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현, 『상냥한 폭력의 시대』, 문학과지성사, 2016 / 김언수, 『뜨거운 피』, 문학동네, 2016

(계간 <문학동네> 2016년 겨울호 “선택” 원고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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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의 지난 소설집 『오늘의 거짓말』(문학과지성사, 2007)이 나온 게 벌써 9년 전이었다는 사실을 이번 소설집 ‘작가의 말’을 통해 새삼 알게 되었다. 그는 단편을 쓰지 못했던 긴 시간들을 ‘지나왔다’고 말했는데, 그렇게 돌이켜보니 정이현도 꽤 변한 것 같다. 『상냥한 폭력의 시대』를 읽으면서, ‘지금의 우리’를 읽어내려는 이 작가 특유의 예민한 감각은 그대로인데 상처받은 사람들 곁으로 조금 더 다가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냉소와 환멸의 정서를 지나 공감과 연민의 태도로 옮겨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또 여전히―작가의 표현을 조금 빌리자면―예의 바른 속물성에 관해, 상냥한 폭력에 대해 날카로움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가족’이라는 관계, 특히 부모에 관한 이야기가 두드러진다. 가족은 외부의 폭력으로부터 우리가 지켜야 할 대상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폭력을 가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족은 중의적인 의미에서 끔찍하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지원과 미영이 처한, 미성년자인 그들의 딸과 아들이 채 7개월을 채우지 못한 미숙아를 출산한 상황이 대표적이다. 그들을 덮은 “뚜껑”(44쪽)은 폭발하기 직전처럼 위태로운데, 가장 최근 작품인 「서랍 속의 집」은 게다가 ‘시의적절’해서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한국 사회의 핵심 문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지리멸렬한 ‘내 집 마련’의 과정을 아파트 매매를 통해 핍진하게 보여주는 이 소설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읽는 내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이 소설집에서 느껴지는 서사의 긴장감과 별개로 「영영, 여름」과 같은 작품에서 보이는 이국(異國)에 대한 작가의 관심도 특기할 만하다. 작품 전반에서 느껴지는 다른 공간, 다른 언어에 대한 감각은 서사의 확장과 더불어 문장의 밀도로도 이어지고 있는데, 그래서 전체적으로 깊어지고 단단해졌다는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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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백쪽에 이르는 이 두툼한 소설은 제목 그대로 뜨겁다. 부산의 항구 구암에서 펼쳐지는 이 건달 이야기를 ‘누아르’라고 부르면 너무 고상해 보인다. 깡패, 사기꾼, 포주, 창녀, 양아치, 조폭, 칼잡이 등 온갖 밑바닥 인생이 모여 있는 그곳은 피가 끓는 치열한 싸움터다. 흔하다면 흔한 장르의 이야기인데, 우리가 지금까지 읽고 보아서 알고 있던 갖가지 범죄와 폭력, 거래와 배신에 관한 이야기의 종합판이라고 봐도 좋겠다. 주인공 ‘희수’를 비롯해 여기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삶이 파닥거리며 살아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1990년대 초중반의 항구도시에 대한 디테일은 이 이상이기 어려워서 읽는 내내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김언수가 언젠가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잽』(문학동네, 2013)을 읽으며 생각했었는데, 이토록 큰 훅을 날리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마침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예담, 2016)를 쓴 천명관 작가가 김언수의 이 작품을 각색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할 예정이라고 하니, 두 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이 소설의 이야기가 어떻게 재탄생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작품의 결은 무척이나 다르지만 앞서 언급한 정이현과 김언수의 시대 인식은 같아 보인다. 정이현은 “이제는 친절하고 상냥한 표정으로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시대”여서 “예의 바른 악수를 위해 손을 잡았다 놓으면 손바닥이 칼날에 쓱 베여 있다”(‘작가의 말’, 248-9쪽)고 썼다. 김언수는 “더 쿨해지고 더 예의발라지고 더 유머러스해진”, “쾌적하고 젠틀하고 깔끔”하게 서로 “간섭하지 않고 충고하지 않는” 도시의 삶에서 “갑갑함을 느낀다”(‘작가의 말’, 594-5쪽)고 말했다. 정이현이 시대를 들여다보고 우리를 이해해보기 위해 카페에 앉아 있는 작가라면 김언수는 이 공허하고 차가운 시대에 여전히 소주를 마시다 발끈해서 술판을 뒤집는 작가다. 그리고 그 뜨거운 삶의 한복판에 우리의 ‘희수’가 있다. 작가의 말을 다시 빌려 물어야겠다. “당신은 이 사내가 보기 좋은가. 이삶이 보기 좋은가.”(595쪽) 꽤 아프지만, 나는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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