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미, 목련정전(문학과지성사, 2015)

최은미목련정전

 

끔찍한 아름다움

(이 글은 <자음과모음> 2016년 봄호에 실려 있습니다)

 

최은미의 이번 소설집은 첫번째 소설집이었던 『너무 아름다운 꿈』(문학동네, 2013)의 몇몇 특징들을 확대,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일견 느껴진다. 악몽 같은 현실이 아니라 현실이 악몽 그 자체라는 전제 아래 전개되던 그 서사 말이다. 최은미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가 ‘지옥’의 풍경을 다양한 서사 ‘양식’을 동원해 펼쳐내고 있는데, 김형중이 해설에서 지적했듯 이를 “마법적 세계로의 귀환”으로 명명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최은미 소설에서의 그러한 ‘세계’와는 별개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매우 흥미로운, 반드시 주인공이라고는 할 수 없을 어떤 인물들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들은 대체로 말이 없고, 현실에 순응하고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옥에서 견딜 수 있는 최소한의 윤리를 가진 단단한 사람들이다.

가령 「한밤」의 ‘이월’ 같은 인물이 그러하다. 영문도 모른 채 아이를 낳자마자 ‘미래산후조리원’으로 납치된 수십 명의 산모들 가운데, 끝까지 그 세계에 대항하는 것은 이월뿐이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세계가 부분적 이해에 의해 조금씩 익숙해지고, 의심과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응’을 택한다. 바로 그 순간이 지옥의 시작임을, 이 작가는 알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의문이 풀리는 듯 보였던 그 순간에, “답을 알면서도 가르쳐주지 않아. 어떻게 되나 보려고!”(326쪽)라고 외치는 이월의 모습은 결코 포섭되지 않을, 단독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작은」의 ‘공’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축산협동조합이라는 흥미로운 세계와 그 구성원들의 군상을 균형 있게 풀어낸 이 소설에서 공은 여러 불행과 괴로움 속에서도 끝내 자신을 지키는 인물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소와 사랑했던, “어느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에 기인한다. 유년 시절 기이한 흥분 속에 소의 직장 속으로 자신의 팔을 쑥 집어넣었던 소년에게 ‘인공수정’은 당연히 매번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 ‘마법’적 순간은 현실의 ‘비법’이 될 수 없으므로 그는 자신을 몰아붙이던 류에게 “너는, 소 생각을 소똥만큼도 안 하는 놈이야”(288쪽)라고 일갈한다.

때때로 삶의 어떤 순간은 설명하기 어렵다. 아니, 오히려 생의 변화를 가져오는 결정적 순간은 대부분 설명 불가능하다. 심지어 그 순간은 대체로 자각되지 못한 채 사후적으로 재구성된다. 그 순간을 그려내는 것이 단편소설이 가진 하나의 미학이라고 한다면 최은미의 소설들은 이를 잘 증명해주는 것 같다. 한순간에 스며들어 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다양한 양식을 동원해 직조하고, 지나온 순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어떤 역설을 포착해내는 방식이 그것이다. 나는 이러한 최은미의 기법을 ‘끔찍한 아름다움’을 그려내는 방식이라 부르고 싶다.

우선 「근린(近隣)」이 그 사례로 적절하겠다. ‘근린공원’에 소형 비행체가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나기까지 그 공원을 둘러싼 몇몇 이야기들을, 작가는 천천히 들려준다. 타인에게 거의 무방비로 노출되는 일상은 다시 말해 끊임없이 ‘관찰’당하는 것과 같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서로를 다양한 방식으로 관찰하면서 배제의 시선을 던진다. 그 관찰의 지옥 속에 떨어진 비행체가 ‘무인정찰기’라는 설정은 지독한 아이러니를 보여주며 한 여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창 너머 겨울」에서 사타구니의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결국 락스에 몸을 담그는 ‘남자’, 「백 일 동안」에서 금강송에 새파랗게 핀 곰팡이를 보고 불을 지르는 ‘강상기’ 등 결국 끔찍한 결말에 다다르는 이런 이야기들에서 기묘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 같다. 최은미의 소설은 망설이지 않고 극단으로 달려가지만 그것이 그로테스크로 수렴되지는 않는다. 차라리 미학적 파괴라고 하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다. 최은미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죽음의 장면을 보라. 동화나 신화 혹은 전설과 민담에서 수없이 자행되었던 ‘순례적 죽음’과 흡사하다. 「목련정전」이 표제작인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나 싶다. 결국 어미의 죄를 받아들이고 나무에 목을 매다는 목련의 모습은 끔찍하게 아름답다.

 

능선으로 해가 진다. 나무의 그림자가 맞은편 산을 뒤덮는다. 하루의 빛이 사라지기 직전, 모든 것들이 가장 반짝이는 순간, 목련은 드디어 괄약근이 완전히 풀어지면서 움직임이 멎는다. 포개진 꽃잎이 저녁을 준비하는 오후의 막바지. 언덕 아래로 밀잠자리가 걷히고 구름이 새털처럼 풀어지며 하늘을 채운다. 귀를 후비는 괴성만이 능선을 타고 미끄러진다.

마을 어디에서나 나무와, 나무에 매달려 죽은 목련이 보인다.(127쪽)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