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의 소설들(3)

<문학과사회> 2014년 겨울호

 

  1. 성석제, 먼지의 시간

성석제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소설이랄까.

정확하고, 구체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

M, Q, I 등 이니셜로 인물의 이름을 처리한 것도 효과적이었다.

1박 2일 간의 소동은 단편의 분량에 적당하고, 대화들이 살아 움직인다.

사기에 가까운 M의 행동들이 급기야 신봉자였던 Q로부터도 거부당한 이후, 소설은 더욱 매력적이다.

나를 포함한 4명의 인물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프로의 작품.

 

  1. 조해진, 사물과의 작별

알츠하이머에 걸린 고모와 이를 돌보는 조카인 ‘나’, 그리고 고모의 영원한 연인이자 트라우마 ‘서 군’의 이야기.

리사 제노바의 소설이자 줄리안 무어 주연의 영화 <스틸 앨리스>와 도입부가 무척 닮아 있다.

성실하고 명망 있게 삶을 살아오던 여자가 알츠하이머를 진단받고 주변을 착착 정리하는 장면들이 말이다.

차분히 소설을 전개해가면서 이야기를 쌓아나가는 솜씨는 역시 이 작가의 특기임을 알 수 있었지만 ‘유실물 센터’라는 소재가 오히려 이야기의 집중도를 떨어뜨린 듯하다.

유실물 센터라는, 주인공의 일터이자 기억과 사물의 메타포로 기능하는 이 공간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다.

서 군과 고모의 사연도 조금은 넘친다는 느낌.

 

  1. 정소현, 기둥 뒤의 세계

지독하면서 동시에 강렬한 소설.

죽음에 이른 주인공의 독특한 상황, 그러니까 죽어서 기억을 되짚는 설정이 흥미로웠지만 더 관심을 끌었던 것은 이 여자의 삶 그 자체였다.

죽음 뒤에 삶을 더듬는 일은 자기 불안이나 공포의 근원을 알아간다는 측면에서 유용하지만, 또 동시에 그 시간들을 다시 살아내야 하는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 그래서

난 내가 누구도 아닌 나라는 인간으로 인생을 살았던 것이 형벌이었다는 것을, 죽어서도 살아서의 내 마음 상태 그대로 지나온 시간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는 것 자체가 지옥이라는 것을 알았다

는 것.

 

 

 

<문예중앙> 2014년 겨울호

 

  1. 김인숙, 넝쿨

진실이라고 믿었던 일이 완벽하게 거짓으로 뒤집힐 때, 그러나 결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때, 삶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넝쿨이 된다.

끔찍한 일을 당한 여자와, 그 여자를 지켜주지 못한 오빠. 그러니까 어떤 남매의 이야기.

기억은 어떻게 작동하고, 고통은 어떻게 익숙해지는가에 관한 아픈 소설이다.

 

  1. 박성원, 더러운 네 인생

박성원은 요즘 딱딱함을 내려놓고 가볍고 유쾌하게 소설을 쓰는 것 같다.

근작들도 대체로 그랬던 거 같고, 이 소설 역시 소설과 소설, 소설가와 소설가가 얽혀서 흥미를 자아낸다.

소위 후장사실주의자들이 이 소설을 읽는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적당히 꼬여 있는, 그래도 갈피를 잡을 수 있는, 이 정도의 소설이 나는 좋다.

 

  1. 박민정, 아내들의 학교

묘하게도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지금 읽었다.

레즈비언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유토피아”의 시대와 여전히 그 배면에 자리하고 있는 편견과 권력들에 관한 이야기.

어떤 하나의 기치 아래 감추어져 있는 수많은 문제들은, 그 하나의 목적이 달성된다고 해도 당연히 해결되지 않는다.

설혜와 선이 외따로 겪은 상처들이 여전히 그들을 괴롭게 할 때 그들은 어떻게 단단하게 자신의 삶을 붙잡고 나가는가.

이야기를 이끄는 힘이 있는 작가이지만, 약간은 산만한 느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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