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란 무엇인가

(이 글은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9월 26일자에 실려 있습니다.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302 )

 

 

 

마치 이제 소설 같은 건 아무도 읽지 않는 세상이 된 것 같지만, 한국에서만 매년 수십 명의 소설가가 탄생하고 매달 수십 권의 신작 소설이 출간된다는 사실 정도는 짐작하고 계시겠지요. 21세기에, 아니 정확히는 2016년에 하얀 화면을 바라보며 키보드로 검은 글자를 두들겨 넣는 소설가라는 사람들은 어떤 존재일까요. 그들은 정확하고도 아름답고 치밀한 문장을 지어내는 예술가이기도 하고, 인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현실과 맞서는 투사이기도 하며, 때때로 세계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가진 지식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언어를 가공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장인(匠人)일 것입니다. 그야말로 소설가도 하나의 ‘직업’인 셈이지요. 그런데 글쎄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14년을 기준으로 예술인의 장르별 수입 현황을 조사해 지난 3월 발표한 일이 있는데 문학 분야의 경우 연 평균 수입이 214만 원이었습니다. ‘월’이 아니라 ‘년’ 평균 수입입니다. 예술인 평균 1,225만 원에도 한참 못 미치는, 최하위 장르였습니다. 이 통계를 소설가들의 수입으로 그대로 적용시키기는 어려워도 대부분의 소설가들이 작품 활동만으로 생계를 꾸릴 수 없음은 자명하겠지요. 그래도 소설 쓰는 데는 거의 돈이 들지 않으니까 위안을 삼아야 할까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현대문학, 2016)라는 자전적 에세이에서 소설가는 스스로 ‘딱히 예술가가 아니어도 괜찮다’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훨씬 편안해진다고 말합니다. 그럴 지도 모르겠습니다. 생활에 대한 걱정은 일단 치워 두더라도,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길 때, 그냥 쓰기만 하면 된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그저’, ‘그냥’ 소설가가 될 수는 없겠지요. 소설가들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평범한 욕망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지어내고 싶다는 특별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욕망이 삶을 지배할 정도로 강렬한 사람만이 소설가를 직업으로 삼게 되겠지요.

소설가들은 다음 작품을 구상할 때, ‘자, 이제 뭘 써볼까’라고 생각하며 책상 앞에 앉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뭐든지 그냥 쓰기만 하면 됩니다. 다만 일단 쓰고 난 후, 소설가의 일은 시작됩니다. 김연수는 『소설가의 일』(문학동네, 2014)에서 “누군가 ‘소설쓰고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먼저 글을 썼고, 지금은 그 글에 대해 생각하면서 다시 쓰고 있습니다’라는 뜻이어야만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뜻이어야만 한다”고 힘주어 말한 부분을 다시 곱씹어 보아야겠습니다. 다른 모든 의미는 차치하더라도 소설을 쓴다는 것은 명백히 ‘다시’ 쓴다는 의미를 품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겠지요. 그는 소설가로 산다는 것은 “여러 번 고칠수록 문장이 좋아진다는 걸 안다는 뜻”이라고도 말합니다. 김연수는 좀 더 과격하게, 소설가는 문장만을 쓴다고, 내용 같은 건 없다고, 문장을 계속 충분하게 많이 고치는 사람이라고도 쓰고 있습니다. 끝도 없이 고칠 수 있다는 건 소설가들의 특권이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몇몇의 특별한 작가들을 제외한다면, 소설가들은 거의 돈을 벌지 못하는데요. 그만큼 또 돈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 일을 하고 있기도 하니까요. 소설가의 일은 그러니까 결국은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다른 색들』(민음사, 2016)에 실린 오르한 파묵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문에도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작가라는 직업의 비밀은, 어디서 오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영감이 아니라 끈기와 인내에 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내 인생 자체가 소설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소설을 한두 편 써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써내는 것, 소설로 먹고산다는 것, 소설가로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겠지요. 하루키는 소설가에게 필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지속력”이라고 단언하며, 비슷한 의미에서 김연수는 “매일 글을 쓴다. 그리고 한순간 작가가 된다”고 선언합니다.

소설은 오로지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만 구상되는 것입니다. 설령 여러 명의 작가가 하나의 소설을 함께 쓴다고 해도 각자의 머릿속에는 서로 다른 ‘하나’의 작품만이 있겠지요. 소설가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를 토대로, 그것을 빌려와 ‘재현’하기도 하고, 아예 ‘창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로지 언어로만 표현됩니다. 혹 소설 속에 사진이나 그림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면 이는 엄밀히 말해 소설이 아니며, 언어 이외의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설가는 무엇보다도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김연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화가가 “울트라마린”과 “인디고”의 색을 구분할 수 있듯이 소설가는 “휘청거리다”와 “지벅거리다”의 의미를 구분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오르한 파묵도 『소설과 소설가』(민음사, 2012)에서 문학과 그림을 비교하면서 “소설가는 상상했던 것을 가장 잘 표현할 단어를 찾는 데 그치지 않고,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을 상상하는 법”도 배운다고 말합니다. 결국 소설의 핵심은 묘사라는 것이고, 소설가는 무엇보다도 디테일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소설은 흔히 ‘인물’의 예술이라고 불리고, ‘사건’과 ‘플롯’, 즉 ‘이야기’야말로 소설의 핵심이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심상하게 생각했던 소설의 ‘배경’, 오르한 파묵의 표현을 따르자면 “풍경”에도 우리가 주의를 좀 더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가 수없이 반복하는 작업이 ‘이를테면’이라고 명명합니다. 어떤 문장을 써 놓고, ‘이를테면’ 하고 그 서술을 계속해서 보충해 나가는 것이지요. 그것이 곧 세부묘사, 디테일입니다. 꾸준하고 끈질기게 소설을 고쳐 나가다 보면 인물이나 사건이 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확보하게 되는 것은 그 소설 특유의 분위기와 풍경이지요. 어쩌면 그 디테일이 현대 소설의 전부일지도 모른다고 오르한 파묵은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아무리 소설가에게 ‘재능’이란 끈기와 인내라고 하지만, 소설따위 쓰려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아 소설가가 되었을 뿐이라고 얘기하지만 소설가는 특별한 직업일 겁니다. 소설가는 세상만사를 비틀고 뒤집어서 보는 사람이고, 모두가 오른쪽으로 갈 때 왼쪽으로 가는 한 사람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라고 김연수는 말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약간 농담조로, 그러나 진심을 담아 “소설가 대부분은 원만한 인격과 공정한 시야를 지녔다고 하기는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썼습니다. 오르한 파묵은 “소설가란 어떤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공동체의 원초적 본능을 공유하지 않는, 경험한 것과 다른 문화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이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즉 소설가라는 인간은 세계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삐딱한 종족이라는 얘기일 겁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양상은 다를지라도 여기 언급된 세 명의 소설가들은 그 삐딱함이 옳은 쪽으로, 따뜻하고 밝은 방향으로 기울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야기라는 시스템을 통해 우리는” “소설적으로” 이어져 있다고 했고, “모든 진정한 문학은 인간이 서로 닮았다는 순진하고 낙관적인 믿음에 근거한다”고 오르한 파묵은 말했습니다. 김연수는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거기에 가 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해하려고, 가 닿으려고 노력할 때, 그때 우리의 노력은 우리의 영혼에 새로운 문장을 쓰기 시작할 것”이라고 썼습니다. 같은 말이겠지요. 이들에게는 서로를 이해해 보려는 불가능한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 곧 소설가의 일입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나는 소설가가 될 수도 없고, 되려는 생각도 없는데 이 글이 무슨 소용인가 싶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제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소설가는 ‘독자’를 가진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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