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홀(문학과지성사, 2016)

thehole

 

크게 적혀 있듯, 편혜영의 네번째 장편소설.

모든 작품을 따라 읽은, 아마 몇 되지 않는 작가 중 한 명이지 싶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늘 그냥 모두 읽게 된다는 것은 그만큼 잘쓴다는 얘기.

전작인 <선의 법칙>도 꽤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나, 언제나 드는 생각은 편혜영은 장편의 작가가 아니라는 것.

인물도, 이야기도, 문장도 모두 단단하고 탄탄해서 흠잡을 곳이 거의 없는데, 왜 다 읽고 나면 특별한 감흥이 느껴지지 않을까.

<재와 빨강>, <서쪽 숲에 갔다>도 그랬는데, 나는 솔직히 편혜영이 장편소설에 대해 ‘단편을 늘린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판단한다.

<선의 법칙>의 다단계 판매 조직의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김애란의 <서른>을 떠오르게 했었는데, 이번 작품인 <홀>은 2014년 봄에 <작가세계>에 발표했던 <식물애호>라는 단편이 그 시작이다.

나는 그때 그 단편을 읽고 이렇게 썼었다.

교통사고가 난 부부, 아내는 죽고 남편은 살아 남았다.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고 몸도 가누기 힘든 상태로.

‘오기’라는 이름의 남자는 고아였고, 아내가 죽음으로써 그의 곁에는 장모가 남았다.

한 순간의 사고로 모든 생이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남자의 내면을 차분하게 그려냈다.

그러면서도 편혜영 그 특유의 분위기, 그러니까 비밀스러운 그로테스크함(?)이 살아 있다.

<아오이 가든>의 편혜영과 최근 <몬순>의 편혜영이 만난 느낌.

이 작가는 요즘 표면적으로 드러난 서사 말고, 그 이면에 깔린 서사를 염두에 둔 채로, 다시 그걸 숨기고 감추는 식으로 소설을 구성하는데,

그게 <몬순>처럼 흥미로운 모호함이 되기도 하지만, 이번 경우는 좀 알 수 없는 의아함이 있다.

장모가 정원에 어떤 구덩이를 파는 것은 중요한 장면이면서도 그 의중은 감추어져 있다.

그러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거의 “식물”인 오기를 거기에 심으려고 한다는 느낌은 제법 확실하게 오지 않는가.

이러면 전략적으로 좀 실패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장편으로 다시 읽은 지금은 이 서사가 전략적으로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겉으로는 잉어를 기를 연못을 파겠다는 의사를 장모가 내비치므로)

그러나 그때 이상으로 다른 이야기를 덧붙이기도 어렵다.

빡빡하게 몰고 간 서사는 단편이었을 때와 별다른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장편으로 만들어진 편혜영의 서사는 어느 순간 좀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사건이 좀 내쳐 달렸으면 좋겠는데, 혹은 인물이 더 적극적이었으면 하는데, 그 순간에 단단한 문장에 이야기가 갇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여전히 내가 기다리는 것은 편혜영의 단편이지만, 편혜영이 아닌 듯한 장편이 언젠가 나타난다면 훨씬 즐거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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