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의 소설들(1)

여전한 게으름으로 업로드가 늦고, 이런 시기에 창비와 문동을 읽는다는 게 떨떠름하지만, 그냥 할일을 한다는 심정으로, 짧게.

 

<문학동네>, 2014년 겨울호

 

1. 김훈, 영자

어쩐지 김훈답지 않은 소설이다.

역사와 자연이 섞여 인물을 뒤흔드는 최근의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노량진’의 디테일이 역시나 아쉽다.

취재와 조사로는 얻을 수 없는, 어떤 실감을 작가는 놓치고 있다.

 

2. 김연수,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김연수다운, 김연수의 4월을 기억하는 방식.

삶의 어떤 순간에, 어떤 ‘예술적’ 경험이 인간을 얼마나 바꿔 놓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골몰하는 이 작가에게 설득되지 않기란 어려울 것 같다.

뱃머리에서 바라본 끝없는 어둠과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

 

3. 은희경, 불연속선

이야기를 쌓아나가는 프로의 손길.

뻔한 사건도 작가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

공항 수화물 수취소에서 서로의 가방을 바꿔 들고 간 남녀의 이야기다.

작가의 말처럼 이것은 “하늘에서 가방이 떨어져내린 이야기”이지만 그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 그리고 사진에 관한 이야기 등이 섞여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된다.

‘불연속선’이라는 제목은 차가운 공기와 더운 공기가 만나 지표면에 생겨나는 경계를 표시하는, 일기예보에서 자주 보이는 기호인데, 비유적으로나 제목으로나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4. 성석제, 블랙박스

소위 약빨고 쓴 소설.

소설가라는 ‘인간’을 이해해볼 마음이 있다면 좋은 참고가 되겠다.

숨이 찰 정도로 몰아가는 솜씨는 역시 탁월하지만, 결말이 예상대로 흘러가는 듯 하면서도 모호하다.

결국 소설가와 인물의 관계가 문제인데, 그 관계가 추잡하고 복잡할수록 소설이 재미있어지니 작가란 미쳐갈 수밖에.

 

5. 김영하, 아이를 찾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단연 이 작품이 최고였다.

유괴당한 아이를 찾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며 매달렸는데, 그래서 모든 것이 무너진 상태인데, 십일 년만에 아이를 찾게 된다면?

김영하는 아이 잃은 서사가 아니라 아이 찾은 서사 혹은 아이를 찾은 후의 서사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 부모의 존재, 유괴와 납치는 돌봄이나 입양과 어떻게 다른가.

유괴당했던 아이가 어딘가에서 자신의 아이를 낳아 부모에게 버리는 마지막 장면은 상당히 강렬하다.

 

6. 박현욱, 어딘가에 섬이 있다

필력을 가진 작가가 가볍게 써낸 재미 있는 에세이 느낌이랄까.

안타깝게도 여기 실려 있는 작품들 중 제일 성의가 없다.

 

7. 김언수, 항구의 문법

여러모로 앞선 박현욱의 작품과 비교된다.

기이한 인물의 한 사례로 박현욱은 ‘형’을, 김언수는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런데 결국 박현욱은 흥미로운 에피소드 정도로 읽히고, 김언수의 것은 삶의 한 단면을 진하게 엿본 느낌이다.

그 차이는 정말로 ‘근본적’인 것이다.

망나니로 살다가 이제는 필리핀에 정착한 형의 이야기와, 항구에서 늘 바다로 떠돌다 간암 말기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여전히 망나니인 이야기 중 무엇이 흥미로운가.

소설의 구조와 인물과 디테일과 사건 등을 말하기 전에 늘, ‘어떤 이야기’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8. 천명관, 퇴근

천명관이 약간의 상상력만 발휘해도 이 정도는 뽑는구나, 하는 생각.

폐허가 된 자본주의의 극단을 상상하면서도 끝내 잃지 않는 이 작가의 기지는 감탄스럽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반전의 맛이랄까, 결말의 짜릿함이랄까.

책장을 덮은 뒤, 바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한참을 있었다.

 

9. 박민규, 대면(對面)

한번 읽어서 될 작품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인간으로 상정하고, 그 위에서 고용되거나 해고되는 존재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신과 인간을 ‘자본’의 세계로 그냥 던져버린다.

‘대면’이라는 제목부터가 그렇지만 다양한 비유와 비의가 있어서 간단히 얘기하기는 어렵고, 이 과잉에 관해서는 좀 더 살필 필요가 있어 보인다.

 

10. 김유진, 믿을 수 없는 얼굴

상당히 예민한 감각을 지닌 소설이다.

네 사람의 이야기를 교차해가면서, 단단하면서도 날카로운 이 문장들을 써내려갔을 작가를 생각하면 주위가 서늘해지는 느낌이다.

최근에 퀴어 서사라는 이름으로, 혹은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여러 소설들이 호출되는 것 같은데, 이 작품은 그 명명의 선두에 마땅히 서야 하지 않나 싶다.

 

11. 손보미, 임시교사

손보미에 대한 약간의 불신을 거둔다.

이 작품을 읽고서야 비로소, 아 뭔가 있구나, 우연이 아니었구나, 느꼈다.

이런 촉수를 가진 작가라는 걸, 또 그 촉수가 ‘무국적’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오히려 첫 번째 소설집을 발간한 이후 발표되는 소설들이 더 훌륭한 것 같다.

조급하지 않게, 그러나 꾸준히 써 주었으면.

 

 

<창작과비평>, 2014년 겨울호

 

1. 김애란, 입동

김애란의 디테일이 이제 사십대에 가까워지는 듯하다. 같이 늙어가는 것 같다.

‘집’을 마련한다는 것, 아니 정확히 말해 ‘아이’를 잃고 ‘집’을 얻는다는 것.

52개월 만에 죽은 아이와, 그 죽음의 대가로 받은 보상금의 문제가 폐부를 찌른다.

아이의 보험금이 들어온 통장을 손도 대지 못하던 부부, 그리고 끝내 그 돈으로 빚을 갚자는 말을 꺼내는 여자.

그리고 멍하니 두 사람이 내뱉는 말, “다른 사람들은 몰라.”

정말로 당신은 자식의 죽음을 돈으로 바꿀 수 있냐고, 그런 일에 지겹다는 말을 할 수 있냐고, 김애란은 자신의 방식으로 이를 묻는다.

벽지를 든 채로, 두 팔을 벌서듯 바들바들 떨면서 아이가 남긴 글자, 채 이름을 모두 쓰지 못한 그 구불구불한 무언가 위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이 오래도록 선명하다.

 

2. 윤선영, 미세스 오

소설의 도입부는 좀 뜨악했지만 밀고나가는 힘이 있다.

육아와 살림, 그리고 일을 도저히 병행할 수 없던 여자가 결국 가사도우미를 부르는 것이 서사의 중심이다.

‘미세스 오’라는 가사도우미 캐릭터가 신선하기도 하고, 가사도우미 ‘주제에’ 품위를 유지하는 미세스 오에게 결국 걸레질을 시키는 장면 등이 흥미롭기는 하다.

미세스 오라는 인물을 아예 악인으로 설정하거나 어떤 특별한 사건을 통해 주인공이 모종의 결심을 하게 되지 않는 것도 뻔함을 피해보려 하는, 나쁘지 않은 설정 같다.

그런데 그렇게 해버리니까 서사가 애매해지는 것도 사실인데, 이를 결말에서 해결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가사도우미를 바꿔달라는 전화를 하는 장면에서 끝내도 좋겠고, 더 덧붙이려면 충분히 새로운 어떤 장면이 있었으면 한다.

 

3. 정세랑, 효진

이런 이야기를 만나면 즐겁다.

그냥 이야기에 몸을 맡겨버리면 아무 거리낌없이 소설이 진행되는데, 그게 디테일의 힘인지, 서사적 전략의 힘인지 잘 모르겠다.

소설가인 친구에게 자기 넋두리를 늘어놓는 인물의 이야기가 뭐 별게 있겠나 싶어도 차곡차곡 쌓이는 사건들이 물결이 되어 흘러간다.

그래도 결국 이 작가의 힘은 디테일이지 않을까 싶은데, 가령 이런 문단이다.

그런데 그즈음 분위기가 별로 안 좋아졌달까. 가끔 불안정한 사람들이 대학원에 들어올 때가 있잖아. 전공과 상관없이 과마다 한명씩 꼭, 병원에 갔어야 했는데 대학원에 와버린 케이스. 우리 과에도 그런 사람이 들어온 거야. 약간 과하게 들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여자애였는데, 술을 자기 주량보다 많이 마시는구나 정도가 첫인상이었어. 그리고 그해가 다 가기도 전에 그 후배는 교수들 사이를, 교수와 조교들 사이를, 선후배 동기 사이를 굉장히 복잡한 선으로 이간질시켰어. 교수 임용과 장학금 수령 결과가 바뀔 정도로 어마어마한 작업이었던 모양인데 애초에 악의가 있어서 벌인 일이면 빨리 탄로가 났겠지만 그저 자기 안의 불안을 사방에 던진 꼴이어서 꼬리가 늦게 붙잡혔어. 불안정한 사람 한명이 할 수 있는 가장 파괴적인 행위였다고 할까. (p.312)

이런 단락을 자꾸 만나면 승복할 수밖에 없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