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2015년 겨울호

1. 김경욱, 수학과 불

올해 이상문학상을 받은 김경욱의 작품.

웬만한 문학상은 이제 한 번씩 받지 않았나 싶은데, 여전하고 꾸준하다.

다양하게 쓰면서 질적으로 어느 수준을 보장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텐데 김경욱에게는 쉬워 보인다.

물론 그래서 ‘열광’할 일은 드물다.

이 소설은 소설, 소설가에 대한 흥미로운 설정을 보여준다.

흔한 메타소설의 느낌은 아니다.

작가나 소설 같은 개념이 거의 사라진 어떤 시대에 스토리텔링만 남아 ‘기계’가 맞춤형 소설을 제작해준다는 얘기다.

‘에이, 고작 그런 얘기라니’라는 생각은 다행히 들지 않았다.

“소설기계”라는 김경욱에 대한 수식어, 작가라는 ‘인종’에 대한 보고서, 작가를 ‘고를 수’ 있는 독자와 독자를 고를 수 없는 작가의 운명 등, 곱씹을 거리가 많았다.

더 심각하게 썼거나, 훨씬 유쾌하게 썼더라면 어땠을까.

만듦새는 매끈한데, ‘훅’이 없는, 김경욱스러운 소설이다.

 

2. 손홍규, 환멸

<그 남자의 가출>은 정말 좋은 소설집인데,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손홍규는 그야말로 황석영의 후예고, 2016년의 몇 없는 리얼리스트다.

이 소설은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어떤 남자에 관한 얘기다.

소설가인 동생의 시선으로 그려낸 형의 삶은 공사판을 전전하는 밑바닥이지만, 당연히 그런 삶에도 빛나는 순간은 있다는 걸 보여준다.

비참과 절망 속에, 악다구니와 혐오 속에서만 생기는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의 다른 이름은 ‘환멸’이기도 하다.

 

3. 배명훈, 나를 서술한 스파이

배명훈식 로맨스는 이렇게 계속된다.

이 작가가 늘 말하는 게 있는데, 그게 인물과의 사랑이다.

“은경”과 사랑에 빠지던 작가의 모습이 선하다.

‘서술’이라는 행위가 사랑의 전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그래서 스파이 따위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도입부가 무척 좋았다.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여러 부분들은 좀 아쉬웠다.

 

4. 백영옥, 걸리버 여행기

오랜만에 작품을 보는 듯 하다.

<애인의 애인에게>라는 소설을 냈는데, 일전에 괜찮게 읽은 기억이 있다.

백영옥은 역시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는데, 이제는 아무도 쓰지 않아서 오히려 신선한 ‘칙릿’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도 있겠다.

자본의 세계를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으면서 그 속에 얼마나 많은 디테일이 있는지 여실히 증명해내는 이 작가는,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좀 실패한 것 같다.

서술자가 1인칭의 ‘나’인 것부터, 소설에 ‘깊이’를 더하려고 작가가 투영된 부분이 너무 많다.

그러다 보니 디테일마저 작위적인 느낌이 든다.

모델의 세계와 관한 ‘소재’는 매우 치밀하나 장면들은 의외로 엉성하다.

 

5. 전아리, 겨울 나들이

치매에 걸린 것이 ‘엄마’가 아니라 ‘나’라는 반전도 이 뻔한 서사를 살려내지 못했다.

도입부부터 ‘장소’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는 너무도 예측 가능해서 긴장감이 거의 없다.

장소마다 이어지는 에피소드도 별로 인상적이지 않다.

준비해둔 반전이 무색해질 정도로 심드렁했으니, 아깝다고밖에.

 

6. 정지돈, 우리들

어쩌다 보니 두 번 읽게 되었는데, 처음 읽을 때보다 꽤 재미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후장사실주의자들, 그러니까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우리들”끼리 이런 소설을 돌려 본다면 얼마나 낄낄거릴지 알게 되었달까.

다 똑같은 패거리로 여겼다가 꽤 다르다는 걸 알게 되는 요즘인데, 처음부터 정지돈은 확고한 길이 있어 보였다.

아주 열정적으로 단편을 발표하면서도 이상우나 오한기에 비해 첫 책은 좀 늦은 편이고, 대신 상복이 있어 보인다.

젊은작가상에 이어 문지문학상도 받았는데, 이쯤되면 먹물스러워지지 않도록 꽤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눈치보지 말고(그럴 리도 없지만) 계속 밀고 나가면 좋겠다.

소설 이야기야 해서 무엇하겠나. 그냥 읽으면 그걸로 됐다.

 

 

 

 

 

 

1 Response

  1. 프랑스서점 리브고쉬

    블로그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혹시 김근우씨의 소설 세계문학상 수상작은 읽어보셨는지.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도 엿보고 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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