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어비(민음사, 2016)

단호한 표정의 정직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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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러운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이 글을 시작하자.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소설가는 소설을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소설이 세계를, 또는 인간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누군가와 소설 따위는 그저 이야기의 한 방식일 뿐이라고 여기는 누군가는 얼마나 다른 것일까. 현실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소설과 사유와 몽상을 자유롭게 헤매는 소설은 또 그렇게 다른 것일까. 누구도 같은 대답을 하지 않을 이 질문들에 김혜진이라면 이렇게 답할 듯 싶다. 소설은 어떤 인물이 어떤 공간에서 어떤 사건을 겪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그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라고. 아마도 그는 소설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 앞에서 짐짓 손사래를 치겠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무기력하게 절망하지는 않겠다는 단단한 표정을 지어 보일 것이다. 김혜진이 바라보는 세계는 잔인하고 비참하며, 아픈 상처와 깊은 고통이 도처에 널려 있는 곳이지만, 매우 놀랍고도 흥미롭게도, 그는 그래도 ‘견딜 만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을 쭉 읽어나가다 보면 김혜진의 작품들이 쓸데없이 힘주지 않고, 전통적인 소설의 방식 그대로, 이상하리만치 ‘정직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소설에 대한 그 태도는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눈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섣부르게 동정하거나 연민하지 않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대단하고 거창한 무언가가 있다는 듯 위장하지 않는 이 일관된 태도가 김혜진을, 김혜진의 소설을 동시대, 동세대 작가들과 구별짓게 만드는 힘이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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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아닌가?

감독관이 묻는다.

졸업 했어요.

그가 답한다.

그럼 일을 해야지.

감독관이 꾸짖는다.

일하는데요.

그가 항변한다.

이게 무슨 일이야. 진짜 일을 해야지.

 

자신이 수집한 DVD를 노점에서 팔기로 결심한 ‘그’에게 “진짜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감독관’의 모습은 사실 우리 내면에 있는, 그러나 쉽게 말할 수는 없었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쿵푸도 있다」의 ‘나’와 ‘지수’가 나누는 대화처럼, 우리 조금 더 나아져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면서 결국 한숨을 쉬며 헤어지는 일. 이런 모습들이 김혜진이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이다. 어쩌면 김혜진은 여기까지가 소설이 감당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할 수도, 지금으로서는 여기까지밖에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그가 정직하다는 것이다. 부러 과장하거나 너무 애쓰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지점에 꼿꼿이 서 있겠다는 그 태도가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확실하게 김혜진만의 색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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