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2017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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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봄호를 읽었다.

요즘은 조금 얇아지나 했더니 또 800쪽이 넘는 사전급의 계간지를 발행했다.

지금 문단에서 이루어지는 문학상 제도 중 가장 독자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다고 할 수 있을 젊은작가상 발표가 있고, ‘촛불과 태극기’라는 특집도 있다.

황정은이나 김상혁은 지금 꼭 읽어야 할 작가/시인이니 말할 필요도 없겠고, 필자들 면면도 화려하다.

일일이 한 마디씩 보태기에는 너무 많으므로, 소설로 도망.

 

1. 정찬, 새의 시선  ★★★

김세진, 이재호 열사 분신 사건과 용산 참사를 연결해 ‘불’타는 신체에 주목한다.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새의 시선’으로 하려고 했던 건 알겠는데, 일단 고루하다.

이런 식의 전개는 이미 이청준이 무수히 보여줬던 것이라 익숙하다.

좀처럼 드러나지 않을 것 같았던 사건의 진실이나 실상이 기다렸다는 듯이 밝혀지는 방식도 마뜩잖았다.

현실의 문제를 그 자체로, 그러니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어떻게 이 사태를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다분히 지식인, 예술가의 시선에서 ‘나’를 탐구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고흐를 인용해 제시한 ‘새의 시선’이 끝내 이해되지 않았다.

 

2. 백민석, 그저 모든 게 지루했던 인간 ★★★☆

‘아트 워’ 연작.

악스트에 첫 번째 작품이 있었고, 최근 문장 웹진에 두 번째가 실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이건 세 번째 이야기.

‘인간’이라고 할 만한 모든 게 파괴된 세상이지만 결국 ‘인간’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고, SF적 미래가 현재를 인용하는 듯한 특이한 소설이다.

도입부의 빨강머리 문신 이야기가 아주 재미있었고, 중간중간 기억에 남는 장면이 꽤 있는 편이지만 이 단편 하나로 뭐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 연작이 성공적일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3. 김숨, 이혼  ★★★★

결혼이란, 부부란, 이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강렬한 소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살기로 결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모험인지, 그리고 다시 각자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 크다는 사실은 새삼스럽지만 여전하다.

핏줄보다도 더 지긋지긋하고 끈질긴 관계의 사슬은 어떻게 끊어야 할까.

이혼 대기실의 풍경이나 가정폭력에 대한 묘사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도 다리 없는 아내가 산을 기어 올라 남편의 시체를 수습하고야 마는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4.  박형서, 외톨이 ★★★★☆

지난 해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이었던 <거기 있나요>도 그랬고 이 작가가 SF적 요소를 차용하는 방식이 꽤 흥미롭다.

장르적 문법에 집중할 때 어쩔 수 없이 느껴지던 어떤 문학적 공허함을 ‘외톨이의 사랑’이라는 신화적 이야기로 잘 채운 느낌이다.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당신을 죽인 바다를 없애버린 이야기.

미얀마의 박쥐 이야기처럼 성범수의 ‘대역전’은 파국과 멸망의 시도가 아니라 그 정도 크기의 로맨스였음을.

소설의 도입부와 결말 부분이 절묘하게 아름답고, 여러 과학적 디테일도 그 실증 여부를 떠나 설득력이 있다.

이 계절의 베스트 중 하나.

 

5. 천희란, 화성, 스위치, 삭제된 장면들  ★★★☆

아주 밀도가 높은 소설이어서 읽는 내내 힘들었지만 귀를 기울일 만한 질문이었다.

“모든 것이 잠든 어둠 속을 활보하는 더 짙은 어둠의 영혼들”은 어디로 가나.

슬픔보다 깊은 우울과 절망보다 강한 환멸을 가진 자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나.

아내의 죽음을 이해해 보려는 남편과 아버지의 실종(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의 이야기.

그렇지만 단점이 확연하다.

영혼을 먹어치우는 어떤 공간으로 꼭 화성이 필요했을까.

어두운 영혼으로서의 그림자와 그 그림자가 사라진다는 설정은 좀 익숙하지 않나.

결국 인생의 어떤 부분은 찢겨진 일기장이나 시커먼 그림자처럼 결코 알 수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찾아 헤매이고, 그것으로부터 영원히 달아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소재나 설정의 단순함으로 상쇄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스위치를 끄면 그림자는 사라지겠지만 그게 마지막에 등장한 ‘나’에게 어떤 행위인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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