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읽은 시

빛의 호위

(이 글은 월간 <심상> 2016년 5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어떤 말들은 너무 흔하게 쓰여서 특유의 말맛을 잃기도 하는데, ‘빛’이라는 단어가 그런 것 같다. 어둠이나 암흑의 반대편에서, 그러면서도 단지 긍정과 희망의 의미로만은 아니게, 시각적이면서 동시에 촉각적으로, 순간과 영원을 아우르고 광활함과 협소함을 가로지르며 ‘빛’은, 그 모든 것을 의미한다. 빛은 근본적이며 절대적이어서 그 어감을 생각하기 이전에 시인의 사전 첫 페이지에 반드시 등장할 말이다. 소설가 조해진은 「빛의 호위」에서 이렇게 썼다.

 

발자국 안에 빛이 들어 있어. 빛을 가득 실은 작은 조각배 같지 않아? 어, 그런가…… 여기에도 숨어 있었다니…… 뭐가? 셔터를 누를 때 카메라 안에서 휙 지나가는 빛이 있거든. 그런 게 있어? 어디에서 온 빛인데?

 

그리고 작가는 말한다.

 

평소에는 장롱 뒤나 책상서랍 속, 아니면 빈 병 속같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얄팍하게 접혀 있던 빛 무더기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 일제히 퍼져나와 피사체를 감싸주는 그 짧은 순간에 대해서라면, 그리고 사진을 찍을 때마다 다른 세계를 잠시 다녀오는 것 같은 그 황홀함에 대해서라면, 나는 이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인간이 눈을 뜨는 순간, 아니 눈을 감고 있는 그 순간조차도 ‘빛의 호위’를 받는 존재라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다시 곱씹으면, 얼마나 많은 ‘빛’들이 시에 들어 있는지 그제야 눈에 띌지 모른다.

 

 

낮엔 잘 보지 않았다

너무 예뻐서

그 예쁨이 칼 같아서

 

작은 불빛 아래 길게 누운 밤,

천장에 비친 잠의 그림자

 

실제보다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

 

움직이기도

표정을 짓기도 한다

 

소리를 듣기도

속삭이기도 한다

 

낮 동안 오래 참다

어둠 속에서야 입을 꼬물거리는

스스로 잘라버진 萬化의 뿌리

 

빛이 없었다면

안 보였을 것이나

어둠이 아니었다면

눈여겨보지 않았을 것

 

꽃은 웃은 척 웃지 않는다

말하는 척 입 열지 않는다

누가 꽃에서 화사함만 보는가

 

천국과 지옥 사이에서 밀봉된 입술

누가 그 참혹의 체취를 훔쳐

선의만 치장하려 하는가

 

긴 침묵의 밤이 무서워

속 깊은 울음을 그림자만 내놓으니

나비떼를 겁내는 이것은

멸종을 예감한 미래의 유골

긴 사랑의 눈빛이 아직 까맣다

 

강정, 「꽃의 그림자」, 《한국문학》, 2016년 봄호

 

 

‘빛’만큼이나 ‘꽃’도 시인의 단어다. 도저히 마음을 뺏기지 않을 도리가 없는 그 꽃의 ‘그림자’를 이 시인은 본다. 시인의 말대로 그림자는 낮에도 있다. 그러나 압도적인 ‘빛’ 때문에 그림자는 “칼 같은” “예쁨”에 가려진다. “작은 불빛 아래 길게 누운 밤”이 되어서야 그림자는 사방으로 퍼진다. 그림자는 “萬化의 뿌리”를 자르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화사함”만이 꽃의 모습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 시가 여기까지였다면, 그저 그런 시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두 연에서 시인은 빛과 꽃, 그리고 그림자에 관해 인상적인 표현들을 보여준다. 이 구절들을 읽고 있자면 그림자가 시커먼 입술을 밀봉한 채 멸종을 예감하고 속 싶은 울음을 길게 내놓는 모습이 머리를 떠다닌다. 특히 “긴 사랑의 눈빛이 아직 까맣다”는 마지막 행은 여운을 오래 남긴다.

 

 

조이와 나는 떠나기 전날 염소 가죽 주머니에 빛이 터지는 포도 알갱이를 잔뜩 싸두었다 쓰러진 호두나무 테이블 굽이치는 나뭇결 위로 배를 띄우면 남부에서 북부로, 북부에서 서부로 가는 가장 빠른 길! 팔뚝이 아프면 해를 보고 포도알을 먹었다 내가 키를 잡으면 노래를 해주는 조이 콘센트 구멍 같은 눈을 깜빡이는 예쁜 조이 바퀴벌레가 많은 여관에서는 용감해지는 주문을 외워볼래? 네가 쓰고 개어놓은 반듯한 수건을 보면 내 구겨진 속옷이 부끄러워 어젯밤에 나는 포도알에 네 얼굴을 새겨 세상에서 제일 작은 스테인드글라스 잔을 만들었지 딱딱하게 굽은 새끼손가락으로 오팔의 빛나는 약속을 하는 나의 조이 나는 새겨놓은 잔을 주머니에 숨기고 조이의 굽은 손가락을 작은 지팡이처럼 걸어 잡고 한낮이 지나도록 앉아 있었다

 

배수연, 「조이와의 여행」, 《21세기문학》, 2016년 봄호

 

‘조이’가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아서 이 시는 성공적이다. ‘조이’와의 여행은 이유도 목적도 없는, 그저 시간과 장소의 변화일 뿐이다. 그러니까 이 여행은 오로지 둘만의 것이고, 흔한 말이지만 ‘삶의 여정’이다. 또한 동시에 그들은 실제로 떠나기도 했다. 언제 어디로 떠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가죽 주머니에 빛이 터지는 포도 알갱이를 잔뜩” 챙겨 배를 타고, 여관에 머물며 함께 서로를 들여다보았다. 이 시를 관통하는 것은 “포도”인데 그것은 늘 “빛”을 내는 이미지로 등장한다. ‘나’가 포도알을 먹는 것은 “해를 보고” 있을 때였고, 포도알에 조이의 얼굴을 새겨 만든 “스테인드글라스 잔”은 당연히 빛난다. “나는 새겨놓은 잔을 주머니에 숨기고 조이의 굽은 손가락을 작은 지팡이처럼 걸어 잡고 한낮이 지나도록 앉아 있었다”는 마지막 구절은 이 시가 끝내 ‘나’와 ‘조이’를 빛의 세계에 붙잡아두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그제야 돌이켜보면 ‘조이’(joy)라는 것은 그 자체로 ‘빛’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이 시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빛의 세계에서 머물고자 하는 우리의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들인지가 아닐까.

 

 

관이 나가는 날, 할머니가 눈감을 때까지 불렀던 사위, 이모부는 돌아왔다 할머니가 사주었다던 바지, 일찍 온 저녁처럼 무릎 녘이 너덜거리는 그 바지를 입고

 

오른팔을 잃은 이모부는 밭 가장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보라빛 뭉치를 하나 따서는 우적우적 씹었지

 

거리에서 잃은 팔을 먹어치우는 것처럼 빛은 세월의 칼로 철 없이 우리의 혀를 동강내었다

 

어느 날 슬플 때 빛은 무자비했나 어느 날 욕정에 잡힐 때 빛은 아련했나 어느 날 기쁠 때 가지는 사라져서 빛은 뼈 속으로 혼곤하게 스며들었나 그뒤에 돋아나는 빛은 자지러지게 우는 갓 태어난 아이를 닮으며 사무치게 널 안았나

 

도둑질을 하듯 몰래 살았다는 느낌이 목구멍까지 꽉 차오를 때 가지로만 입속에 머물던 빛, 그 빛의 혀를 지금 내가 적는다면

 

가지라는 불투명한 평화

보랏빛이라는 폭력

어떤 삶이라도 단 한 빛으로 모둘 수 없어서 투명해진 날개

 

이모부는 빛 속에서 사라지고 그 여름, 침묵하는 빛의 혀만 나부끼는 그림 속, 가지빛은 텅 비었네 가짓빛 추억은 고아가 되었네

 

허수경, 「가짓빛 추억, 고아」, 《문학동네》, 2016년 봄호

 

 

빛은 색채라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시. 할머니의 죽음과 오른팔을 잃은 이모부가 가지를 씹어 먹는 도입부는 압도적이다. 그 강렬한 “보랏빛 뭉치”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거리에서 잃은 팔을 먹어치우는 것처럼 빛은 세월의 칼로 철 없이 우리의 혀를 동강내었다”는 표현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보랏빛 가지는 시퍼렇게 잘려나간 팔의 이미지로 치환되어 선뜩하게 다가온다. 그 보라빛 가지가 입 속에 가득 차 있는 장면 역시 강렬하게 이 시를 지배한다. 즉 그 ‘보라빛 가지’는 “무자비”와 “욕정”과 아련함, 혼곤함, 사무침의 순간에 늘 함께 있다. 시인은 그 빛을, “그 빛의 혀”를 지금 쓴다. 그 여름의 시간은 “고아”가 되어, 이제 “가짓빛 추억”으로만 남는다. 강렬하고 간결하며, 무수한 사연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런 시는 두 번 읽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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