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 읽은 시

희미한 아름다움

(이 글은 월간 <심상> 11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시를 읽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독서에 비해 상당히 어려운 일에 속하는 것 같다. 단숨에 시에 몰입해 이를 읽어 내려 간다는 것은 다른 독서 경험과는 차원이 다른, 특별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하나의 시가 드러내는 이미지들의 행렬과 연속에 나름의 서사를 구축하는 것이 대체로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 때 사실은 그 이미지에 관한 서사가 우리의 감각을 형성하는 것처럼,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결국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일지 모른다. 그 이야기는 군데군데 빈틈이 있고, 때때로 명확하게 인지되지 않지만 좋은 시는 그래서 오히려 선명하게 뇌리에 남는다. 시적 서사의 매력은 흐릿함과 선명함의 그 역설적인 관계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아래의 시들을 읽으며 나는 알 수 없는 공통점을 느꼈는데, 그것을 ‘희미한 아름다움’이라고 말해 보고 싶다.

 

 

그 때 그 표정은 어디로 갔을까

 

하루에 단 한 가지 표정을 조각하는 그는

눈썹의 각도를 재고

입꼬리의 무게를 짐작하고

광대뼈의 볼륨을 더듬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조각을 깨부수고 잠이 들었다

 

숨길 수 없는 표정을

꿈에서도 찾아다녔다

하품 같은

재채기 같은

안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순간을

그의 조각들은 참고 있었다

 

조금 착한 사람들은 조금 슬픈 사람들과 조금 다정하게

빗나가고 어긋났다

 

그는 일치했던 적을 생각했다

 

박세미, 「낮잠」, 《21세기문학》, 2015년 가을호

 

 

시인이 찾는 것은 “그 때 그 표정”이다. 표정이라는 말이 우선 낯설게 다가온다. 그리고 나는 나의 표정을 “조각”하는 조각가라는 상상력이 시를 흥미롭게 만든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마주하는 많은 일들에서 표정을 기억하는 순간을 언제일까. 시인은 우리가 살면서 짓는 무수한 표정 중 “단 한 가지 표정”을 “조각”한다고 했을 때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를 묻고 있는 척 하면서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이 어떤 표정을 선택하는 일임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 선택은 마치 조각을 하듯, 대체로 인위적이며 “빗나가고 어긋”난다고 말한다. 그래서 “숨길 수 없는 표정”을 찾는 것이야말로 ‘그’에게 중요한 일인데, 그것은 “잠”이 들어서야 가능해진다. 잠의 순간은 “조각을 깨부수고” 진입하는 표정의 무장 해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하품”이나 “재채기”처럼 “안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런 “일치”가 발생했던 순간들 중 그가 찾는 표정이 있다. 그건 어떤 표정이었을까.

 

 

모두 소년을 보았다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울음이 터지기 직전의 얼굴들이었다

 

기둥 뒤에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소년이 있었다

 

나란히 서서 나란히 지는 꽃들이 있었다

 

항아리에 가만가만 꽃잎이 내려앉던 환한 날들 있었다

 

달빛에 첨벙첨벙 맨발을 담그고 건너온 같은 밤들 있었다

 

기둥 뒤에서 소년이 지워지고 있었다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빠져나간 후였다

 

나무들은 대부분 한 색만 고집했다

 

테이블에는 흰 케이크

 

불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

 

말이 땅을 찍어내며 목숨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원, 「기둥 뒤에 소년이 서 있었다」, 《문학과사회》, 2015년 가을호

 

 

한 소년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년의 사연은 짐작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희미하다. 그저 이 시인이 말하는 바, “기둥 뒤에 소년이 서 있었”고, 이윽고 “지워지고 있었다.” “입을 꼭 다물고 있”는, “울음이 터지기 직전의 얼굴”을 가진 그 소년은 “주황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것은 “대부분 한 색만 고집”하는 “나무들”과 곧바로 대비된다. 그 두 구절 사이에 있는 간극이 깊다.

아마도 소년은 환하고 아름다운 날들을 보냈을 것이다. 소년과 “나란히 서서 나란히 지는 꽃들이 있었”고, “달빛에 첨벙첨벙 맨발을 담그고 건너온 같은 밤들”이 있었다. 그러나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빠져나간 후”, “불이 오길 기다리”는 “흰 케이크”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지금은 허전하고 쓸쓸하다. “말이 땅을 찍어내며 목숨 밖으로 뛰쳐나갔다”는 마지막 구절은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는 소년의 모습과 겹쳐지는데, 절제되었던 시적 정조가 폭발하면서 소년의 ‘없음’이 아프게 드러난다.

 

 

쫓아올 것이 없는데 우리는 미리 피신한다

길고 긴 밤 속으로

빛이 들지 않는 음악 속으로

 

우리는 더 깊은 실내를 만들고

더 깊이 잠을 청하고

 

깨어날수록 부풀어지는 꿈을 기원한다

적이 없는데 미리 상대를 정하며

용서가 없는데 두려움을 채운다

 

계단을 세워 제단을 덧대서

죽음과 죽음 이후의 기분을 꺼내고

가장 먼 곳에 차려질 식탁을 준비한다

 

이름을 부르는 쪽에

이름을 저무는 쪽에

 

문장을 새긴 채 대답을 비워 둔다

벗어나기 위해 발견한 입구와

굳어지기 싫어하는 발목과

 

여기는 거기가 아니라는 소리로

계속 찾아오는 망각에게 인사하면서

받을 것이 없는데 사라진 메아리를 기다린다

 

정영효, 「도달할 미래」, 《세계의문학》, 2015년 가을호

 

 

우리는 무엇을 피해 도망가는가.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시인은 이런 질문들에 대해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더 “깊은 실내를 만들고”, “더 깊이 잠을 청”하며, “깨어날수록 부풀어지는 꿈을 기원한다”고 쓰고 있다. 주체의 행위의 근거, 혹은 대상이 무엇인지는 독자에게 맡겨둔 채 시인은 “도달할 미래”를 준비한다. 명확하게 포착되지 않는 어떤 징후에 관해 시인은 “미리” 준비한다. 도달하지 않은 미래가 우리의 현재를 지배하는 역설을, 시인은 다양한 표현들로 증명한다. “적이 없는데 미리 상대를 정하며 / 용서가 없는데 두려움을 채운다”, “벗어나기 위해 발견한 입구와 / 굳어지기 싫어하는 발목”, “받을 것이 없는데 사라진 메아리를 기다린다” 등의 구절이 그렇다. 도달할 미래에 대해 부정도 긍정도 아닌, 어떤 알 수 없는 막연함만을 보여주는 시인의 균형감이 특히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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