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문학, 2015년 겨울호

<21세기문학> 겨울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책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어찌 되었든 읽었고, 책을 잠시나마 빌려준 분께 감사를 드리며.

 

1. 구병모, 지속되는 호의

이번 호에 윤이형과 구병모는 ‘호의’ 혹은 ‘선함’에 관해 공히 쓰고 있어 흥미롭다.

특히 이 작품이 계속 보여주는 상황들, 즉 매 순간 가장 적절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그것도 너무 빠르거나 늦지 않게 지속하는 이 인물에 대한 작가의 태도가 집요했다.

우리나 흔히 겪는 어떤 순간의 ‘사고 과정’을 아주 치밀하게 그리고 있다.

날카롭고 빛나는 지점들이 꽤 있고, 역시 구병모답게 현실을 해부하면서 동시에 비현실적 영역도 남겨둔다.

아쉬운 것은 결말.

아이를 잃은 황망함에 소설이 마구 흔들리는데, 남편 쪽으로 갑자기 시선을 할애한 점이 특히 그렇다.

 

 

2. 문주미, 매니큐어

술술 읽힌다.

절친, 단짝, 베프에 관한 이야기인데, 남자친구 없는 여자는 있어도 절친 없는 여자는 나뿐이었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다만 ‘혜리’와 ‘유진’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좀 모호하달까, 비현실적이랄까.

결말은 좋았다. 가상의 친구 미영을 소리내 부르는 마지막 장면이 오래 머리에 남는다.

 

 

3. 배상민, 시지프스와 다이어트

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 싶은 제목이었는데, 예상 외의 수확이었다.

시종일관 유쾌하면서 ‘인간사’를 들여다보는 전개가 좋았다.

맛집과 몸짱을 지나 뇌섹남에 다다르는 현재 한국 사회의 유행을 재치 있게 따라가는 것도 좋았다.

군데군데 살짝 유치한 느낌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신들의 이야기가 은근히 재미있다.

특히 성서의 여러 표현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솜씨가 돋보였다.

결국 ‘무궁무진한 결핍에 관한 이야기’로 읽을 수 있겠는데, 꽤 수작이라는 생각이다.

 

 

4. 윤이형, 이웃의 선한 사람

올해 출간된 소설집 중 한 권을 추천하라면 이 작가의 <러브 레플리카>.

그렇게 보자면 윤이형의 작품 중에서 이 소설이 상위권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좋은 질문, 즉 ‘모두가 선한 사람이라면 우리는 평화로울까’를 묻고 있다.

흔히 SF적 상상력이라고들 부르는, 윤이형 특유의 작법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어떤 사람과 접촉하는 순간 그 사람의 미래를 모두 알 수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

최근 <개인적 기억>에서도 그랬지만 이 작가에게는 ‘기억’ 혹은 ‘시간’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듯 하다.

또 그에 못지 않게, 일상의 행복은 어떻게 유지되는가의 문제 역시.

그러나 결국 그런 것들이 서사적으로 잘 구현되었는지는 모르겠다.

 

 

5. 이호철, 이란 여행에서 본 것들

대한민국 노작가들에게서 종종 발견되는 황당한 소설.

에세이로 쓴다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대체 이게 왜 소설이어야 하는가.

이란 여행기까지는 그렇다고 치고, 기껏 며칠의 관광으로 그 세계를 재단하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게다가 그것조차 황당하게도 알량한 제국의 시선이라니.

‘아니, 이란이라는 곳을 가 봤더니 꼭 우리 60년대 같더라니까’라고 말하면서,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과 끊임없이 비교해 급기야 세계 정세를 내다본다.

결국 그러더니 한국의 현실 비판으로까지 오는데, 말인즉슨 지금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는 자유만 뻗어나가고, 민주는 날로 위태롭다는 것이다.

예예,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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