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의 소설들(4)

<문학과사회>, 2014년 가을호

 

1. 황정은, <웃는 남자>

잘 쓰는 작가들은, 당연한 말이겠지만 단편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황정은은 이제 자신이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명확히 알고 쓰는 것 같다.

그건 작가가 숙련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황정은이 늘 그렇듯 한 문장 한 문장 꾹꾹 눌러 쓴 느낌이지만 좀 익숙해서, 1년 전쯤 놀랍도록 주목 받았던 몇몇 작품에 비해 성취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런 대목은 몇 번이고 곱씹게 만든다.

“그는 그냥 하던 대로 했겠지. 말하자면 패턴 같은 것이겠지. 결정적일 때 한 발짝 비켜서는 인간은 그다음 순간에도 비켜서고…… 가방을 움켜쥐는 인간은 가방을 움켜쥔다. 그것 같은 게 아니었을까. 결정적으로 그,라는 인간이 되는 것. 땋던 방식대로 땋기. 늘 하던 가락대로 땋는 것. 누구에게나 자기 몫의 피륙이 있고 그것의 무늬는 대개 이런 꼴로 짜이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직조해내는 패턴의 연속, 연속, 연속.”

 

2. 이수진, <아버지 축제>

이번에 읽은 소설들은 이상하게 아버지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는 장면이 많았는데, 이 작품은 제목에서도 느껴지지만 이를 정면으로 내세우고 있다.

알 수 없는 축제에 매년 아버지가 참가하고 거기에 드디어 ‘나’를 데려가는 서사가 전부인데 많은 부분들이 비유적으로 혹은 알레고리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문장의 매력이 떨어지다보니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았고, 특별히 인상적인 부분도 별로 찾지 못했다.

 

3. 김솔, <2003년 줄리엇 세인트 표류기>

개인적으로 김솔은 좋은 작가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소설을 읽으면 갸우뚱 하게 된다.

그가 첫 소설집을 냈을 때 지지를 약간 망설이게 된 것도 바로 이 편차 때문.

<소설작법>이나 <암스테르담 가라지 세일 두번째> 같은 작품은 이견없는 준작이지만 다른 작품들은 좀 의아한 면이 있다.

이 작품이 그걸 명확하게 보여주는데, 재기발랄한 서사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정보들, 그리고 삶에 관한 작가의 전언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의욕을 줄이고 덜어내면서 어떤 부분에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창작과비평>, 2014년 가을호

 

1. 권여선, <이모>

뭔가 예전 같지 않은 권여선의 작품.

단편에서만큼은 권여선을 따라갈 사람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평이한 느낌이었다.

물론 단숨에 읽히고, 생을 돌고 돌아 막바지에 다다른 인물의 사연이 권여선의 근작임을 알게 해주었지만 정돈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시점이나 거리의 문제도 그렇고, 여러 문장들이 조금 거칠다.

 

2. 윤성희, <휴가>

한결 같은 윤성희의 소설.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건 정말 축복이다.

그러니까 ‘일상성의 축복’이랄까.

그냥 오랜 친구 사이인 인물들과, 그들의 2박 3일 휴가를 착착 따라갈 뿐인데 모든 사연이 설명된다.

그들이 뭘 먹고, 뭘 입고, 어디를 가는지만 묘사해도 거기 담긴 감정의 결이 그대로 전달되는 이 느낌은 작가의 재능이라고밖에 할 수 없겠다.

아마도 이 계절의 베스트.

 

3. 정용준, <이면의 독백>

이 작가는 아무래도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는 일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위대한 용사>였나, 그때도 유령의 목소리가 들렸던 거 같은데, 이번에는 조금 더 섬뜩하다.

이 소설도 아버지에 대한 적의가 맹렬하게 드러나는데, 그 적의보다 더 강렬한 것은 주인공인 남자가 품고 있는 사연이다.

폭력이 얼마나 인간을 뒤틀리게 하는지, 늘 정용준이 보여주고자 하는 문제이지만 이 작품은 특히 그런 문제를 ‘충격적’으로 그리고 있다.

후반부로 갈수록 가파르고,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4. 정영수, <레바논의 밤>

신인상을 받은 작품.

요즘 작가들에게 ‘장’이라는 이름의 캐릭터가 자주 보이는 게 흥미롭다.

무엇보다도 서두에 등장하는 레바논의 현자 이야기가 인상적이고, ‘나-연희-장’의 관계도 매력적이다.

그런데 그 두 개의 이야기가 ‘레바논’과 과연 얼마나 연결되는지는 의문이다.

이 이야기를 마치 레바논 사태의 알레고리로 읽어내는 것은 좀 지나친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기대감을 갖고 이 작가를 지켜보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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