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 읽은 시

소소하고 착한 시-한연희의 시들

(이 글은 월간 <심상> 12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쇼코의 미소』(문학동네, 2016)라는 제목의 첫 소설집을 낸 최은영이라는 작가를 잠깐 언급하며 글을 시작하고 싶다. 그의 작품들에 달라붙는 수식어 중 하나는 ‘착하다’는 것이다. 선한 인물들이 고통과 상처에 공감하며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이야기, 그리하여 우리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음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히, 그러면서 동시에 섬세하게 보여주는 것. 최은영은 우리가 이제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던 ‘착함’이라는 감각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절망과 환멸로 가득한 이 시대에 어쩌면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그 이야기들이 의외로 큰 감동을 준다.

최근 한연희의 시를 몇 편 읽으면서 ‘착한 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올해 창비신인시인상으로 당선된 이 새로운 시인은 마치 최은영이 그랬듯, 우리가 잊고 있었던 어떤 감각을 건드리는 힘이 있다. 일상으로부터 시의 세계를 길어 올리고, 그 속에서 소박하지만 무척 의미 있는 지점을 포착하는 시는 꽤 있다. 그러나 끝까지 긍정의 태도를 유지하면서 차분하고 날카롭게 시적 정조를 이어가는 시는 드물다.

 

 

종일 찌르기 품새를 배운다 나는 삐뚤어지기 위해 여길 왔지 튼튼해지는 팔뚝이 싫어 왼팔에 태권, 오른팔에 권태, 모른 척 구령 연습을 한다 바지 안에는 주운 바둑알, 제멋대로 굴러가는 하루와 함께 뒀지 주머니를 뚫고 심술이 터진다 사범의 호령에 방귀가 자란다

 

으랏차차 기합소리에 모두 깜짝 놀란 얼굴이야 흐뭇해진 나는 바닥을 구르지 어제보다는 오늘이, 그제보다는 뒤꿈치가 엉망이라 다행이야 발끝이 머리에 닿는다 그것만이 보람되지 내일은 별로 궁금하지 않고 매끈한 바닥이 궁금해 땀이 나도록 발차기를 한다

 

버려진 바둑알이 나라는 게 좋아 시시콜콜해진다는 게 내가 원했던 쓸모였어 지루해진 여자애들은 바삭바삭 모여앉아 내 쪽을 힐끗대지 장난감은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다 어디서든 투명해지는 수련을 해야지 앞으로만 구르는 나를 빼고 모두들 제자리 뛰기를 한다

노란 띠는 도복을 벗는다 검은 띠는 턱을 내민다 오늘 배운 자세로 내일을 향해 도약해보라지, 나는 상관없어 늘 처음 하는 것처럼 다리를 뻗는다 하나 둘, 하나 두울 내가 멋져 흰 벽엔 앞차기 허공엔 뒤차기, 올바른 자세를 배워도 금세 틀어지는 몸뚱이가 나의 자랑이다

 

한연희, 「태권도를 배우는 오늘」, 《현대시》, 2016년 11월호

 

 

이 시인의 발랄한 태도부터가 인상적이었다. 달리 더 설명할 것이 없다는 듯, 곧바로 시적 정황으로 돌입하는 모습도 대담해보였다. 특히 유쾌하면서도 한 번 더 곱씹게 만드는 구절이 많았다. 태권도장에서 찌르기와 발차기를 어설프게 하고 있는 ‘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꽤 즐거운데, “튼튼해지는 팔뚝이 싫어 왼팔에 태권, 오른팔에 권태”와 같은 대목을 만나면 눈을 반짝이며 읽게 된다. ‘나’는 “시시콜콜”하고, “버려진 바둑알”이며, “내일이 별로 궁금하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내가 원했던 쓸모”라는 구절은 “내 쪽을 힐끗대”며 ‘나’를 “장난감”처럼 여기는 이 세계에 던지는 일종의 선언이다. 그 선언은 “어디서든 투명해지는 수련을 해야지”라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아주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이 시인의 태도는 어쨌든 세상을 향해 내지르는 주먹이고 발차기다. 여기에서 시인이 보여주는 일종의 말놀이는 지나치지 않아서, 그것이 솔직함이라는 시적 태도와 만나 작위적이지 않고 미더운 면이 있다. 그것은 다음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눌렀다

텔레비전이 거꾸로 자세를 잡더니 마름모가 되었다

화면 속엔 반듯했던 종이가 접어지고 있었다

네모 속에 네모 속에 네모 없는 네모

전원을 꺼도 그대로인 네모

무료한 담요 속에서 심장을 꺼내 접었다

슬리퍼를 입에 물고 청개구리가 되었다

액자 속에 넣으니 볼만했다

귀퉁이를 조각조각 이어붙인 얼굴들이 날 쳐다봤다

 

액자를 모조리 떼어내니 하얀 자국들이 가득했다

환히 웃다가, 눈을 홉뜬, 찡그린 네모들이

다닥다닥 붙어 웅성댔다

나는 말야, 얼음 같은 나는 말야

 

네모 네모 네모다

거울 속의 반지르르한 네모다

뿔난 모서리로 다 넘어트리는 네모라구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와 가로막는 사각의 링

부려져도 상관없어

시끄러워져도 대책 없어

나는 선수라구,

글러브를 낀 네모라구,

탄탄한 근육질의 주먹은 허공을 향해 어퍼컷을 날렸다

 

최선을 다해 미소 지었지만 무표정인 얼굴

아무리 바로 해도 삐딱해지는 매트의 본질과 같았다

구겨버려도 구겨지지 않는 수건의 본질과 같았다

 

블라인드가 아무 특징 없는 주름을 만드는 동안

나는 다 접었다

 

네모는 거북이야 네모는 튤립이야 네모는 무궁무진해

손에 쥔 네모는 색종이로 출발하지

그러니까 나는 자신만만해도 돼

초침을 서서히 가도록 만들어놓고 똑바로 섰다

 

그러다 갑자기 초인종이 울려 우우우 무너져 내려도

괜찮아 괜찮아 아직이라서 괜찮아

네모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의자를 갖고 있어서

나는 울지 않았다

 

한연희, 「나는 네모다」, 《현대시》, 2016년 11월호

 

 

전통적인 시적 흐름을 부정하지 않고, 그러나 또 동시에 지루한 서정성에 기대지 않는 이 시인의 작법은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잘 드러난다. 한연희는 마구 앞뒤를 열어놓는 해체적 경향의 산문시가 아니라 각 행과 연의 기능에 충실한, 나아가 마지막 연에 시적 의미를 집약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앞선 시와 지금 이 시의 마지막 부분만을 떼어 읽어보자. “올바른 자세를 배워도 금세 틀어지는 몸뚱이가 나의 자랑이다”, “그러다 갑자기 초인종이 울려 우우우 무너져 내려도 / 괜찮아 괜찮아 아직이라서 괜찮아 / 네모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의자를 갖고 있어서 / 나는 울지 않았다”와 같은 구절은 살짝 미소를 짓게 하는 힘을 넘어 시인이 지향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가리킨다. 틀려도 자랑이고, 무너져도 괜찮다는 이 시의 메시지는 흔한 위로나 값싼 동정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 시인이 그러한 태도를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이 이 세계를 견디고 버티기 위해 스스로 절박하게 선택하고 습득한 특유의 감각이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와 가로막는 사각의 링 / 부러져도 상관없어 / 시끄러워져도 대책 없어 / 나는 선수라구, / 글러브를 낀 선수라구, / 탄탄한 근육질의 주먹은 허공을 향해 어퍼컷을 날렸다.” 이 구절은 앞선 시와 아주 유사하다. 펀치는 허공을 향해 날아가고 발차기는 벽을 향한다. 그러니까 누구에게도 간섭받거나 피해주지 않고, ‘나’를 긍정하면서 “자신만만”하게 살아가겠다는 시인의 다짐인 셈이다. 그 다짐이 “액자를 모조리 떼어내니 하얀 자국들이 가득했다”, “아무리 바로 해도 삐딱해지는 매트의 본질과 같았다”와 같은 인상적인 구절을 동반해 즐겁게 읽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여름이 아닌 것들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얼어붙은 강, 누군가와 마주 잡은 손의 온기, 창문을 꼭꼭 닫아놓고서 누운 밤, 쟁반 가득 쌓인 귤껍질들이 말라가는 것을 좋아한다

 

여름은 창을 열고 나를 눅눅하게 만들기를 좋아한다 물이끼처럼 자꾸 방안에 자라는 냄새들이, 귤 알갱이처럼 톡톡 씹히는 말들이 혓바닥에서 미끄러진다 곰이 그 위에 누워 있다

 

동물원 우리에 갇힌 곰이, 수박을 우걱우걱 먹어치우던 곰이 나를 쳐다본다 곰에게서 침 범벅의 수박물이 떨어진다 여기가 동물원이 아니라 내 방이라는 것을 알아갈 때쯤, 나는 혼자 남아 8월을 벗어난다

 

그러니까 수박이 아닌 것들을 좋아한다 차가운 방바닥에 눕는 것을 좋아한다 피가 나도록 긁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들이 땀띠처럼 늘어난다 그러니까 나는 이 여름을 죽도록 좋아한다

 

햇빛이 끈질기게 커튼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잎사귀의 뒷면과 그늘 사이를 벌려놓는다 먹다 남긴 수박껍질에 초파리가 꼬인다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그림자를 내쫓는 중이다 쌓인 빨래더미 위에, 식은 밥그릇 위에 고요가 내려앉는다

 

그러나 의지와 상관없이 종아리에 털들이 자라나는 걸, 머리카락이 뺨에 들러붙는 걸, 화분의 상추들이 맹렬하게 죽어가는 걸 여름은 내내 지켜보고 있다 좋아한다 좋아한다 쏟아지는 말을 주워 담을 수가 없다

 

한연희, 「수박이 아닌 것들에게」, 《창작과비평》, 2016년 가을호

 

 

소소하다는 말은 대체로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어떤 것에 사용되지만, 부정적인 수식어로 쓰이지는 않는다. 소소한 기쁨이라는 말은 있지만 소소한 슬픔이라는 말은 없고, 소소하게 즐겁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소소하게 별로라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즉 소소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긍정적이다. 한연희가 차분히 들여다보는 일상은 그야말로 소소하다. 이 시에서처럼 그저 여름의 풍경을 통해 “의지와 상관없이” 여름이 좋다는 이야기를 할 뿐이다. 하지만 이 시는 그렇게 단순하고 쉽게 쓰이지 않았는데, 그것은 우리가 이 시를 읽고 느끼는 ‘충분하다’는 감각과 관련이 있다. 이 시인이 선택한 시어들과 시적 정황을 다시 살펴보면 앞뒤의 시어들이 유기적으로 관련되면서도 자연스럽게 변주되고, 아주 흔하고 일상적인 장면이지만 그 속에서 적절한 상상의 타래가 펼쳐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일상으로부터 시작해 어떤 감각이나 정서를 총체적으로 구현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이런 형태의 ‘소소하고 착한 시’는 어렵다.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그림자를 내쫓는 중이다”와 같은 인상적인 구절을 늘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아직 몇 편의 시밖에 발표하지 못했지만 일단은 이런 시인의 등장이 무척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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