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 읽은 시

집으로

(이 글은 월간 <심상> 8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집’을 생각한다. 끊임없는 방황의 끝에 결국 도달하는 곳, 부정할 수 없는 존재의 근원, 모든 것의 시작이자 마지막인 그곳 말이다. 집은 물리적 공간으로 인간을 감싸고 있기도 하지만, 의식의 차원에서 사유의 최종 심급으로 자리하기도 한다. ‘나’를 더듬어 올라갈 때, 혹은 ‘나’의 최후를 상정할 때, 우리는 어떤 공간을 만나게 된다. 그 공간이 각자에게 얼마나 다를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풍요와 사랑이 넘치는 유토피아일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억압과 폭력으로 가득찬 지옥일 것이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세계를 품에 안은 광활한 공간일 수도, 어떤 이에게는 쪼그라든 몸 하나 웅크릴 수 있을 협소한 곳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 세 명의 시인이 그리고 있는 ‘집’을 한번 찬찬히 살펴보자.

해변에 가서 모래 위에 누워 있으면
거센 바람 잔잔해지고

바다 한가운데 떠오르는
슬레이트 지붕

수평선 너머 금발 여인네를 흘깃 훔쳐보다가
그녀가 도도하게 사라질 때
나는 바닷속으로 간다
여기는 누구네 집이지,
석면지붕 아래를 들여다보면

젊은 부부가 식사를 하고 있다
비가 들이쳐서 곰팡이가 서린 문짝
천장 위를 뛰어다니는 쥐들

냄새를 맡고 온 해삼이 방충망에 붙어서
겨우 빛이 드는 이곳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살던 집

엄마 문 좀 열어주세요, 창문을 두드리면
여보 나올 것 같아,
여자가 배를 움켜쥔다

나는 방문을 열고 문지방에 서 있다가
숨이 차서 바다 위로 올라온다

해번에 가서 모래 위에 누워 있으면
차가운 바람이 불고

미지근한 바다에 떠오르는 송어 한 마리

우리 집 지붕을 매달고 강으로 간다

민구, 「슬레이트 지붕이 보이는 해변」, 《문학과사회》, 2015년 여름호

이 계절에 읽은 가장 인상적인 시라고 말할 수 있다. 시인의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뒷받침하는 유려한 전복이 시에 담겨 있다. 해변에 누워 있는 시적 주체의 눈 앞에 천천히 바다 한가운데 슬레이트 지붕이 떠오르는 모습은 그리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인다. 바닷가에 누워 수평선을 바라보노라면 여러 상념이 떠오르는 게 부자연스러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집으로 시적 주체가 들어가보는 장면부터 이 시의 진전이 시작된다. 바닷속으로 걸어가 그 집의 지붕 아래를 들여다보는 모습은 마치 시적 주체를 거인으로 느껴지게 하는데, 기실 그것은 이미 “수평선 너머 금발 여인네”가 도도하게 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집은 누추하고 축축하고 더럽다. 그리고 그곳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살던 집’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젊은 부부’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 ‘나’의 과거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 이전의 과거를 말이다. 이때 시적 주체는 “엄마 문 좀 열어주세요”하고 “창문을 두드”린다. 여기에서 순식간에 일어나는 시적 전복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시인은 다음 행에 “여보 나올 것 같아”라는 시구를 삽입함으로써 거인이었던 시적 주체를 엄마의 뱃속으로 밀어 넣어버린다. 그리고 동시에 엄마의 뱃속은 수평선을 품은 바다가 된다. 그러니 “나는 방문을 열고 문지방에 서 있다가/ 숨이 차서 바다 위로 올라온다”라는 구절은 ‘나’의 탄생이자, 그것을 차마 지켜보지 못하는 ‘나’의 지금이기도 하다. 이윽고 다시 해변에 누워 있는 시적 주체가 “송어”를 바라보는 장면은 아련하면서도 자못 장엄하다. 또다른 탄생을 위해 송어는 “강으로 간다.” 그리고 송어의 등에는 “우리 집 지붕”이 매달려 있다. 그 지붕 아래에서 또 누군가가 태어날 것이다. 그것이 동물의 운명임을 이 시인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이곳엔 아무도 없다

사람과 사람의 유일한 희망이
형벌을 나눠 가지는 일이라고 믿고 살았을 때

늦은 밤 돌아오는 이를 위해
식탁 위에 촛불을 밝혀두고
불편한 잠을 껴안았을 때
현관 여는 소리를 기다리던 이곳엔
이제 아무도 없다

당신이 나의 죄는 아니었지만
당신을 생각하며 참회하던 날들

가두어 기도를 시키면
기도보다 감금되어 있음에 안도하고
기억의 안에서 기억을 먹다가

모두 죽어버린 날들

나는 나를 길들이기 위해
심장을 낭비했고

아무도 없다
처음부터
당신은 당신이 아니고
나는 내가 아니었다

열리지 않는 죄를 설치해두고
모든 노래가 다 찬송가였다
빈집

최현우, 「Jedem das seine*」, 《문예중앙》, 2015년 여름호
*“각자의 것은 각자에게로”. 독일 부헨발트 나치 포로수용소 정문에 적혀 있다.

시의 제목을 먼저 읽지 않을 수 없다. 나치 포로수용소 정문에 적힌 “각자의 것은 각자에게로”라는 말, 아마도 유태인에게는 그들이 각자 감당해야만 하는 고통을 의미하던 말이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유일한 희망이/ 형벌을 나눠 가지는 일이라고 믿고 살았을 때”라는 구절은 고통의 분담, 상처의 공유 같은 것들이 인간만의 것이고, 그것이 사라진 곳이 곧 “빈집”임을 의미한다. 무수한 포로들이 억압과 폭력 속에 고개 숙이던 그곳은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당신이 나의 죄는 아니었지만/ 당신을 생각하며 참회하던 날들”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가슴이 깊숙이 박힌다. 죄가 아니지만 죄를 만들어야 했던, 그렇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수용소의 날들이 이 구절 속에 담겨 있다. 기억이 기억을 먹고, 내가 나를 길들이기 위해 “심장을 낭비”하던 시절은 그러므로 결국 “모두 죽어버린 날들”이다. 존재 자체가 죄인 그들에게 그곳은 그러므로 아무도 없는 빈집이다. 그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날들이었을 것이다. 고통으로 가득한 공간을 그 고통을 말하지 않고, 무(無)의 공간으로 설정함으로써 가장 고통스러운 곳으로 그려내는 시인의 시적 태도가 인상적이다.

어두운 여름이 쏟아진다 앞서가는 것이 나와 닮아서 멈춰 세우고 싶었다

밤, 그것은 깊어진다 얕은 낮과 얕은 아침은 없다 얕은 잠과 깊은 잠이 있다

나는 숲을 쓴다 숲은 흔들리는 것이어서 돈을 주고 싶었다
숲에 가본 일이 없다 나만 만질 수 있는 곳이었다

나뭇가지를 주워 나무와 나무새끼라고 쓰면 마음이 살을 뚫고 뿔처럼 자라난다
잘라서 쓰고 버리고 쓰고 버린다

물속에서 물고기가 태어나고 육지에서 고기가 태어난다
날개 달린 건 먹을 수 없어서 사다리를 치우고 둥지를 감춘다

먹던 것을 남기면 숲에서 짐승들이 내려온다 먹이가 되는 짐승이 있다

캠프로 돌아오며 거대한 캠프파이어를 기대했다

김복희, 「캠프」, 《21세기문학》, 2015년 여름호

숲에 관한 인상적인 작품이다. 시에 쓰인 여러 표현들의 긴장감이 상당하다. 하지만 여름, 밤, 숲, 나무, 짐승 등의 어휘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고, 풍경을 스케치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 단조로움과 단순함을 새롭게 읽히게 하는 힘은 “캠프”라는 설정에서 온다. 그리고 군데군데 발견되는 “쓴다”라는 표현은 이것이 결국 시인의 ‘언어 산책’임을 알게 한다. 따라서 이 때의 “캠프”란 막막하고 광활한 세계로 떠난 주체가 그 속에서 어떻게든 거점을 삼을 수밖에 없는 곳, 다시 말해 시인이 상정한 언어의 집결지일 것이다. 따라서 시인이 기대하는 “거대한 캠프파이어”는 곧 시의 새로움이자, 시적 완성도이다. 그렇게 보면 앞선 시구들은 시적 새로움을 시인 나름대로 가늠해보는 여러 시도로 읽힐 수 있다. 다양한 가능성을 시험해보는 시적 태도를 이해한다면 이 시의 스케치가 단순한 숲의 묘사로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잘라서 쓰고 버리고 쓰고 버린다”와 같은 구절에서 우리는 이 시인이 시를 대하는 태도가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끊임없이 벼리고 벼려서, 또 끝없이 시도하고 실패하는 가운데 “캠프파이어”가 일어날 것이라는 시인의 막연하지만 간절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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