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세계 / 황해문화, 2015년 겨울호

<작가세계>와 <황해문화>에는 각 2편씩의 소설이 실려 있다.

 

1. 김도언, 아만다와 레베카와 소설가

다분히 자전적이고, 온갖 감정이 출렁이는 복잡한 소설.

주인공 소설가의 비극적인 나르시시즘이 느껴진달까.

이 작가가 왜 이런 소설을, 왜 이런 방식으로 쓰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설 자체로만 놓고 보면, 남성-소설가 판타지의 재현이라고밖에.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적재적소에 자리한 어휘들이 무리한 서사에 빛이 바랜다.

 

2. 김은, 실선을 긋다

좋은 소재를 아쉽게 소비해버린 사례.

곤충도감을 그리는 여자, 그 여자는 기형의 아이를 한 달만에 떠나 보냈으며, 어느 날 뜬금없이 유전적 변형을 일으킨 곤충을 그려보자는 제의를 받는다.

이 정도만 잘 밀고 나갔어도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여자의 여러 행위가, 특히 ‘규’와의 관계에 있어서 과장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실선을 긋다’라는 제목의 의미가 도감에 그려 넣는 선이 점선이 아니라 실선이라는 결말에 다다르면 김이 샌다.

 

3. 이인휘, 폐허를 보다

노동소설가의 귀환이라는 이름으로 꽤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고, 동명의 소설집이 최근 출간되었다.

아쉬운 건 정말로 그냥 ‘귀환’만 했다는 것.

30년, 아니 90년 전쯤에 쓰인 노동자소설과 다를 바가 없다.

이 소설이 웹툰 <송곳>이나 투쟁 현장의 ‘르포’보다 나은 지점이 뭐가 있을까.

소설가라면 이제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투쟁의 현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정의롭고 올바른 사람들일까.

아니,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을까.

노동자들의 내면 풍경을 좀 더 들여다 보고 싶다.

소설이라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4. 하명희, 불편한 온도

공교롭게도 크레인 노동자의 현실과 투쟁을 다른 또 하나의 노동 소설.

나로서는 이 작가가 여러 상징들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닌가 싶다.

특히 주인공 남녀의 갑작스런 로맨스만 아니었더라면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삶은 비참하고, 투쟁은 고달프며, 연대는 감동적이지만 문학적 성취는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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