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해질 무렵』, 문학동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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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신작이라길래, 그런데 또 의외로 조용하길래 열 일 제치고 읽어 봤다.

기대도 실망도 없이, 딱 황석영의 작품 그만큼이다.

<강남몽>과 <낯익은 세상>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르고, 어쩌면 이 작품까지 해서 한국현대사 삼부작 같은 이름을 붙일 수도 있겠다.

늘 등장하는 인물이 이름만 바꿔서 나온 듯 하고, 일어나는 사건도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분명히, 황석영이 지금 애쓰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그는 모른다.

모른다고 솔직히 쓰면서, 우리 잘못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당신들이 그렇게 힘든지, 이게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몰랐다고 얘기하면서 일종의 ‘화해’를 도모한다.

어떨 때는 그게 더 꼰대스럽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지만, 현란한 디테일과 꼼꼼한 서사 앞에서 대체로 마음을 열게 된다.

부모 세대와 청년 세대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면서 그 둘을 잇는 솜씨가 탁월하다.

확고한 경험주의자의 불편함, 군데군데 드러나는 올드함과 기시감만 잘 견디면 꽉 찬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이야기.

아마도 나에게만 인상적이었을 장면 하나를 인용해 둔다.

 

그런데 재명이 형 앞에만 새하얀 쌀밥 한 그릇이 놓였다. 어머니도 묘순이도 째깐이까지도 모두 수제비였는데 재명이 형에게만 쌀밥을 주었다. 반찬은 제대로 숨도 죽지 않은 푸른 배춧잎사귀에 고춧가루를 대충 뿌린 짜디짠 겉절이가 전부였다. 재명이 형이 숟가락을 들고 망설이다가 내게로 내밀며 말했다.

오늘은 니가 손님인께 바꿔 먹으까?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나는 그야말로 머리끝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아니, 전 수제비 좋아해요.

내가 말하자 재명이 형이 밥을 한 숟가락 퍼먹었고 그제야 모두의 시선이 제 몫의 수제비 그릇으로 되돌아갔다. 쌀밥은 오직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에게만 그 엄숙한 권리가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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