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읽은 시

사랑, 사랑, 사랑

(이 글은 월간 <심상> 6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가장 처음 접했던 시는 ‘사랑’에 관한 것이었다. 누구나 그렇지 않았을까. 그리고 돌이켜보면 마음을 흔들고 지나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 있는 여러 시들도 역시 늘 ‘사랑’을 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시들은 끝없는 설렘과 아득한 위로, 알 수 없는 먹먹함과 깊숙이 숨어 있는 상처 같은 것들을 건드린다. 근래의 시들은 ‘나’와 ‘세계’에 관해서는 많은 말들을 쏟아내지만 의외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가장 아름다운 시는 연서(戀書)가 아니었던가.

 

 

너머로의 출발은 일생을 바치는 여정,

 

어릴 적에는 배를 타고 떠나보려 했다

하루종일 저어가도

연무에 싸인 수평선은 수평선인 채

너머가 보이지 않았다, 아득해서 궁금한

그곳을 바라 키가 자랐지만

동산에 올랐어도 너머는 여전히 너머일 뿐,

 

여행은 목적지가 분명해서 좋았다

살아선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

출발지가 목적지기도 한 여행,

그런데 네가 너머로 잠적해버렸다면?

어깨 위에 산다는 짐승의 울음소릴 혼자 들었다

 

너는 왜 아직도 믿게 하니?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니라 주장하면서

봄 들녘 초록처럼 번져오는

스산한 너머가 있는 거라고!

 

그러므로 만나지 못한다고 이별은 아니다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가

우리 모두를 바닥에 쏟아버리지만

실상은 너머로 간다는 것,

불현듯 너머가 생생해져

깬 잠이 좀처럼 다시 들지 않는다

 

약속이 아니어도 언젠가 마주치리라는

채울 길 없는 갈증으로 너는 기다리니?

광활한 우주의 이 한 자리

혼신을 다한 수평선이 내 앞에 펼쳐져 있듯이

 

김명인, 「너머」, 《문학동네》, 2016년 여름호

 

 

모든 윤리와 상식과 제도와 규범을 넘어서는 곳에 ‘사랑’이 있다. “너머로의 출발은 일생을 바치는 여정”임을 우리는 일찍부터 알고 있지만, 그 너머에 “너”가 있어야 그것을 믿을 수 있음을 시인은 말한다. 막연한 너머가 아니라 “네”가 잠적해버린 그곳, 보이지 않아도 없는 게 아닌, “약속이 아니어도 언젠가 마주치리라는” 마음을 갖게 하는 그 너머에 시인은 다가간다. 조급하지 않게, 흐르는 시간과 함께, 생생해졌다가 또 광활한 수평선처럼 아득해지는 그 너머로 결국은 “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너머는 도착하는 곳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여정”이다. 그것은 목적지가 분명하고, 살아서 제자리로 돌아오는 “여행”과는 다르다. 너를 찾아가는 일은 “봄 들녘 초록처럼 번져오는 / 스산한 너머가 있는 거라고” 믿게 만들고, “만나지 못한다고 이별이 아”닌, “채울 길 없는 갈증”이다. 그러니 사랑은 단지 한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이 아니라 “일생을 바치는 여정”이다.

 

 

 

예정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어.

 

아직 구두를 신지 않았는데

맨발인 채로 풍선에 실려 날아가기 시작했지.

 

어제는 처음으로 말하는 꿈을 꾸었고

끝없이 펼쳐진 포도농장을 달린 후에야

비로소 그 열렬한 입술에 입술을 포개었지.

 

네가 만들어준 것들은 모두 녹아내렸어.

연분홍색 솜사탕이 무너지고, 초코 아이스크림은 잔뜩 흘러내리고

마시멜로는 설탕 알갱이로 뒤엉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어.

 

낮과 밤은 모호하고 때로는

나와 마주보던 너의 시선과 입술이 녹아내렸지.

 

나는 자꾸만 진득거리는 손으로

너의 흐르는 살결을 닦아주려 하는데

달콤한 설탕 시럽과 하얀 깃털이 뒤엉켜

엉망진창인 기분인 채로 하늘을 날기 시작했어.

 

예정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어.

사월의 눈은 내리지 않았고,

유년기에 잃어버린 동생도 찾을 수 없었어.

혹시나 두고 온 것이 없을까, 한참이나 아래를 살펴보는데

 

너에게도 작고 축축한 날개가 돋아나는 거야.

그 작고 희미한 날개를 펄럭이며

풍선을 불고 있었지.

 

최예슬, 「비밀의 화원」, 《21세기문학》, 2016년 여름호

 

이 시를 ‘사랑’에 관한 것으로 읽는 것이 정확해 보이지는 않는다. ‘너’로 인해 형성된 환상의 세계, 즉 “비밀의 화원”에서 모든 것이 녹아내리던, “달콤”하면서 동시에 “엉망진창”이던 어떤 순간에 대해 이 시는 그려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예정된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던 그 순간에 “너에게도 작고 축축한 날개가 돋아나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다. 온갖 달콤한 것들, “연분홍색 솜사탕”, “초코 아이스크림”, “마시멜로”, “설탕 시럽” 등이 뒤엉키고, 진득거리고, 녹아내릴 때, 시적 주체는 “아직 구두를 신지 않았는데 / 맨발인 채로 풍선에 실려 날아가기 시작”한다. “사월의 눈은 내리지 않았고 / 유년기에 잃어버린 동생도 찾을 수 없었”던 그 한참이 지나 저 멀리에서 “그 작고 희미한 날개를 펄럭이며 / 풍선을 불고 있”는 너의 모습은 무척이나 작고 힘겨워 보이지만 또 그래서 사뭇 감동적이다. 그 미약하고 자그마한 힘으로 ‘나’를 향해 날아오르려는 애처로운 ‘너’의 모습은 사랑이 “예정된 기적”은 아니지만 그 순간 자체로 일종의 기적임을 보여준다.

 

 

작년의 너보다 좋아 보인다. 네가 음식 먹는 모습을 보니 사고 싶다. 망치. 용기 없던 날들. 널어두지 못한 빨래가 바닥에서 말라간다.

 

이 방의 모든 것들은 쉽게 부서진다. 너를 초대하려면 그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일. 손에 넘칠 정도의 무언가를 쥐고 있으면 괜찮다. 그것이 망치가 되는 일.

 

먼저 호두를 사러 나간다. 이 길 끝에서 네가 우산을 접었다 폈다 하던 일. 날씨와 상관없이.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너는 단지 울고 있던 사람.

 

작은 방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이 더 작은 것을 깨부술 때. 껍질 속 열매가 사방으로 튈 때. 다시 그것들을 모아 네 손에 쥐여줄 때. 괜찮아, 입안으로 털어놓으며 네가 말할 때. 거짓말처럼 괜찮아지는 일.

 

용기를 용서라고 잘못 생각했다

 

윤성아, 「우리가 괜찮다면」, 《문예중앙》, 2016년 여름호

 

 

아마 이런 게 사랑에 관한 전형적인 시가 아닐까. 이 시에는 꽤 익숙한 표현들이 많은데, 그 가운데 신선한 감각이 번뜩이는 구절이 몇몇 있다. “널어두지 못한 빨래가 바닥에서 말라간다”라는 표현은 이 시가 결국 말하고자 하는 정서를 곧바로 환기시켜서, 우리의 “작년”과 지금의 거리는 그만큼 멀어졌으며, “용기를 용서라고 잘못 생각했다”는 이 시의 마지막 부분까지 자연스럽게 시적 정조를 지배한다. 그 가운데 망치로 호두를 깨먹던 장면이 아련하고 애틋하게 펼쳐지는데, “손에 넘칠 정도의 무언가를 쥐고 있으면 괜찮다. 그것이 망치가 되는 일.”과 같은 구절 역시 “이 방의 모든 것들은 쉽게 부서진다”는 부분과 이어져 그들의 관계가 얼마나 미력했는지, 어떻게 부서져갔는지를 짐작케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산으로 울음을 가리던 그 사람과 “작은 방에 앉아” “더 작은 것을 깨부술 때”, 사방으로 튄 열매들을 그러모아 “네 손에 쥐어”주자 “괜찮아”라고 ‘너’가 말했고, “거짓말처럼 괜찮아”졌던 그런 순간. 이걸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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