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2017년 봄호

너무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쓴다.

3월부터는 내버려두지 말아야지 했는데, 벌써 또 이렇게 됐다.

들어와 보니 2017년 첫 게시물이다.

읽기에만 급급하고, 써야 할 것 막아내기에도 벅찼던 것 같다.

좀 부지런해져야지.

 

<창작과비평> 봄호를 읽었다.

문예지들이 여전히 움츠려드는 가운데, 창비도 인문평론상을 종료한다고 한다.

글을 써서 지면으로 데뷔할 ‘공식적’인 기회는 거의 사라져가는 듯 하다.

시국이 이래서 창비의 글들이 다 잘 읽혔다.

촛불혁명에 관한 글 중에는 황정아의 <민주주의는 어떤 ‘기분’인가>가 여러모로 좋았다.

소설 얘기니까 그렇기도 하지만 김금희와 황정은이라는 지금 가장 주목받는 작가를 적기에 다뤄줘서 그랬던 거 같다.

김금희는 상대적으로 소략하고 황정은의 <웃는 남자>(창비 2016 겨울)에 관한 언급이 많은데, 아래의 문장은 너무도 적확했다.

“황정은의 중편 <웃는 남자>는 가난하고 고달프고 억울한 삶의 피폐함을 가장 통렬히 그릴 때조차 어떤 존중과 존엄을 담고야 마는 황정은 특유의 ‘시그니처’가 분명하다.”(p.62)

정말 그렇다. 그런데 촉박하게 쓴 글임은 역력해서 좀 아쉽기도 했다.

시는 이제니, 유진목이 좋았는데 늘 잘 알고 있던 그 좋음이었다.

새로운 발견은 장수진의 시였다.

한홍구의 <촛불과 광장의 한국현대사>도 인상적이었다.

누구에게나 좀 읽어보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정리’가 잘 되어 있다.

논단의 글들도 흥미롭긴 했는데 조금 어려웠고, 정미경 작가를 추모하는 글이 따뜻해서 좋았다.

내가 몰랐던, 그러나 아마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던 정미경의 모습이었다.

 

자, 이제 소설을 읽자.

중견급 작가의 작품이 세 편 실려 있고, 김금희가 장편 연재를 시작했다.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작도 실렸다.

 

1. 강영숙, 두고 온 것 ★★★☆

초반에는 잘 집중이 안됐다.

문장이 좀 걸리는 느낌이었는데 중반에는 괜찮아졌다.

정신병으로 미쳐버린 아내(지연)와 그것을 지켜보는 사내(민수)의 이야기다.

지연을 병원에 가둔 채 민수는 그들의 추억이 있는 한 호텔로 계속 향한다.

공사 중인 그 호텔에 들어갈 수 없어서 방법을 찾다가 결국 호텔의 내부(기억)를 확인하는 서사.

좀 예상대로 진행되는 이야기여서 심드렁하다가 결말에서 조금 설득됐다.

결국은 기억의 왜곡이나 회귀를 말하는 것 같은데, 상징이랄까 이미지가 좀 과다한 느낌도 있다.

모호하고 믿을 수 없는 서술로 귀결되는 결말부는 호오가 좀 갈리겠지만 그래도 서사적으로는 필요한 전략인 듯 하고, 결국 민수가 “두고 온 것”은 그 샘플 패딩뿐만 아니라 지연, 그리고 그 스스로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2. 김려령, 청소  ★★★★

좋은 단편소설의 전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편의 길이에 걸맞는 시간적 흐름을 설정하면서 그 속에 인물의 삶을 모두 녹여내는.

이 ‘엄마’의 온 생애가 한 번에 왔다.

홀로 아들 딸을 키운 엄마가 일주일 간의 청소를 마치고 집을 나가버리는 내용인데, 자못 가벼운 톤이지만 좀 비극적이기까지 하다.

제목에 ‘청소’라고 내세울 만큼 집안 청소에 관한 디테일이 굉장하다.

누구든 읽으면 공감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아주 리얼하다.

이 알 수 없는 청소가 결말을 잘 숨기고 감추어서 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인물, 구도, 이야기는 ‘전형적’이라면 전형적이다.

 

3. 김애란, 가리는 손  ★★★★☆

아직은 읽은 지 얼마 안 돼서 섣불리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이 계절의 베스트일 것 같다.

김애란은 세대론적으로 같이 간다는 느낌이어서 더 애착이 간다.

믿고 읽을 수 있고 문장이 정말 너무 좋다.

사방에 밑줄을 죽죽 긋고 동그라미를 쳐대고 싶다.

읽으면서 열 번은 감탄한 것 같다.

세대 혹은 인종에 관한 이 어마어마한 간극과 소수자의 윤리적 혹은 도덕적 강박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이 들어 있다.

결국 “피”의 문제이고, 어떻게 보면 끔찍한 이야기다.

우리는 어디까지 쿨할 수 있을까. 이 “예쁜 합리성”의 세계에서.

 

4. 박규민, 조명은 달빛  ★★★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작이다.

아직은 설익은 듯한, 본인 말마따나 “어떤 계층만의 유희.”

가능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래도 당선 이유를 짐작할 수는 있으나 지적이고 미학적인 텍스트는 역시 쉽지 않다.

 

 

 

 

 

 

 

창작과비평 2017년 봄호”에 대한 답글 2개

  1. 정말 오래도록 새글 기다렸어요 보석같은 글 올려주셔서감사합니다. 애독자 드림

cook 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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