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문학, 2017년 봄호

<21세기문학>은 좋은 잡지다.

문예 계간지가 할 수 있는, 혹은 해야만 하는 최소한을 잘 지켜나가는 듯하고 필진도, 작품도 메이저 문예지 못지 않고 때에 맞춰 잘 발행된다.

(그런데 왜 이렇게 품절 상태가 빨리 되는지 모르겠다. 정기구독을 유도하는 것일까…)

아무튼 이번 봄호도 두루 좋았다.

특집인 “미학주의를 점검한다”는 현재 한국 문단의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글들이 많았다.

그러나 더 진전된 새로운 논의는 그다지 보이지 않았는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일 같기도 하다.

류진, 정은호의 시가 좋았다. 허수경 시인 특집의 편집자 글도 좋았다.

롤랑 바르트에 대한 글은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고, “세월호 시대의 문학”이라는 어휘가 다시 눈에 한 번 박혔다.

그리고 황정은의 <웃는 남자>는 의심할 여지 없이 좋은 작품임이라고 김영찬도 쓰고 있다.

 

이제 소설을.

 

1. 김영하, 신의 장난  ★★★☆

기업 입사와 동시에 연수에 들어간 4명의 남녀.

방탈출 식의 미션에 봉착하고 거기에 그대로 갇혀버리는 이야기이다.

여러 가지 얘기할 거리가 있는 소설이긴 한데, 구도나 설정이 익숙하고 작위적이고 그래서 애매하다.

청년세대의 취업 문제? 인간의 삶이란 신의 애완동물일 뿐?

거세나 먹이주기, 동선 같은 것들이 고양이가 된 인간을 떠올리게 하지만 신-인간-고양이의 도식은 좀 단순하고, 그렇다면 결국 신은 대기업이란 말인가 싶고, 그렇다.

김영하의 실험은 이렇게 한 번씩 실패하기도 하니까.

 

2. 박민정, 당신의 나라에서  ★★★★

여전히 민족(정체성)의 문제를 고민하는.

명징한 서사와 디테일의 힘이 여전하다.

그래서 우연과 작위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문제에 관한 깊이가 더해진다.

결코 괜찮아지지 않는 기억, 원체험, 악몽 등도 흥미롭고 국가, 나라, 민족이라는 정체성도 괴롭게 고민하게 된다.

결국은 ‘유나’와 ‘지나’가 다른 방식으로 같다는 서사.

 

3. 송수희, 어느 순간에도 절대인 것  ★★★☆

꽤 괜찮은 이야기였는데, 어쩔 수 없이 앞의 박민정 소설과 겹치면서 약하게 느껴졌다.

언어의 문제는 익숙하지만 늘 새롭게 다루어지는 소재인데, ‘작문노트’와 관련된 장면, 묘사가 좋았다.

하지만 분위기나 풍경에 비해 사건, 인물, 주제는 좀 익숙했고 뭔가 밀착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왜 애너벨은 탈북소녀여야 했을까.

 

4. 이수진, 마그다와 기묘한 동물원   ★★★☆

상당히 기대감을 갖게 하는 도입부였다.

이 배경과 이 인물, 그리고 이 문체는 뭘까.

아예 어떤 시공간이나 특정 인물을 상정할 수 없게 해놓고 어떤 ‘전형’을 보여주려는 것이구나, 생각할 때까지 아주 좋았다.

소위 문단 내 성폭력에 관한, 창작촌에 입주한 문인들을 두고 까발리는 소설.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들의 이름과 번역투의 문체와 대비되는 것은 아주 한국적인 ‘성폭력’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해도 될까.

온갖 추한 성폭력의 허물을 벗고 순수한 나로 마그다는 사라지고 그 허물을 뒤집어 쓴 험프백은 죽고, 그걸 다시 전시하면 우리는 ‘절망’, ‘고독’, ‘모욕’ 등을 실감할 수 있나.

“이때 당신은 그 감정의 이름을 이미 알고 있다”라는 문장이 끝내 해결되지 않는데 그것 때문일지.

아무튼 폭발적으로 쓰려다 보니 어느 순간 세심한 선 하나를 넘어버린 소설.

 

 

 

 

 

1 Response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