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읽은 시

결국 언어를 부리는 일

(이 글은 월간 <심상> 4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좋은 시가 된다는 것은 때때로 여러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에는 언어의 조탁과 연결된다. 언어를 깊이, 오래 들여다보고 이를 다듬어 새롭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시가 보여줄 수 있는 힘일 것이다. 동시에 시의 어려움도 여기에서 생겨난다. 누구나 언어를 사용하고 제각기 자신의 언어를 새롭게 만드는 일에 우리는 기꺼이 뛰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이 하는 일은 그 자체로 치열한 경쟁이자 싸움이다. 그들은 일상의 언어와 시의 언어 사이에서 서성거리면서 어떤 ‘말들’을 발견하려고 애쓰는 애처로운 존재들이다. 언어는 발명할 수 없고, 그러니 새롭다는 것도 사실은 불가능하다. 어떤 시인의 말처럼 결국 언어를 부리는 일이 시인이 할 수 있는 전부라고 할 때 곤경에 처한 시인들이 어떻게 이를 헤쳐 나가는지 지켜보는 것은 독자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큰 즐거움이다.

 

 

글쎄

라고 말하는 일은 채소를 닮았다

도마 위에 채소를 눕히고

작은 조각으로 썰며 나는

사랑을 느낀다

글쎄

라고 말하며 달걀이 된다

문고리를 만들며 꿈꾸기 좋은 곳

끈적임은 고전적이고

새로워 아무도 요청하지 않았는데

꿈과 파괴 사이에서 반쯤 빚어진 형상으로

글쎄

라고 말하면

물컵에 잠긴다

불규칙한 계단을 쌓는 싹들

좀 쉬었다 갈게

오래 생각하면 되돌아올 수 없으니

글쎄라고 말했다

여기야, 부서지는 곳

심지아, 「부엌의 부흥」, 《세계의문학》, 2015년 봄호

 

이 시인은 “글쎄”라고 말하는 일에 주목한다. ‘글쎄’라고 몇 번만 발음해보면 새삼 이 말이 얼마나 독특하고,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알 수 있다. 어떤 것에 확신을 갖지 못한 채 망설이는 모습이 이 단어에 들어 있는데, 시인은 그것을 ‘부엌’의 일과 관련시킨다. ‘글쎄’라고 말할 때의 유예감을 시인은 조리의 과정에서 찾는다. 처음에 시인은 “글쎄/ 라고 말하는 일은 채소를 닮았다”고 쓰고 있다. 다시 시인은 “글쎄/ 라고 말하며 달갈이 된다”라고 썼고, “글쎄/ 라고 말하면/ 물컵에 잠긴다”고 썼다. 채소를 다듬고, 달걀을 풀고, 물컵에 담는 과정을 묘사하면서 ‘말하는 일’, ‘말하며’, ‘말하면’ 등으로 시어를 활용해 “글쎄”라는 말이 주는 미묘한 어감을 표현해내고 있다. 이는 재료들이 부서져야 ‘부흥’할 수 있는 곳, 즉 부엌이라는 공간과 맞물려 독특한 의미를 형성한다.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은 이 시의 4연인데, 충분한 효과를 내고 있지 못해서 자못 아쉽다. 일순간 평범하고 추상적인 언어들이 등장해 그 전에 보여주었던 시적 새로움을 상쇄시키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오늘씨를 부르면 나요, 하며 나타나는 어제씨의 손

어제씨와 오늘씨는 시제가 바뀐 장소였네

눈길에 미끄러지고 추억에 쫓기는 거리

탈출에는 모험과 액션이 길이겠지만

길고양이는 이 건물 옥상 빨랫줄에서 부적처럼 다정히 말라가는 세 마리 물고기를 꿈꾸겠지

 

바람은 어디서 바람과 만나 기다리는 바람을 낳나

슬쩍 열어 보이는 바람 포켓은 겉씨식물과 속씨식물의 숲

번식과 복제에 흉허물이 없다 외치네

숲의 입구에서 죽은 봄이 남은 꽃을 들고 계절을 흥정한다

 

다른 장소에서 들려오는 폭발음

꿈이군 꿈이야, 추억의 잔해가 들것에 실려 나간 공터는 쓸 만한 망명지라지

저이는 짝짝이 신발 신은 마네킹의 손을 잡고

게임의 끝까지 달려간다

또 다른 오늘씨는 막, 커피 잔은 빠져 죽기엔 너무 작다*는 문장에서

빠져나오는 중

 

* 볼프강 보르헤르트,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커피 맛」 중

류인서, 「정객」, 《21세기문학》, 2015년 봄호

 

“오늘씨를 부르면 나요, 하며 나타나는 어제씨의 손”이라는 도입부가 우선 눈을 사로잡지만, 이 시인의 언어 감각은 곳곳에서 빛난다. 「정객」이라는 제목은 시간,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묘사하는 이 시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주조하는 데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고, 시어의 긴장감도 살아있다. 이를테면 이 시의 첫 번째 연에 쓰인 “탈출에는 모험과 액션이 길”이라는 어구는 독특하지만 시의 정서와 조금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주는데, 다시 두 번째 연에서 “번식과 복제”, 세 번째 연에서 “게임의 끝까지 달려간다” 등의 표현이 반복됨으로써 균형을 찾는다. 특히 총 3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가 제각기 다른 표현들로 각 연의 완결성을 보여주고 있음은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시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책임지는 부분을 시의 마지막 부분, 즉 “또 다른 오늘씨는 막, 커피 잔은 빠져 죽기엔 너무 작다는 문장에서/ 빠져나오는 중”이라고 했을 때 무언가 부족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시인은 다시 “오늘씨”라는 시적 주체로 돌아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바람은 어디서 바람과 만나 기다리는 바람을 낳나”와 같은 표현을 구사할 수 있는 시인이 선택한 마무리라기에는 다소 아쉽다.

 

 

빈 밭에 무처럼 박힌 소주병 꽁무니에

시시껄렁한 눈발 몇이 오락가락

바라바라 진저리치며 달려가는 오토바이

 

언 손과 때 낀 손톱과 말을 대신하는 손짓과

깨진 병은 눕혀도 세워도 모서리다

찢어진 비닐하우스는 덜덜대는 아래턱이다

 

고만 고만 하우스에 주저앉으려다 말고

비벼 끄고 달려가는 어스름 첫눈이래야

바짝 세운 개꼬리에 달라붙은 몇 송이가 전부

 

뒷산으로 달려가는 저녁 해가 바라바 한 댓 발

송년도 망년도 화이트 크리스마스도 아직

오늘의 날씨도 운세도 펑펑 내리기엔 이미

단추와 주머니와 징과 지퍼는 많을수록 빛나지

접혀진 집과 젖혀진 의자는 꼭 찾게 될 거야

 

적실락 말락 쌓일락 말락

바라바라 바라바 빈 밭을 오락가락했던

무밭의 무면허 바큇자국들

 

정끝별, 「첫 키스」, 《문학동네》, 2015년 봄호

 

그야말로 언어를 부리는 솜씨를 보여주고 있는 시라고 생각된다. 시적 긴장감을 유지하는 기법, 적절한 시어들로 시적인 순간을 포착하고 있는 솜씨에서 원숙함이랄까, 일종의 노련함이 느껴진다. 시에서 그려지고 있는 “첫 눈”의 장면은 별 볼 일 없는 풍경과 특별할 것 없는 기억들과 맞물려 “첫 키스”의 감각을 형성하고 있다. 그 감각은 시가 보여주는 있는 리듬에도 빚지고 있다. 마치 시조의 그것처럼, 일치와 변형이 적절하게 계속되면서 시어들의 반복과 합을 맞추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어떤 시어도 허투루 쓰이지 않았음이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증명되어서, 앞의 두 시들과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좋은 시인은 자신이 부린 언어를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1 Response

  1. 김연덕

    안녕하세요 평론가님 김연덕이에요-
    쓰려고 막 책상에 앉았는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문득 기웃거릴 만한 곳이 떠올라 놀러왔어요
    다시금 마음을 잡게 됩니다
    따뜻한 오월 따뜻한 날들 보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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