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녕, 피에로들의 집(2016, 문학동네)

피에로들의집

 

꽤 오랜만에 장편을 발표한 윤대녕의 <피에로들의 집>을 읽었다.

2013년에 나온 소설집 <도자기 박물관>이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다.

그때의 여러 장면들을 상기시키는 부분이 이번 소설에 꽤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나 지금이나 윤대녕이라면 역시 로맨스라는 생각이다.

문학의 좌우, 흔히 말하는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계열이 있다면 윤대녕은 어느 쪽에서도 열렬히 환영받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러나 오히려 그래서 매력적인 부분이 있다.

이 작가는 고통과 상처, 실패한 인생 같은 것들을 너무 멋있게 그려낸다.

마치 절망만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듯이.

그래서 사랑에 관한 한 윤대녕의 서사는 늘 옳다.

가끔 견뎌내기 쉽지 않은 묘사나 대화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평범한 이야기라면 굳이 쓸 필요가 없을 테니까.

그런데 이 소설은 좋은 작품일까.

그렇게 말하지는 못하겠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 하나 하나가 너무 많은 사연을 갖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누가 더 고통을 겪었는지 서로 대결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들 각각은 짊어진 무게가 너무 육중하다.

그들이 모여드는 곳은 마마를 중심으로 한 “아몬드나무 하우스”이며, 그것은 곧 작가의 말대로 “새로운 유사 가족의 형태와 그 연대의 가능성”에 기반한 것일 텐데, 이것이 효과적으로 드러나지는 못했다고 생각된다.

현실을 진단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때때로 들렸는데, 시효가 지난 느낌이었다.

지금 우리는 서로에게 곁을 내어줄 감정의 공간이 없다는 말, 일종의 “피난민”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말 등은 새로울 것이 없었고, 오히려 진부했다.

그래서 결국 이들의 가족 공동체는 실현되는 것인가.

마마가 죽고 그 집을 지켰던 사람들에게 적절한 유산이 남겨지면서?

이들 각자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그럴 리는 없을 텐데, 작가는 거기서 끝냈다.

결국 명우와 윤정의 이야기만 나에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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