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 읽은 시

연표, 달력, 역사 – 김경미의 시

(이 글을 월간 <심상> 2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시인 김경미의 작품 다섯 편을 읽었다. 한 시인이 가진 다채로운 세계를 접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그 시인이 어떤 것에 골몰하는 ‘연속’을 따라가는 것도 상당히 즐거운 일이다. 굳이 연작이라 이름 붙이지 않아도 시인의 사유와 시선이 각 시편 속에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 광경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여기에는 그 중 세 편을 소개한다.

 

 

그가 내 가슴에 복숭아를 던지던 구석기시대가 있었고

내가 그의 가슴을 찌르던 철의 시대도 있었다

 

연잎처럼 큰 편지가 소리 없이 타버리던

종이와 성냥의 시대가 있었고

 

어금니가 아픈 탈락과 취소의 시대도 있었다

긴 복도에는 늘

목례와 악수와 끄트머리 어둠과 귀신이 서 있었다

 

빙하기가 두 번인가 세 번인가 왔다 가는 사이에

나무들은 톱밥이 되거나 새가 되고

나는 추위를 잘 타는 체질이 되었지만

그래서 추위를 더 잘 피했다

 

매일 뭐든 옮겨놔야 살 것 같던

변덕의 시대도 가고 나면

꼼짝도 않는 추억들을 다 무슨 수로 막겠는가

 

잡을 수 있었던 것들도 미끄러져 나가는 시간의 시대는

언제까지나 되풀이되겠지만

 

지금은 혹은 검정 비닐의 시대

안에 든 것들을 다 허름하게 만드는

 

김경미, 「연표年表」, 《문예중앙》, 2015년 겨울호

 

 

“연표”라는 제목이 시의 전개를 짐작케 한다. 시인은 역사의 거대한 흐름, 정확히는 어떤 “시대”에 관해 언급하면서 이를 ‘나’에게 대입시킨다. 이를테면 “구석기시대”란 “그가 내 가슴에 복숭아를 던지던”, 즉 순수와 열망을 가리키는 듯하고, “철의 시대”란 “내가 그의 가슴을 찌르던”, 상처와 절망의 순간을 뜻하는 것 같다. 첫 연을 읽고 나면 이 시가 사랑에 관한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기 쉽다. 그러나 이어지는 구절들에서 우리는 이 시가 모든 지나가 버린 것에 대한 것임을, 그리고 그것은 늘 되풀이될 것임을 알게 된다. 우리는 모두 아픔과 고통과 변덕과 추억의 시간들을 통과하여 왔다. 그리하여 결국 남는 것은 지나가버렸다는 기록, 즉 “연표”밖에 없음을 시인은 말한다. “나는 추위를 잘 타는 체질이 되었지만 / 그래서 추위를 더 잘 피했다”, “지금은 혹은 검정 비닐의 시대 / 안에 든 것들을 다 허름하게 만드는” 등의 구절이 인상적이다.

 

 

수첩을 몇 년째 겹쳐 쓰다 보면

 

같은 날 나는 서울에도 있었고 강릉 바닷가에도 있었다

같은 오후 다섯시 삽십분에 흙탕물같이 노을 지는 정류장에서

그리고 프랑스식 레스토랑에서

마을버스 기다리는 행인들 틈에 서서

손에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거위간 요리를 먹었다

 

어느 날은 영화관과 기차에 동시에 있었는데

왼손은 왼쪽 남자의 손을 잡고

오른손은 오른쪽 남자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두 사람 중 한 남자는

같은 시간에 스물몇 번째 여자의 옷을 급히 벗기는 중이었다

 

닭껍질 같은 오늘의 운세는 오늘은 틀렸지만

삼 년 뒤의 오늘은 정확히 맞춰서

그날은 벌을 받았다느니 피했다느니 말이 많았다

 

어느 날은 어머니 상을 치르다 말고 모임에 나가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미친 듯이 웃고

 

몇 달 뒤엔 분명히 내가 죽었을 텐데

새 옷을 차려입고 나가서 또 새 옷을 산다

 

아무리 날마다 서른 가지 일이 겹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죽도록 피곤해도

그래도 밤과 낮은 절대 겹치지 않고

그림엽서와 눈물과 의자와 케이크가 아무리 포개져 있어도

그건 뒤죽박죽이 아니라 더 깊이 내려가 쌓인

광맥 같은 것

깊이에는 온갖 것들 없는 게 없는 것

 

김경미, 「겹치다」, 《문예중앙》, 2015년 겨울호

 

이 시 역시 시간에 관한 것이다. 시간이란 단 한 순간도 같은 적이 없지만 인간의 달력 속에서는 수십 번 ‘겹친다.’ 시인은 그것에 실감을 부여하는데 그것은 “수첩을 몇 년째 겹쳐 쓰”는 일이다. 그 속에서 온갖 시간들이 겹쳐지는데, 이는 마치 인간의 삶이 얼마나 역설적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수많은 시간들이 겹쳐도 “그래도 밤과 낮은 절대 겹치지 않고”, “그건 뒤죽박죽이 아니라 더 깊이 내려가 쌓인 / 광맥 같은 것”이라는, 그래서 그 “깊이에는 온갖 것들 없는 게 없는 것”이라는 마지막 구절은 시인의 낙관주의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인간의 삶이 수직적이라고 상상하면 그렇지 않을 이유도 없을 듯하다.

 

 

처음 방송일 시작했을 때

모이면 자꾸들 승용차와 스키장 얘기만 했다

차를 잘못 탔다고 생각했다

갈아타야지

나뭇잎과 청동기와 빗물이 유행인 새 버스정거장을 기다렸다

 

그 한참 전 여고시절에는 남학생과 몰래

경복궁 가는 게 유행이었다

나는 유행에 앞장섰지만 가을 고궁이 좋았을 뿐

검정 동복 입을 때쯤 벌써 그 남학생 이마가 싫어졌다

여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게 유행이었고 피해 다니면

모범생은 자퇴하고 검정고시로 대학 먼저 가서 기다리겠다는

이상한 복수법이 유행이었다

 

내 나이가 유행이던 때도 있었지만

내 앞에서 내 동료를

입 닳게 칭찬하는 사회도 유행이었고

별을 세는 건 유행 목록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버스정류장에 기차가 서던 유행도 사라지고

버스들은 줄무늬 티셔츠 일벌처럼 끝없이 지나쳐 가면서

목 부분이 쉽게 늘어지거나 검게 때 타고

 

유행 지난 옷을 여섯 상자나 갖다 버리느니

차라리 날 갖다 버리는 게 빠르고 유용하지 않을까

 

어느덧 승용차는 한없이 흔해지고

아직도 그때와 똑같은 일을 하는 요즘은

모이면 자꾸 요트와 건물 수입 얘기들을 한다

 

슬픔은 언제나 당도하려나

나는 유행을 잘못 탄 건지 아직도 버스정류장이다

 

김경미, 「유행의 역사」, 《문예중앙》, 2015년 겨울호

 

 

시간을 기억하는 어휘 중 “유행”만큼 생생하고, 또 동시에 쉽게 잊혀지는 것이 있을까. 유행은 곧 ‘시대의 추억’일 텐데, 그래서 ‘개인적 기억’과는 약간씩 어긋난다. 모두가 유행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자신은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고, 누구보다 앞장 서서 유행을 따라갔을 수도 있다. 시인은 그런 유행의 기억들을 더듬어 가면서 자신의 자취를 찬찬히 살펴본다. “차를 잘못 탔다고 생각”하고, “갈아타야지” 해도 시인은 늘 “버스정류장”에 서 있다. “유행 지난 옷을 여섯 상자나 갖다 버리느니 / 차라리 날 갖다 버리는 게 빠르고 유용하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시인의 태도에서 절망이나 좌절보다는 오히려 삶에 대한 단단한 자세 같은 것이 느껴진다. “슬픔”이 “당도”한다고 해도, 시인은 여전히 정류장을 서성이며 유행을 바라보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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