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의 소설들(1)

여전히 시차를 가진 채 읽고 있다.

부지런해져야 한다.

계간지를 따라가기도 벅차 월간지는 그때그때 관심가는 작가의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챙겨보는 정도였는데, 올해부터는 월간지도 빼놓지 않을 생각이다.

 

 

<현대문학>, 2014년 9월호

 

1. 김애란, <풍경의 쓸모>

작년에 문학동네에서 장편 연재를 중단한 뒤, 아마 처음 발표하는 소설이지 않나 싶다.

슬럼프가 온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소설을 읽으니 그랬던 것 같다.

김애란 특유의 섬세함은 군데군데 보이지만 서사를 완전히 지배하던 ‘그때’의 장악력은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 어머니, ‘나’의 삶이 ‘풍경’을 중심으로 모여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것은 아마도 이들의 사연이 너무도 낯익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예전에 김애란다운 일종의 ‘비틀기’가 필요한 게 아닐까.

덧붙여, 이 작가는 “~봄”이라는 표현을 퍽 즐겨 쓰는데,

이를테면, 이 소설에서는 “좋게 말하면 직관적이고 나쁘게 봄 제멋대로인.”이라는 문장처럼.

나로서는 마주칠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유독 저 “~봄”을 많이 써서 ‘왜 그러셨냐’고 직접 물어본 적도 있는데, 그때는 화자가 어린아이라서 의도적으로 그랬다고 대답을 들었었다.

이제 보니, 습관인 것 같다.

 

2. 박형서, <권태>

박형서다운,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내용과 형식이 동시에 “권태”를 담보하고 있어 인상적.

“권태는 느리지만 뚜벅뚜벅 다가온다”는 것.

제국이 통째로 불타도, 여전히 권태는 그 자리에.

 

3. 손보미, <디어 랄프 로렌>

손보미식 이야기의 매력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국적’일 때 특히 빛난다.

‘여기’가 아닌 공간에서 펼치는 ‘여기 같은’ 이야기.

‘나’를 둘러싼 상황들과, 랄프 로렌의 이야기(실화는 아닌 것 같고, 아마도 치밀하게 만들어낸 듯한)가 묘하게 만난다.

세련된 소설이라고 말해도 좋겠다.

 

4. 최윤, <서울 퍼즐 : 잠수교의 포효하는 남자>

심드렁하게 읽어나갔는데 결국 설득당했다.

숙련된 소설가의 문장이란 이렇게 힘을 갖나 보다.

‘무인칭’이라고 불러야 할 문장들과, 상대를 단 한 명으로 상정한 2인칭의 편지가 뒤섞이면서 온 감각을 휘감는다.

드러내놓고 추천하기보다 혼자 아껴놓고 싶은 작품이다.

 

 

<현대문학>, 2014년 11월호

 

1. 김채원, <쪽배의 노래>

말년의 소설가들이 자기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은 흔하다.

그게 뻔한 회상이 되지 않으려면 여전히 서사적 감각이 예민해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다.

김채원은 단편에 특화되어 있어서 그런지, 아직 그 예민함을 잃지는 않았나 보다.

물론 ‘오빠’에 관한 이 ‘여자’의 기억 자체가 신선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래도 그것을 사계절의 “쪽배” 같은 집에 실어나를 수 있는 작가의 힘이 남아 있으니, 이야기의 결말에 다다르는 데 큰 무리는 없다.

 

2. 백민석, <나른 보이의 모험>

내가 알던 백민석이 귀환한 듯한 짜릿한 소설.

세계를 파괴하는 “딱딱한” 폭력의 향연이 얼마만인가.

좀 더 보여달라고 간절하게 외치고 싶은 심정.

그건 곧 이 소설이 딱 그만큼 부족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3. 윤고은, <불타는 작품>

전시된 작품을 무조건 소각하게 하는 독특한 미술관의 이야기.

예술 작품의 가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며 읽을 소설은 전혀 아니고, 남자의 고민을 흥미롭게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여전히 이 작가의 장점이랄까.

‘있을 법한’ 상상력이 발휘된 작품이다.

 

4. 장대규, <雪>

좀 애매한 느낌이다.

어설픈 <무진기행> 같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럭저럭 읽히는 힘을 갖고 있다.

92년생의 신인 작가가 이런 소설을 쓴다는 것도 조금 놀랍다.

약간만 더 치밀하게 썼다면,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봤다면 훨씬 좋았겠다.

제목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개미>가 어땠을까.

 

 

<실천문학>, 2014년 가을호

 

1. 김원일, <고문관 시절>

이 작가도 ‘자기’를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나 보다.

요만큼의 거리감도 없이, 마치 에세이처럼 자신의 군입대 시절을 회상한다.

엄청난 디테일들로 무장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모습은 혀를 내두르게 하지만, 딱 거기까지.

제목 그대로 자신의 ‘고문관 시절’을 서술하는 게 전부다.

단편소설로서의 완성도는 제로에 가깝지만 자서전의 한 챕터라면 더없이 훌륭할, 소설.

 

2. 이태영, <보트>

뻔한 이야기가 아닐까, 방심하고 있다가 급변하는 서사와 그 속도에 조금 놀랐다.

일본으로 밀항하기 위해 싸구려 보트를 사고, 함께 갈 사람을 모집하는 이야기인데, 상당히 독특하다.

주인공의 상황이나 여건을 억지로 ‘보트 밀항’과 연결시키지 않고, 대단한 모험인양 포장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읽으면서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데, 이 작가만의 독특한 서사 리듬이 아닌가 싶다.

신인작가의 경우 보통 단점들만 눈에 들어오는데, 이 소설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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