓰고 있다.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늘, 생의 본질은 저 멀리에 제쳐둔 채로 눈앞의 일상을 이겨내는 일이다. 그 생활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혹은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행동이란 그저 “슬픔의 손을 먼저 잡고 나중 / 사과의 말로 축하를 전하는 입”이 되는 것이다. 이때에도 시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뭘 해야 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언제나 모자라고, 언제나 이길 수 없는 생활 앞에서 인간이 사소하게나마 ‘휴머니즘’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서로의 슬픔을 위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도’는 슬픔을 감당하는 훌륭한 행위이고, 그래서 ‘기도’는 인간적인 것이다.

불룩한 요괴와 넓적한 요괴. 가마솥 해장국집에서 해장국을 주문한다. 따로따로 해장국을 먹던 시커먼 요괴 둘이 뒤를 돌아본다. 불룩한 요괴도 못 본 척. 넓적한 요괴도 못 본 척한다. 오후 3시, 늦은 점심 식사. 해장국을 먹는다.

불룩한 요괴와 넓적한 요괴. 시커먼 요괴, 더 시커먼 요괴, 요괴들은 낡았다. 주방에 있는 조금 튼튼해 보이는 요괴와, 해장국을 나르는 아직 새것처럼 보이는 요괴도 사실은 낡았다.

서로 모른 척하려는 요괴, 그래도 마주치는 요괴, 여전히 모른 척하는 요괴, 플라스틱 폐품 같은 요괴, 엉덩이도, 얼굴도 폐품이 되어버린 요괴, 가슴에 큰 구멍이 난, 너덜너덜한 요괴. 오후 3시의 늦은 점심 식사. 해장국을 먹는다.

박상순, 「나-요괴들의 점심식사」, 《문예중앙》, 2014년 겨울호

기왕에 해장국 이야기가 나왔으니 여기 본격적으로 해장국과 관련된 시를 소개해본다. 새삼스럽지만 해장국은 참으로 독특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숙취를 해소하기 위한 음식이라고 단순하게 여겨도 그렇지만, 앞선 시에서처럼 “술도 안 마셨는데 해장국이 필요한 아침”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물며 “오후 3시의 늦은 점심 식사”로 해장국을 먹는 이들의 사연이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임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시인은 해장국집에 있는 사람들을 “요괴”로 표현한다. 이들이 왜 “불룩”하고, “넓적”하며, “시커먼”지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오후 3시의 가마솥 해장국집 풍경은 저절로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다. 해장국을 먹는 손님이나 그 해장국을 요리하고, 가져다주는 사람 모두 그저 요괴인 것이다. 어떤 요괴는 “조금 튼튼해 보이”기도 하고, “아직 새것처럼 보이는 요괴”도 있지만 그들은 모두 “폐품”처럼 “낡았다.” 요괴들은 항상 서로를 알아보고 계속 마주치지만 “못 본 척”, “모른 척”한다. 그것이 요괴들의 윤리인 것이다. 그들은 조용히 늦은 점심 식사를 해결하는 것으로 서로의 존재를 견디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나” 역시 요괴임을, 오후 3시의 해장국집 풍경을 상상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결국 요괴라는 사실을 추측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밑 또 한번 허물을 벗는다

쑥쑥 자라나는 몸통을 견디지 못하고

한 꺼풀 바싹 마른 껍질이 뜯어진다

이번 건 소화시키기가 쉽지 않았어

아등바등 눈알의 실핏줄이 터질 때까지

머릿속에 피가 고이는 줄도 모르고

바지런을 떨더라고

잠을 줄인다고 죽음을 피할 순 없지

잠과 죽음은 분자구조가 달라

꽁꽁 얼어붙은 벽지를 뜯어내느라

인부들은 오래된 가래떡처럼 딱딱해진

손가락에 입김을 불며 안간힘을 쓴다

새 껍질을 뒤집어쓰면

세상도 새로워질 거라고 인두겁을 쓰고

매번 사기를 치는 놈들 정도는 잘 알고 있지

반성은 먹히는 놈들만 하는 거니까

팔 하나 다리 한 짝을 떼어 줄 때마다

반성의 싹이 돋지 이 궁리 저 궁리가

저승 가는 지름길을 찾는 건 줄도 모르고

녹물이 녹아흐르는 드럼통 안에서

불티가 튀어오른다

속만 잘 비워두면 당장 내일이라도

스스로 돈 싸들고 들어와 드러누울

초식동물들은 넘쳐난다

인부들이 드럼통에 얹은 가마솥에

닭들을 집어던지고 있다 훈훈한

열기가 솟으며 깃털 몇 가닥 눈송이와 흩날린다

조영석, 「탈피(脫皮)」, 《문학동네》, 2014년 겨울호

흔히 연속적으로 이루어져 있는 세계를 불연속적인 것으로 표현하는 언어의 속성, 즉 분절성을 설명하면서 해가 바뀌는 것에 대한 표현들을 그 사례로 들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시간의 변화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닐 테다. 게다가 만약 우리가 세밑에 “허물을 벗는”다면?

오래된 벽지를 뜯어내는 공사장 인부들의 모습과 세밑에 새로운 껍질을 뒤집어쓰는 모습을 겹쳐놓은 시인의 솜씨가 눈에 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에 “탈피”라는 말을 붙여 “매번 사기를 치는 놈들”, “이 궁리 저 궁리” 하는 “놈들”의 행태에 대해서 언급하는 부분은 더욱 흥미롭다. 이러한 시적 표현들이 “닭”의 껍질을 벗기는 행위의 표현임을 알게 되는 것은 시의 말미에 다다라서인데, 이를 단순히 껍질이나 가죽을 벗긴다는 뜻의 “탈피”로만 보아서는 곤란할 것이다. 오히려 “일정한 상태나 처지에서 완전히 벗어남”이라는 사전적 의미에 무게를 실어 읽어야 하지 않을까. 탈피‘되는’ 존재들과 탈피‘하는’ 존재들로 둘러싸인 세계를 상정하고 이 시를 다시 읽는다면 “속만 잘 비워두면 당장 내일이라도 / 스스로 돈 싸들고 들어와 드러누울 / 초식동물들은 넘쳐난다”와 같은 구절에서 멈칫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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