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 믜리도 괴리도 업시(문학동네, 2016)

스토리텔링 애니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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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문학이 별거예요? 그냥 노가리 까고 생각나는 걸 글로 쓰면 문학이지. 문학은 말로만 해도 되니까 과외나 비싼 레슨 받아야 하는 그림이나 음악보다 훨씬 쉽죠.”(「블랙박스」, 39쪽)

 

 

아마도 이 소설집에서 가장 인상적일, ‘박세권’의 일갈로부터 이 글을 시작해보자. 소설을 사실상 대필하고 있는 그는 소설가 ‘박세권’을 향해 구구절절 통쾌할 정도로 맞는 말을 쏟아내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날카롭고 속시원한 말들은 또 틀린 것이기도 하다. 문학은 “별거”일 때가 제법 많고, “그냥 노가리 까고 생각나는 걸 글로” 썼다간 웬만해서는 작품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말로만 해도 되”는 장르이지만 바로 그래서 누구나 할 수 있고, 그러므로 사실 오히려 더 어렵다.

문학, 그러니까 좀더 정확히 말해 소설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쨌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그래서 그 이야기를 독자로 하여금 읽게 만드는 것이 소설의 모든 것이다. 이 방면에서 늘 성석제는 선두에 있어왔다. 일군의 한국 소설 작가들에게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수식어가 그리 낯선 것은 아니지만 성석제처럼 실로 다양한 방식으로 이를 증명해온 작가는 아주 드물다. 성석제가 그동안 왕성하게 발표해온 작품들을 두루 살펴보면 그에게는 소설의 소재도, 형식도, 길이도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특유의 희극성을 바탕으로 밑바닥의 삶에 가닿은 그의 작품들은 이미 일가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는 마치 천부적인 감각을 지녔다는 듯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이번 소설집에서도 잘 드러나듯, 쉽게 쓴 소설은 한 편도 없다. 단편 하나에 쏟아붓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서사적 양量부터가 압도적이거니와 매 작품이 머리를 무수히 쥐어뜯을 정도의 고민 끝에 써낸 소설들임은 군데군데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문학적이어야 한다는 강박 없이, 문체나 어휘에 불필요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 형식과 구성에도 별로 구애받지 않고, 그저 ‘이야기를 쓴다’는 점에서 확실히 그는 돌올하다.

예전의 성석제를 떠올리면 이번 소설집에서, 그야말로 낄낄거리면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읽는 맛은 조금 덜할 듯하고, 또 어떤 독자들은 이 소설집의 작품들이 조금 올드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번 소설집에서 올드한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작가가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폭발적이거나 충격적이지 않더라도, 완전히 새롭거나 아주 신선하지 않더라도, 정통 단편소설의 미학이 여전히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점 역시 보여주고 있다고 느낀다. 잘 알려져 있듯 성석제는 의심할 여지 없는 프로 소설가이고, 이야기에 한해서만큼은 맹수에 가깝다. 소설에 세계에 들어서면 그는 동물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고, 그것이 한 편의 소설이 될 수 있는지.

 

 

(중략)

 

 

여기 실린 일곱 편의 소설을 읽고 나면 마치 긴 여행을 다녀온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성석제의 소설들은 우리를 다른 곳에 데려다놓는 것이 아니라 출발했다가 그대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한다. 물론 읽고 난 뒤의 우리는 어딘가 바뀌어 있겠지만, 그의 소설은 특별한 결말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자연스럽게 원래 있던 자리에 안착한다. 이야기는 대책 없이 열려 있는 것도 아니고, 무책임하게 흐지부지 끝나지도 않는다. 성석제는 사건을 자연스럽게 종결시키는 능력이 있다. 다시 한번 언급하건대 그는 디테일을 확보하고, 개연성을 부여한 뒤, 사건을 종결시킨다. 이 단순한 소설의 작법을 능숙하게 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이 소설집의 작품들에서 나는 작가 성석제의 자신감도 느낀다. 그의 소설은 단편이지만 ‘일생’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서사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서술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현실이나 시대에 무턱대고 기대지 않는다. 시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현실 속으로 매몰되지 않는 개인을 길어올린다. 마지막으로, 이것이 중요한데 성석제의 소설은 독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자기 할말을 쏟아내는 성석제 소설 특유의 화자들은 마치 ‘듣는 소설’을 연상케 한다. 그러니 우리는 그냥 읽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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