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2016년 1월/2월호

<현대문학> 1월호는 신년 특대호로 두툼하게 나오는데, 이번에 왜 이렇게 ‘아재’들이 많은지.

 

1. 전상국, 어디에도 없고 어딘가에 있는

강대규라는, 호인 혹은 대인에 관한 이야기.

이런 유의 소설은 너무 낯익다.

무리없이 읽히는 소설이지만, 금방 잊혀지지 않을까 싶다.

 

2. 송영, 나는 왜 니나 그리고르브나를 찾아갔나?

그냥 소설가 아저씨의 러시아 여행기.

고생이 많으셨지만, 이 소설의 성취는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3. 현길언, 진공眞空 가족

막장 드라마의 수준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노작가의 판타지.

역시나 애쓰셨지만, 견디기 어려운 순간이 많았다.

 

4. 이순원, 시간을 걷는 소년3-나무와 걷는 소년

일전에 기회가 있어서 이 작가의 작품을 두루 살피고 작가론을 썼었는데, 그때 이 연작의 2편까지를 읽었었다.

유년기의 기억을 복원해 그 시공간을 보여준 뒤, 그때의 어떤 정서 같은 것을 감응시키려는 의도는 잘 알겠으나, 이 연작이 모여 얼마나 유의미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좀 더 지켜볼 여지는 있다.

 

5. 김인숙, 토기박물관

이른바 노년 서사인데, 역시나 좀 익숙하다.

모호하게 결론에 다다르기보다 차라리 확실한 사건 하나를 준비했다면 어땠을까.

그저 영어학원을 다니게 된 두 할머니의 이야기로 끝낼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6. 이승우, 넘어가지 않습니다

자신을 스스로 감금한 여자와 그 주변을 맴도는 어떤 남자의 이야기.

와이파이를 잡아 쓰기 위해 서성였던 외국인 노동자의 상황은 어떤 ‘선’을 결코 넘지 않으려는 상처 받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우라는 작가를 생각하면, 범작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7. 전경린, 해풍 사과 과수원을 지난 뒤

최근 읽은 전경린 소설은 뭐랄까, 좀 과잉의 느낌이다.

서사는 특별할 게 없는데 인물과 배경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듯.

좀 담백하게 써 줬으면 좋겠다.

(이 작가도, 나도 그래서였겠지만, 경상남도 내륙 출신의 인물이 곰소 부근을 지날 때 느끼는 감정은 충분히 수긍할 만 했다.)

 

8. 김숨, 선량한 어머니의 아들들은 어떻게 자라나

누가 봐도 김숨의 소설.

가족이라는 끔찍한 집단이 서로에게 일방적인 애정과 적의를 동시에 드러내면서 어딘가로 이동하는, 전형적인 김숨 스타일이다.

익숙했고, 이 작가는 이렇게밖에 쓸 수 없는 것인가, 일종의 회의가 든다.

너무 많이 써서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새로운 김숨을 좀 보고 싶다.

 

 

<현대문학> 2016년 2월호

 

1 . 김종광,  『범골사』 해설

아직도 이런 소설을 쓰는 사람이 있으니, 김종광이다.

해학과 유머로 이루어진 농촌소설에, 적절한 자기 비하와 PR을 더했다.

단숨에 읽었지만 품이 많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래서 뭔가 좀 더 얘기해 보고 싶은데,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

 

2. 이영훈, 구니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솜씨는 역시 좋은데, 또 결말이 썩.

이 작가의 단편을 종종 읽으면 늘 그게 아쉽다.

어린 날의 강렬한, 동시에 아주 희미한 기억들을 좇아가는 리듬이 좋다.

적당한 긴장감도 있고, 디테일도 역시 좋다.

그러나 그것들을 마지막 장면이 다 깎아 먹는 느낌.

아예 그 순간을 언급하지 않고 생략했다면 어땠을까.

(구니스는 영화제목일까?)

 

3. 정영수, 하나의 미래

요즘 꽤 눈이 가는 작가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쓰고 있는데, 아쉬운 것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지금 젊은 작가들 특유의 문장이나 서사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래서 사람들에게 나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해, 그러니까 나는 안정이 필요하다, 라고만 말하고 다녔다. 사실 다녔다는 말은 적당한 표현이 아닌데 나는 대체로 어디를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서 일했고 생필품을 사려고 가끔 외출하는 것 외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시간을 보냈다고밖에 할 수 없는 게 정말 그때 내가 하는 주된 일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와 같은 문장.

다들 왜 이렇게 쓸까 싶다가도 ‘바르샤바 낭독회’ 같은 이야기를 만나면 그냥 빨려 들어간다.

흥미진진하게 읽히기는 하는데, 결론에 다다르니, 그럴 거라 생각은 했지만 결국 이런 얘기였나, 싶으면서 좀 허무했다.

 

4. 정지돈, 주말

늘 그렇듯 상호텍스트가 난무하는 정지돈의 소설이다.

아, 이제 좀 지겨운 것 같다.

정지돈이 아니라 고다르가 남는 이 소설이 왜 필요할까.

삐딱하게 묻는 것이 아니라 찬찬히 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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